사랑을 배운 자리엔 슬픔이 있었다

by 오유나

어릴 적, 나는 사랑을 곧장 배울 수 있었던 아이였다. 아빠와 목욕탕에 갔던 기억, 엄마와 낮잠을 자던 오후의 고요한 시간들. 학교에서 돌아오면 나는 그날 있었던 일을 한 시간 넘게 엄마에게 이야기하곤 했다. 엄마는 언제나 내 말을 들어줬고, 그 순간만큼은 세상 누구보다 든든한 친구이자 안식처였다. 그 시절의 나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쉽게 주고받을 줄 아는 아이였다.


하지만 그 평온한 시간의 바닥에는 작고 날카로운 파편들이 있었다. 아빠의 외도, 그리고 그로 인한 부모님의 잦은 다툼. 그 장면들은 내 마음 한편에 깊게 각인되었고, 나는 어느 순간부터 아빠를 ‘엄마를 외롭게 만드는 사람’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엄마가 흘리는 눈물에 나도 아팠고, 그 아픔을 내가 어떻게든 보듬고 싶었다. 그래서일까, 나는 늘 엄마 편이었고, 엄마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책임감을 안고 자랐다.


시간이 흘러 성인이 되었지만, 그 책임감은 여전히 내 마음 한구석을 놓지 않는다. 여행을 떠날 때조차 엄마에게 말하지 않으면 죄책감이 들고, 주말에 엄마가 혼자 남는다는 말을 들으면 마음이 무겁다. 엄마는 여전히 내게 가족의 걱정들을 털어놓는다. 때로는 집안의 경제 상황이나 아빠의 근황, 언니와의 갈등까지. 나는 자식이자, 친구이자, 상담자이기도 하다.


심리 상담을 받으며 이런 관계를 처음으로 말로 정리하게 됐다. 엄마와의 유대가 너무 깊어서, 나는 내 삶의 독립성을 조심스레 탐색하는 중이라는 걸 알게 됐다. 엄마를 미워하지 않지만, 그 유대가 나를 자주 멈춰 세운다는 사실 또한 부정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엄마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릿하다. 엄마는 젊은 시절 너무 많은 것을 포기한 사람이고, 지금의 시대에 태어났다면 분명 더 많은 선택지를 가질 수 있었을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나는 사랑을 받으며 자랐다. 하지만 그 사랑은 어떤 균형이 무너진 형태였고, 그래서 나는 ‘서로 존중하는 부부의 모습’, ‘건강한 사랑의 언어’를 잘 배우지 못한 아이였던 것 같다. 행복한 가정이 과연 존재할까 하는 의심, 결혼이라는 제도가 정말 필요할까 하는 회의감이 내 안에 오래 남아 있었다.


그러다 주변에서 진심으로 서로를 아끼고 보듬는 부부들을 보며 알게 됐다. 사랑은 존재하고, 오래도록 자라는 감정이 될 수 있다는 걸. 서로에게 꼭 필요한 존재가 되어주는 사람들, 함께 자라며 성장하는 관계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면, 나는 한 가지를 깨닫는다. 결핍은 사랑을 증명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한 자리에서 자란다는 것. 그리고 그 결핍은 언젠가 나도 누군가와의 관계 속에서 다시 배우고, 채워나갈 수 있다는 것.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단 하나다. 어린 시절의 경험이 한 사람의 사랑 방식, 세상과의 관계 맺는 법, 그리고 자기를 바라보는 시선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를 누군가와 나누고 싶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받은 사랑은 완전하지 않았고, 우리가 줄 사랑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그 불완전함을 이해하는 순간, 우리는 조금씩 더 나은 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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