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마음은 몸의 언어다

마음 그리고 생각 너희들 정체가 뭐니?

by 달빛타기


우리가 살면서 가장 많이 듣는 말 중의 하나는 ‘마음’이라는 낱말이다. 마음 하나로 사람을 살리기도 죽이기도 한다. 마음은 대체 무엇이길래 이렇듯 인간사를 지배하는가. 어쩌면 명상을 하는 가장 큰 이유도 이 마음을 잘 다스리기 위함이다. 이 마음의 정체가 무엇인가? 또 생각은 무엇이고, 마음과 어떻게 다른가? 우리가 명상을 잘하려면 명상의 대상을 정확히 인지해야 한다. 명상에서 상대해야 할 대상은 몸과 마음과 생각이다. 그런데 몸은 뚜렷한 실체로서 만져지고 느껴지지만, 마음과 생각은 그 실체를 드러내길 주저한다. 이들은 짙은 안개 속에서 하얀 안개꽃처럼 곳곳에 피어나 위장하고 있다. 마치 자기가 안개 그 자체인 것처럼. 명상의 길에 갓 접어든 사람이 마음과 생각의 실체를 잡지 못해 명상 속에서 길을 잃고 마는 경우를 많이 보아왔다. 명상을 잘하고자 한다면, 마음과 생각을 정확히 인지하고, 실체화해야 한다. 명상에서 ‘알아차림, 관찰하기, 내려놓기…’ 등의 용어를 살펴보라. 이것은 모두 마음과 생각을 실체화하여 잘 다스리고자 하는 방법론인 것이다.


마음

흔히 인간은 마음에서 모든 원인이 발생한다고 한다. 마음은 인간사 관계에서 가장 많이 통용되는 낱말이다. 마음 하나로 불구대천 원수가 되기도 하고, 마음 하나로 평생의 반려자가 되기도 한다. 동양의 전통 의학에서는 모든 병의 근원은 마음에서 비롯된다고 하였다. 병이 발생하는 원인이 일곱 가지 감정에서 기인하는데 이를 ‘칠정(七情)’이라고 한다.

칠정 (七情) ① 사람의 일곱 가지 감정. 기쁨(喜)·노여움(怒)·슬픔(哀)·즐거움(樂)·사랑(愛)·미움(惡)·욕심(欲). 또는 기쁨·노여움·근심(憂)·생각(思)·슬픔(悲)·놀람(驚)·두려움(恐). ② ⦗불⦘ 기쁨·성냄·근심·두려움(懼)·사랑·미움(憎)·욕심.

*칠기(七氣).


인도 대승불교의 큰 줄기를 이루는 두 종파가 있는데, 중관파와 유식파로 나뉜다. 중관파는 중도(空)를 중시하고, 유식파는 의식을 중시한다. 의식이란 마음을 말한다. 유식(唯識)파에서는 유일하게 실재하는 것이 식識(마음)으로서의 의식뿐이라고 본다. 한자로 풀어보면, 유(唯)는 ‘오직’이란 뜻이고, 식(識)은 ‘의식’ 즉 마음을 말한다. 초기 대승불교에서 중요한 경전 중 하나인 <화엄경>은 이러한 결론을 명쾌하게 제시한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가 그것이다. 세상의 모든 것이 마음에 의해 지어진 것이라는 뜻이다.


다만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경전이나 명상 책을 보면 수많은 ‘마음’이 나오는데, 혼동하기 쉽다는 점이다. 특히 불경에서는 마음을 크게 2가지로 분류하여 혼용하여 사용하기 때문에 어느 마음에 대한 설명인지 헷갈릴 때가 많다. 하나는 ‘대상을 갖는 마음’이다. 일테면 우리가 늘 말하는 욕구에 의한 마음이다. 어떤 대상을 보고 내 마음이 움직여서 끌려가는 마음이다. 또 하나는 ‘대상을 꿰뚫어 보는 마음’이다. 불가에서 ‘마음 챙김’ 수행하자고 한다면, 이 ‘마음 챙김’의 마음은 욕구의 마음이 아니다. 본래부터 가지고 있던 본성(本性), 즉 불성(佛性)을 말한다. 이를 통찰, 직관, 아트만…. 등으로 여타 다른 무수한 이름으로 불리곤 한다. 만약, ‘마음 내려놓기’ 수행한다고 하면 여기에서 마음은 욕구에 의한 마음이다. 혼동이 많이 될 것이다. 그래서 더욱 분명한 정리가 필요하다.


1111.JPG


그러면 마음이란 대체 무엇인가? 마음은 대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마음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하고 싶다.’이다. 상대적 개념으로는 ‘~하고 싶지 않다.’ 일 것이다. 일테면, 밥 먹고 싶다, 자고 싶다, 놀고 싶다, 사랑하고 싶다, 보고 싶다, 여행하고 싶다… 라고 표현되는 것들이다. 마음이란 낱말이 표현상 명사의 품사를 가졌으나 그 속성은 동사를 포함한 형용사이다. ‘하다(동사)+싶다(형용사) ’이다. 우리는 하루에도 골백번 ‘~하고 싶어 하고, ~하고 싶지 않다.’라고 한다. 일하기 싫어 집에 가고 싶어 하고, 부자가 되고 싶어 하고, 누군가는 만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이것이 당신의 몸과 마음이 부리는 작용이다.

인간의 마음은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 걸까? 마음은 우리의 몸에서 나온다. 몸이 없다면 마음도 없을 터이다. 마음은 몸을 그대로 대변하기 때문이다. 마음은 몸의 표현이다. 마음은 몸이 언어다. 마음은 형상으로부터 와서 형상 안에서 머문다. 무릇 형상이 있는 것에는 모두 마음이 존재한다. 이는 인간뿐 아니라 동물, 식물에도 마찬가지이다. ‘마음이 먼저일까, 몸이 먼저일까’라는 물음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처럼 답이 없는 쳇바퀴와 같다.


몸의 상태를 그대로 대변하는 것이 곧 마음이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대변한다. 배가 고프면 배고픈 마음이 생기고, 졸리면 자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눈으로 이성을 보고 그 표현을 마음을 통해 투영한다. 배가 차면 배설하고픈 마음이 생긴다. 이렇듯 모든 마음은 내 몸의 상태를 오롯이 반영하는 것이다. 마음은 이렇게 몸과 동일시되어 생겨나는 일차적인 감정이다.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마음은 몸의 언어다!





실제 별을고속촬영한모습.jpg


생각

마음이 ‘몸의 언어다.’라고 정리했다면, ‘생각은 마음의 청사진이다.’라고 함축할 수 있다. 생각은 무엇인가? 마음과 생각은 구별이 필요하다. 마음과 생각은 그 경계가 모호하나 다른 범주이다. 마음은, ‘너무 하고 싶다’라고 표현된다면 이를 구체화 시키는 것이 생각이다. 즉 ‘놀고 싶다’라고 하는 몸의 욕구가 마음을 작동시킨다. 그러면, 어떻게 놀아야 할까? 누구랑 놀까? 게임 하면서 놀까? 아니면 여행하면서 놀까? 운동하면서 놀까? TV 보면서 놀까? 여러 가지 선택지를 생각하는 것, 마음의 상태를 구체화하고 계획하는 것, 이것이 생각이다. 마음을 확장하고 구체화 시킨 상태를 말한다. 생각으로부터 분별이 생겨난다.


2222.JPG


몸으로부터 마음이 나오고, 마음으로부터 생각이 나오고, 생각으로부터 사상, 관념, 철학이 나온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생각으로 이루어진 견고한 성이다. 생각이 문화를 만들고 문명을 만들었고 생각을 통해 발현되고 생각으로 구속당한다. 문명으로 이루어진 세상은 생각이 아닌 것이 없다. 생각으로 뭉쳐진 것이 우리가 구축해 놓은 세상이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생각하는 존재로 키워진다. 어머니 배 속에 있을 때부터 태교 등을 통해 교육이란 이름으로 생각을 주입 당한다. 태어나고 나서는 더 말할 필요도 없다. 교육이 사회생활을 영위하는 데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교육의 속성은 우리의 생각을 고도화시키고 확장하는 훈련이다. 그러하기에 인간은 태어나자마자 머리에 PCB처럼 생각하는 회로가 형성되고 발전되어간다. 더 많이 경험하고 교육받으면 받을수록 생각은 복잡해지고 많아진다.


급기야 인간은 모든 행동이 생각으로부터 기인하게 된다. 더 크고 넓은 생각을 하는 것이 인간이 가야 할 길이고, 더 크고 넓은 생각은 사회의 미덕으로 추앙받는다. 이로써 갈고 닦은 생각으로 당신의 머릿속엔 전자회로처럼 어떤 상황에 맞닥뜨리면 즉각적으로 생각할 수 있게 된다. 문제는 생각을 통제하지 못한다는 데에 있다. 인간 생활에서 필요 때문에 생긴 생각이 거꾸로 필요를 넘어 생각이 인간의 의식을 잠식하며 지배하게 된다.

생각은 인간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하나의 좋은 도구일 뿐이다. 이는 마치 호랑이의 날카로운 이빨이나 발톱처럼 인간에게 있어 생각은, 세상이라는 곳에서 사냥(벌이)하기 위한 하나의 도구일 뿐이다. 도구가 본체를 지배하면 어찌 되겠는가. 호랑이의 발톱이 호랑이를 지배하면 어찌 되겠는가. 도구에 불과한 생각이 사람을 지배한다면 아니 될 일이다. 사람은 생각의 노예로 살아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생각을 도구답게 적절히 통제하면서 살아야 하는 존재이다. 문제는 거의 모든 사람이 생각의 노예에 빠져 산다는 점이다. 이로써 생각에 의해 상처받고 병들고 신음한다. 이는 호랑이 발톱이 호랑이 자신을 공격하며 학대하는 것과 매한가지이다. 깨어난 삶이란 이런 상태를 벗어난 삶이다.


마음과 생각

3333.JPG


마음과 생각은 서로 가역적이다. 2개의 물통을 하나의 파이프로 연결해놓은 것과 같다. 언제든 상호 교류할 수 있다. 위 그림에서처럼, 하나의 마음이 여러 개의 생각을 파생시킨다. 배고픈 마음이 생겨났다. 그러자 그 마음을 구체화하기 위해 무수한 생각들이 파생된다. 하나의 마음이 폭탄의 파편처럼 수만 가지의 생각을 파생시킨다.


4444.JPG


위 그림은 하나의 생각에서 수많은 마음을 파생시키는 그림이다. 꿈을 실현하고자 한다. 이 하나의 생각이 마음을 자극한다. 집착하게 한다. 걱정, 근심에 휩싸이게 한다. 고통, 흥분, 분노, 절망 등을 느끼게 한다.

이렇듯 마음과 생각은 서로 간에 파이프라인으로 연결되어 끊임없이 상호 교환적이다. 그래서 마음과 생각의 경계가 간혹 불분명하게 다가온다.


끝말

마음과 생각의 정체가 무엇인가. 또 마음과 생각이 일어나는 과정과 상호 교류하는 메커니즘에 대해 살펴보았다. 명상의 대상인 마음과 생각의 모호함을 명확히 하려는 노력이 명상을 진일보시킨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지금 당장 명상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을 찾는 일은 그 무엇보다 소중한 일이기 때문이다. 무슨 거창한 깨달음이 목적이 아니더라도 인생을 더 의미 있게 살기 위해 명상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이라 했다.

어느 곳에서나 주인이 된다면, 서 있는 그곳이 모두 참될 것이다.

마음과 생각의 작용에서 벗어나 본성(참나)에 의해 산다면, 당신의 삶이 모두 참되기 때문이다.

이것이 명상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행복하려면 시간을 내던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