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어서부터 간혹 찾아오는 우울감이 나를 감싸곤 했다. 주변에서는 좋은 말로 ‘조용한 아이’라고 했지만 실은 우울감에 사로잡힌 아이였다. 어쩌다 우울감이 나에게 찾아든 걸까. 나름 원인을 추적해보니 몇 가지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불만족스러운 현실 상황이 가장 큰 원인이었던 것 같다. 늘 결핍된 상태, 경제적으로 열악한 집안 상황과 부모님과 친인척을 다 둘러보아도 마음을 의지하고 기댈 곳은 단 한 군데도 없었다.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스스로 생각하고 깨우치려 했다. 독서를 많이 한 편이었다. 나는 독서가 수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딱 한 가지 단점을 꼽으라면, ‘독서는 사람을 우울하게 만드는 요소가 있다.’는 생각이다. 독서는 생각의 영역을 확장시키는 데 일조한다. 생각을 키우는 것은 살아가는데 훌륭한 도구일 수도 있지만, 때때로 독약으로 작용한다. 독서를 통해 자라난 생각은 사람의 안목을 더 넓히는 계기가 되고 하나의 사안을 다면적으로 보게 한다. 달리 말하면 하나의 사안에 생각이 많아진다는 의미이다. 생각이 많아진다는 것은 사유체계가 깊어지는 장점이 있지만, 때론 생각이 마음에 작용하여 우울이라는 씨앗이 품기도 한다.
ego = (m+s)×t → 에고 = 마생×시간
*에고(ego): 감정, *마생:마음(m)+생각(s), *시간(t): 시간
위 식을 반드시 기억해라. 물론 내가 만든 공식이다. 나는 이 방식으로 수많은 감정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 만약 당신이 이 공식을 염두에 둔다면, 그동안 한번도 생각하지 않았던 마음, 생각, 시간에 대해 의식을 하게 된다. 그리고 대체 그놈들이 어떤 모습으로 나에게 다가서는지 그 실체를 잡으려고 노력할 것이다. 그것 만으로도 감정을 다스리기 위한 절반의 성공을 한다. 일단 마음은 무엇이고, 생각은 무엇이고, 시간은 어떻게 작용하는지 안다고 치자.
에고 중에 ‘우울’이란 감정이 들어섰을 때, 감정에서 벗어나려면, 마생의 값을 ‘0’으로 하던지, 또는 시간(t)을 ‘0’으로 하여, 결과값이 ‘0’이 된다면 당신은 우울이란 감정에서 벗어난다.
우선 마음과 생각을 멈추어야 한다. 그런데 마음과 생각은 우리가 움직이고 있을 때에는 오감에 의해 동조되어 작동하는 경향이 강하므로 쉽게 마생을 비우기가 여간 쉽지 않다. 텅비우고자 한다면 일단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눈을 감고 명상을 하는 것이 최선이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마냥 명상에 빠져있을 수 없다.
그래서, 현실에서는 '현존명상'이 필요하다. 이 위 수식에서 다른 방법 중 하나로 시간(t)을 ‘0’으로 하는 방법이다. 수식은 2개의 크게 요소로 구성된다. 마생과 시간이다. 곱하기이므로 2개의 요소 중 하나만 '0'이 되어도 결과값은 '0'이 된다. 시간(t)이 '0'이 되는 상태를 우리는 ‘현존’이라 부른다. 현존은 행위 중에도 할수 있는 방법이다. 현존과 비슷한 말로는 삼매(三昧, 사마디)가 있다. 독서삼매경, 또는 연애삼매경에 빠진 적이 있는가. 시간이 멈춰버린 기억이 있을 것이다. 현존상태에서는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과거-현재-미래 이렇게 3개의 시제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러나 우리는 실질적으로 현재에 살지 않고 과거나 미래만 생각하며 산다. 현존이란 현재에만 모든 의식을 가져가는 적극적인 행위이다. 과거나 미래는 실재가 아니다. 허상이요, 망상에 불과하다. 그런데 우울증은 모든 의식이 과거나 미래에 의식이 가 있는 상태이다. 그것들과 지금의 모습을 계속 비교하며 고통에 빠진다. 즉, 우울증은 과거, 미래에 의해 지배당한 상태이다. 그래서 시간(t)의 값이 ‘0’이 아니고 수천, 수만의 값으로 존재하므로 결과값이 커지며 당신의 우울의 감정 상태는 겉잡을 수 없이 폭증한다. 장담하건데, 당신의 의식에 과거나, 미래가 없다면 우울은 없다.
이 수식을 보고 당신이 어떻게 수렁에서 빠져나와야 할지는 스스로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곧 명상이요, 치유이다.
현존하라! 이 순간에 집중하라! 이 순간에 집중하면 우울감으로부터 완전한 해방을 이룬다. 우울감은 생각으로부터 온다. 생각은 정신의 영역이다. 정신은 육체에서 나온다. 즉, 우울감이라고 하는 것은 육체와 정신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생각이라는 것에는 반드시 시제가 내포되어 있다. 즉 생각은 과거와 미래를 먹고 산다. 과거와 미래가 없다면 생각은 존재할 수 없다. 과거시제, 현재시제, 미래시제. 그중에서도 생각의 영역에서는 대부분이 과거시제와 미래시제의 영역에 속한다. 과거와 미래가 없으면 생각이 스스로 꺼져버린다. 이 순간에 집중해야 할 이유이다.
당신이 우울에 빠져있는 경우,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의 의식상태가 위의 그림과 같은 의식 상태가 된다. 대부분 의식이 과거와 미래에 속해 있게 된다.
이런 상태는 굿모닝!하고 우울증을 부르는 행위이다.
과거는 망상이고, 미래는 환상에 불과하다. 과거에 의식은 당신을 망상에 사로잡히게 한다. 과거 어느 순간의 기억에 의해 현재의 나에게 영향을 끼친다. 과거의 기억 따위가 뭐가 중요한가. 중요한 것은 오로지 현재이다. 설령 좋은 기억일지라도 현재에 영향을 끼치게 하는 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현존을 방해한다. 하물며 나쁜 기억이라고 생각되는 것은 오죽할까. 현존은 고사하고 현재를 어둡게 하는 최악의 독약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과거의 생각이란 긍정적인 기억이든 부정적 기억이든 모두 지나간 일에 불과하고 그러기에 망상에 불과한 것이다.
미래에 의식이 가 있는 것 또한 과거와 다르지 않다. 미래에 의식이 닿아있는 것은 환상 속에 머물러 있는 것과 같다. 좋은 환상, 덜 좋은 환상이 있을 수 없다. 우울증을 가진 사람은 미래와 현재를 계속 비교할 것이다. 미래는 이상향이고 현재는 이상향에 비해 한참 부족한 상태로써 불안과 불평이 생긴다. 현재가 불만족스러우니 짜증이 나고 자신을 학대하기도 한다. 환상적인 미래일수록 현존하는 데에 방해 요소일 뿐이다.
위 그림처럼 현존해야하는 의식은 마치 샌드위치처럼 과거와 미래에 짓눌려있다. 박피 한 장 걸쳐있는 모양새가 되는 것이다.
동물과 식물은 이렇게 살지 않는다. 그들은 체계화된 교육을 받지도 않았고 독서를 하지도 않았다. 그들에게는 과거와 미래는 없다. 동식물의 상태는 ego = (m+s)×t (에고=마생×시간) 수식에서 t=0상태이다. 배고프고 어떤 욕구하는 마음이 있어 어떤 값을 가질수는 있으나 오로지 현존(t=0)상태이다. 그래서 결과값이 항상 ‘0’이다. 즉, 체계화된 생각이란 것이 없다. 오로지 번뜩이는 본능만이 생성하다. 당연히 그들에게 우울증이라는 것이 있을 턱이 없다.
위의 그림은 현존하는 사람의 의식상태를 도식화 한 것이다. 과거와 미래는 표시하기 위해 시간 축 위에 올려놓았을 뿐 실제로는 현재만 존재한다. 의식이 현재로 충만한 상태가 된다.
현재로 나를 가득 채우면 과거와 미래는 사라져버리고 오직 이 순간만이 존재한다. 갑자기 당신이 듣지 못하던 새소리가 들리고 바람의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우울증이라는 것은 생각이 만들어낸 허상이다. 내가 현존하는 순간, 순식간에 증발해버리고 마는 허상이다. 당신이 우울한 사람이라 생각하면, 현존 이외의 더 좋은 비결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