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말벌과 꿀벌

by 달빛타기

말벌은 전투를 위해 탄생한 놈 같다. 여섯 개의 팔다리는 근육마저 거추장스러운 듯 아예 철심을 박아놓았다. 외계인처럼 툭 튀어나온 눈은 얼굴의 절반 넘게 차지하고 머리에는 철갑 투구를 착용하고 무시무시하게 뾰족한 턱은 날 선 도끼 같아 한번 내리 찍히면 살점이든 뼈든 어느 한 곳은 반드시 요절날 것이 분명하다. 신은 이런 무시무시한 무기에 더하여 호랑이 문양까지 몸통에 새기고 더하여 날개까지 얹히어주었으니 보기만 해도 오금이 절로 저린다. 가만히 앉아있는 모양새만 봐도 시커멓게 위장크림을 얼굴에 바르고 마지막 출병을 기다리는 수색대 첨병의 비장함이 서려 있다. 온몸에 성글게 난 털은 마치 거북선의 상판에 화살촉을 거꾸로 세워놓은 듯 흠칫 터럭 한 올 한 올에서 공포가 도사린다. 먹이를 탐지하는 더듬이와 잘록한 날개는 전투말 위에서 망토를 두르고 양손에 칼을 높이 들고 호령하는 조자룡 같다. 또는 고대 바빌로니아 파괴의 신 네르갈의 환생이 있다면 딱 이 모양일 거다. 태극마크를 단 말벌이 어쩌다 그 넓은 아메리카 대륙에 상륙하여 생태계를 무차별적으로 파괴하고 있어 골칫거리라는 소식도 들은 바 있다. 훗날 벌의 역사를 더듬어보면, 칭기즈칸의 대륙 정복사와 판박이가 되지는 않을까 싶다.


이에 비해 꿀벌은 말벌과 같은 벌목目임에도 춘삼월 꽃놀이 패 미소녀가 따로 없다. 그가 기껏 소유한 무기라야 들에 꽃 나들이 온 소녀가 혹 몰라 허리춤에 은장도 하나 달랑 감추고 있는 모양이랄까. 꿀벌의 복부에 난 미세한 솜털은 노란 꽃술에 가면 노랑 털로 범벅이 되고, 붉은 꽃술에 가면 붉은 꽃으로 범벅이 될 만큼 여리여리하다. 꽃밭에서 꿀주머니에 꿀을 가득 빨아들이고 화분花粉을 뒷발에 둥실하게 뭉쳐 날아오를 때는 판다가 공놀이하며 떼굴떼굴 굴러가듯 나는 것인지 파닥이는 것인지 당최 그 날갯짓이 경이롭다 못해 마법 같다. 하기야 항공학적으로 꿀벌은 날아오르는 것 자체가 불가하다고 하지 않던가. 말벌이 강인한 남성 중에서도 군인상이라면, 꿀벌은 꽃처럼 어여쁜 여성 중에서도 가녀린 소녀상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인다.

image.png?type=w580


꿀벌이 꽃놀이 패답게 이 꽃, 저 꽃 날아다니며 바지런히 먹이를 채취하는 것에 비해, 말벌은 먹이를 가리지 않는다. 꽃에서 꿀이라든지 나무 수액은 당연지사고 메뚜기, 파리, 딱정벌레뿐 아니라 동종인 다른 벌을 잡아먹는 그야말로 곤충생태계의 호랑이이다. 먹이사슬 최상층에 위치한 잡식성 곤충이 말벌이다. 말벌에게 있어 꿀벌은 서로 같은 종種이라기보다는 먹잇감에 불과하다. 꿀벌은 말벌을 맞닥뜨리면 고양이 앞에 쥐다. 말벌은 꿀벌의 오백 마리 이상과 맞먹는 독성 독침을 가지고 있다. 장수말벌 한 마리가 꿀벌 수백 마리를 물어 죽일 수 있다. 장수말벌 떼가 한번 출동하면 꿀벌 집 근처는 초토화 돼 버리고 만다.


말벌과 꿀벌의 싸움에서 꿀벌은 맞상대가 되지 못한다. 가공할 말벌의 흉포함에 꿀벌은 멸종이 될 수도 있는 위기를 느꼈으리라. 이에 꿀벌은 일방적으로 당할 수만은 없었던지 침략자 말벌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묘책을 쥐어짰다. 말벌에 대항하여 떼로 덤벼 하나를 상대해보기도 했으리라. 그러나 그 강력한 무기 앞에 낙엽 쓰러지듯 역부족이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여럿이 말벌을 에워싸서 말벌의 체온을 급격히 올려보기로 했다. 그러자 말벌이 자기들보다 온도에 지극히 취약하다는 것을 간파했다. 그들은 몸을 비비대며 열을 내고 열이 빠져나가지 않게 집단으로 뭉쳐서 마치 사우나실에 가두는 방식으로 말벌을 공격했다. 꿀벌은 그들의 치사온도 한계점인 48도 정도까지 끌어올렸다. 죽기 아니면 살기로 끌어올린 꿀벌의 열기로 급기야 말벌은 치사 상태에 빠졌다. 꿀벌은 말벌이 그들보다 낮은 46도 정도에서 해롱해롱 쓰러진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아챘다. 궁즉통이라 했다. 모든 것이 우월한 존재란 없는 법인가 보다. 꿀벌은 소녀의 손길처럼 연약했지만, 말벌보다 나은 조그만 장점 하나를 발견했고 힘을 합쳐 그들을 이겨낼 수 있었다. 말벌 처지에서는 꿀벌을 취하려다 자칫 치명상을 입고 저승길에 가야 할 판이니, 꿀벌이 뭉쳐있는 곳에 가기를 주저하지 않을 수 없다. 일대일 맞짱으로는 도저히 상대가 안 되므로 여럿이 힘을 합쳐 침략자를 끌어안고 부딪혀 말벌의 체온을 뜨겁게 하여 쓰러뜨리는 것, 이 얼마나 슬기롭고 눈물겨운 약자의 생존방식인가.


강자와 약자의 사는 방식은 그 사는 형태만 다를 뿐이다. 강자라고 마냥 승리하고 약자라고 마냥 패배하지 않는다. 조물주는 누구에게나 필시 한 가지의 장점을 주었다. 세상 이치가 이러할 진데, 스스로 약자라고 포기할 일이 아니다. (*)

image.png?type=w580


keyword
작가의 이전글돌덩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