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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치는 아이는 상기 아니 일었느냐

-십우도

by 달빛타기


도(道)를 구하는 과정을 절묘한 그림으로 갈파한 것이 곽암의 ‘십우도’이다. 십우도는 10장의 그림으로 소를 찾는 과정이다. 여기에서 소는 깨달음, 도, 참나, 견성, 본성 등을 상징하고 그림 속 동자나 스님은 구도자, 수행자를 의미한다. 원래 도교에서 8장(팔우도)이었던 것을 곽암선사가 2장을 추가하여 십우도가 되었다고 한다. 십우도를 ‘심우도((尋牛圖, 소를 찾는 그림)’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곽암선사는 중국 송나라 때 사람으로 이 십우도는 도를 찾는 과정을 나타내서 선(禪) 사찰에 벽화로 그려져 있는 곳이 많다. 수행자의 입장에서 그림을 앞에 놓고 가만 살펴보면 선수행을 이보다 명쾌하게 갈파한 로드맵이 있을까, 감탄이 절로 나온다.


곽암의 십우도


십우도는, ①심우-②견적-③견우-④득우-⑤목우-⑥기우귀가-⑦망우존인-⑧인우구망-⑨반본환원-⑩입전수수로 열 장의 그림으로 구성된다.

십우도는 크게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뉘어있다고 보인다.


①에서 ⑤까지는 전반부로 매우 직관적이라 이해하기가 쉽다. 이 전반부는 소를 찾으려는 마음 먹기(심우)에서 소를 드디어 찾아 잘 다스리는 단계(목우)까지의 과정을 잘 나타내고 있다. 우리는 어린 시절 소풍 가서 보물찾기의 기억이 있다. 보물찾기하는 과정과 대비해도 좋을 것 같다. 심우에서 득우까지의 과정은 마치 보물찾기하는 것과 같아서 어떤 사람은 하루 만에 득우의 단계에 이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물론 평생을 수행해도 소를 얻지 못하고 마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초발심(심우)에서 소의 발자국을 발견(견적)하고, 소를 발견(견우)하고, 소를 얻는 (득우) 과정은 매우 쉬울 수도 있고 매우 힘들 수도 있다. 사람마다 살아온 과정들이 천차만별이고, 그 감정 상태가 지극히 개별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를 잘 다스리는 단계(목우)에서는 상당한 부딪힘과 시간적 숙성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당신이 50세에 이르러 득우하였다. 그 깨우침(참나)이 50년 동안 본인이라고 믿어왔던 에고 앞에 강한 저항을 받는다. 차를 100킬로미터로 운전하며 달려왔는데 갑자기 브레이크를 밟는다 해도 달려온 관성에 의해 일정 거리를 달려가야 하는 이치와 같다. 당신은 끊임없이 도전받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목우단계에서 많은 시간적 숙성과 수많은 에고와 욕망과의 싸움이 거듭되는 것이다. 결국 당신은 이러한 상황을 이겨내고 다음 단계로 거듭난다.


⑥부터 ⑩까지는 후반부로 논리와 이해의 너머에 있다. 나는 아직도 목우 단계라고 보기에 이후의 단계에 대해서는 선지식들의 해석과 개인 견해를 첨언하려 한다.


심우_불광미디어

① 심우(尋牛)

‘마음 먹기’이다. 초발심을 내는 것이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다. 소를 찾겠다고 하는 마음 먹기이다. 즉, 수행자가 본성을 찾고자 구도의 길을 떠난다.



견적-불광미디어

② 견적(見跡)

여기저기 소를 찾아 헤매다 보니 소 발자국을 불연 발견한다. 수행자가 단초를 발견하는 과정이다.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는 말이 있다. 이제 당신은 분명한 방향성을 얻었다. 명상에는 여러 종류의 명상이 있다. 오죽하면 8만대장경에 빗대어 8만 명상이 있다고 한다. 대표적으로 부처님이 수행했던 사마타, 위빠사나, 사띠 등이 있고, 훗날 중국에서 만들어져 한국불교에까지 전파된 묵조선, 간화선 등도 있다. 오늘날에는 자비명상, 행복명상, 알아차림명상, MBSR, MBCT, DBT, ACT... 등 무수한 명상이 있다. 명상은 자신을 찾는 과정, 즉 소를 찾는 과정이므로 자신에게 맞는 명상을 찾는 것은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되도록 부처님이 증명해준 그 방법에서 멀어지지 않는 방법이 좋다고 생각된다.


견우_불광미디어

③ 견우(見牛)

소 발자국을 쫓으니 소의 뒷모습을 보게 된다. 수행자가 점점 견성에 가까워지고 있다.



득우_불광미디어

④ 득우(得牛)

드디어 소를 발견했다. 평생 잠자고 있던 참나를 발견했다. 어쩌면 이번 생에서 대면하지 못할뻔했던 참나 앞에 당신은 감격할 것이다. 마주한 순간 당신은 안다. 이 존재가 진짜 나였음을…. 엄청난 환희심이 생겨난다. 혹여 놓칠세라 소의 고삐를 바짝 붙잡는다. 아직은 소가 야생에 길들여 있다. 고삐를 쥐었으나 다루기에 거칠다. 수행자가 본성을 꿰뚫어 보는 견성 상태에 이르렀다.


목우_불광미디어

⑤ 목우(牧牛)

때때로 소의 날뛰는 습성이 나타난다. 고삐를 단단히 쥐어도 뒷발질하고 뿔로 떠받으려 한다. 이제 채찍이 필요하다. 고삐는 각성을 상징하고, 채찍은 수행을 상징한다고 한다. 수행을 늦추지 말아야 한다. 각성하였어도 수십 년 동안 살아 온 관성대로 몸과 마음이 움직인다. 에고는 자꾸 습성에 따라 예전대로 회귀하려고 한다. 수행자는 고삐를 잡고, 채찍을 휘둘러야 한다.



기우귀가_불광미디어

⑥ 기우귀가(騎牛歸家)

날뛰던 소를 완전히 길들여서 소와 동자가 불이 상태가 되었다. 소의 마음이 동자의 마음이요, 동자의 마음이 소의 마음이다. 이제 소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자. 여기에서 집은 깨달음의 근원지로 생사의 번뇌심이 끊어진 곳이다. 동자는 소 등위에서 피리를 불며 집으로 간다. 이제 수행자는 과거의 습성에서 벗어나 완전한 본성에 충실하게 된다.


망우존인_불광미디어

⑦ 망우존인(忘牛存人)

소는 없고 동자만 존재한다, 란 뜻이다. 차안과 피안이란 말이 있다. 이쪽 언덕에서 저쪽 언덕으로 가기 위해서는 배를 타고 강을 건너야 한다. 강을 건너고 나서는 배를 버려야 한다. 배는 피안으로 가기 위한 하나의 도구요 방편이다. 소는 수행을 위한 하나의 방편이었다. 이제 집에 도착해서 방편은 마음에 두지 않으니 소의 존재는 사라진다. 오직 존재하는 사람의 마음은 잔잔한 호수가 되었다. 평상심, 불이, 무심, 무위의 경지에 이른다.


인우구망_불광미디어

⑧ 인우구망(人牛俱妄)

사람도, 소도 모두 잊었다. 일원상만이 달처럼 둥그렇다. 세상이 텅비워진 空임을 깨닫는다. <금강경>의 핵심 말처럼 모든 일체가 하나의 환영이요, 바닷가에서 한번 일어나고 소멸하는 물거품과 같은 것이요, 잠깐 빛이 있을 때 생겨났다 없어지는 그림자와 같은 것이요, 아침에 해 들기 전에 잠깐 머물다 가는 이슬과 같은 것이요, 한바탕 일어나는 번개와 같은 것이다. 사람도 소도 모두 꿈속의 일이로다. 도교에서는 이 장면이 마지막 단계이다.


반본환원_불광미디어

⑨ 반본환원(返本還元)

본래면목의 자리로 되돌아온 단계이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그림에서 강은 잔잔히 흐른다. 강가의 꽃이 만발한 나무는 세상을 장엄하고 있다. 여여(如如, 있는 그대로의 상태)한 깨달음의 세계를 표현한다.


입전수수_불광미디어

⑩ 입전수수(入廛垂手)

입전수수란 가게에 들어가 손을 드리운다, 란 뜻이다. 곽암의 십우도에서는 포대화상(큰 자루를 둘러 맨 스님)과 동자가 서로 마주 보고 서 있고 화상이 동자에게 무엇인가를 건네는 모습의 풍경이다. 둘러맨 포대에서 꺼내서 중생들에게 나누어 준다. 석가모니도 35세에 깨달음을 얻은 후 80세까지 세상을 돌며 진리를 설파하였다. 성도 후 석가모니의 모습이다. 깨달은 자가 세상속으로 들어가 중생구제를 하는 마지막 단계이다. 깨달은 자는 마치 태양처럼 빛으로 존재한다. 중생을 향해 그 빛을 나누어 주고 있다. 곽암이 표현한 마지막 단계이다.


예전에 ‘소는 누가 키우나’란 유행어가 있었다. 우리에겐 각자 키워야 할 소가 있다. 그러나 당신은 아직도 잠을 자고 있다. <화엄경>에서는 초발심시변정각(初發心時便正覺)이라 하였다. 처음 마음을 내면 곧바로 깨달음을 성취한다, 는 뜻이다. 시작이 곧 목적지이다. 수행의 단계는 수십 수백의 단계가 있을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처음 발심이다. 더 늦기 전에 소를 찾으러 가자.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

소 치는 아이는 상기 아니 일었느냐.

재 너머 사래 긴 밭을 언제 갈려 하나니


-지은이: 남구만(1629~1711년, 조선 숙종 때 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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