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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나명상

-본래성품(참나)를 찾는 명상

by 달빛타기

‘참나명상’은 내 몸 안에 있는 빛나는 존재를 완전하게 발견하는 명상이다. 본래 성품인 진짜 나(참나)를 찾아가는 명상이다. 생각과 감정의 일어남을 알아차리고, 내려놓음으로써 본래 성품을 드러내 참나가 당당히 주인으로 살도록 하게 하는 명상이다.


‘참나명상’은 나를 둘러쌓고 있는 것 중에 최외곽에 위치한 생각을 먼저 없애고, 그다음 마음을 없애고, 몸을 없앨 때 비로소 참나가 드러나는 명상법이다.



명상은 우리 안에 가득 찬 에고를 없애는 것이다. 에고는 3가지의 요인으로 발생한다. 마음, 생각, 그리고 시간이다. 무시간성(t=0)에 존재했을 때 이를 ‘현존’이라 한다.

내가 권하는 명상법은 2가지이다. 하나는 ‘참나명상’이고 또 하나는 ‘현존명상’이다.

참나명상은 참나를 찾아가는 명상으로 좌선 명상을 통해 수련한다.

현존명상은 실생활에서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는 명상으로 행선을 통해서 수련한다.

우선 참나명상부터 소개한다.


참나명상

편안한 자세로 앉는다. (전편, ‘명상의 자세’ 참조)



<준비>

눈을 감습니다.

호흡을 천천히 들이쉬고 내뱉습니다.

배꼽 아래까지 깊숙이 들이마시고 내뱉습니다.

호흡에 고요함이 있을 때까지 반복합니다.


<생각 off>

이제 생각을 멈춥니다.

마치 스위치를 끄듯이 생각의 스위치를 내립니다.

생각이란 과거나 미래 어느 시점에 가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생각은 하나의 사진처럼 이미지화 되어 떠오릅니다.

나의 의식은 이제 생각이 없으므로 과거나 미래에 대한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습니다.

이제 나는 불이 꺼지듯 생각이 소멸하였습니다.


<마음 off>

생각을 내려놓으니 마음이 남아있습니다.

마음은 몸의 언어입니다.

몸에서 오는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여 봅니다.

생각에 가려 들리지 않던 주위의 소리가 들립니다.

숲이라면 새소리가 들릴 것이고,

도시라면 자동차, 기계음, 음악 소리, 사람들 소리도 들릴 것입니다.

바람의 촉감이 느껴질 것이고, 향긋한 꽃내음이 날 수도 있습니다.

몸에서 느껴지는 감각을 있는 그대로 하나하나 느껴봅니다.

생각을 내려놓자 생각으로 가려졌던 감각들이

비로소 소리도 들리고 바람의 존재도 느껴집니다.

이제 자연의 일부분처럼 느껴집니다.

이제 그 마음마저 내려놓습니다.


<무념무상>

나는 이제 생각도 없고 마음도 없는 진공 상태가 되었습니다.

나의 의식은 무념무상의 상태가 됩니다.

그 상태를 계속 유지합니다.

무념무상은 명상이 아주 잘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무념무상이라는 생각마저도 없습니다.

생각이 없고, 마음도 없고, 몸도 없습니다.


<생각과 마음의 자발적 일어남>

그러나, 생각과 마음이란 놈은 그리 쉬운 상대가 아닙니다.

<생각>

우선 생각이 자꾸 비집고 올라옵니다.

생각이 일어나면 마음도 덩달아 동요합니다.

하나의 생각된 이미지가 생기면 또 다른 이미지가 그 위를 덮습니다.

이런 식으로 생각은 나에게 이미지를 스크린의 필름처럼 보여줍니다.

하나의 사진처럼 과거의 기억이 머리에 떠오르다가 사라집니다.

하나의 사진처럼 미래의 상상이 머리에 떠오르다가 사라집니다.

어린 시절 증오의 말이 기억되면, 그 순간 나는 증오가 됩니다.

학창 시절 슬픈 상황이 기억되면, 그 순간 나는 슬픔이 됩니다.

미래에 거창한 사람이 되는 꿈이 상상되면 나는 그 순간 높은 사람이 됩니다.

생각이란 놈은 마치 주인인 것처럼 나를 이렇게 지배하고 조종합니다.

생각은 과거나 미래가 있어야 존재하는 허상과 같은 것입니다.

<마음>

분노가 일어났을 때 나는 화가 됩니다.

욕망 속에 있을 때 나는 욕망이 됩니다.

두려움 속에 있을 때 나는 두려움이 됩니다.

마음은 마치 주인인 것처럼 나를 이끌고 다닙니다.


생각이, 마음이 스스로 방어기제가 작동하여 명상하고 있는 나를 자꾸 방해합니다.

자신이 나의 주인인 것처럼 행동하려 합니다.

생각이, 마음이 나를 지배하는 방식입니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생각아, 잠깐 멈춰라.’라고 의지를 보여줍니다.

내 의지가 확인되면 생각은 금방 통제되고 제어됩니다.

그리고 주시자가 됩니다.

내가 주시하고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생각은, 마음은 움찔하면서 존재의 뜻에 순응합니다.

지금까지 생각이, 마음이 나 자신인 줄로 착각하며 살았는데,

생각과 마음이 각각 분리되어 하나의 실체로써 다가옵니다.

그리고 그것은 내가 아니었음을 압니다.

나는 생각이 일어남을 지켜봅니다.

나는 생각이 그만 일어나라고 의지를 보여줍니다.

나는 마음이 일어남을 지켜봅니다.

나는 마음이 그만 일어나라고 의지를 보여줍니다.

생각이란 놈은 내가 아닙니다.

내가 아닌데, 생각의 노예가 될 수 없습니다.

가짜가 진짜 나를 통제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겠습니다.

이것이 내가 주인이 되어야 할 가장 큰 이유입니다.


<다시 무념무상>

이제 생각이 없는 자리가 생겼습니다.

이제 마음이 없는 자리가 생겼습니다.

이 상태가 곧 無의 상태입니다.

여기까지가 에고를 내려놓은 상태입니다.

이제 생각도 없고 마음도 없는 상태

무념무상의 상태가 계속됩니다.

생각의 이미지가 사라지니,

마음속에 텅 비어 있는 공간이 보입니다.


지금 나에겐 ‘시간’이란 관념도 없습니다.

지금 나에겐 ‘공간’마저도 없습니다.

그저 무의 상태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마음속에 텅 비어 있는 공간이 보입니다.


<참나 찾기>

이제 에고가 없는 그 자리에서

진짜 나를 발견합니다.

생각이란 놈에게 잠시 멈추라고 했던 나,

마음이란 놈에게 잠시 멈추라고 했던 나,

진짜 나, 참나를 발견합니다.

생각과 마음을 지워버리니까 아무것도 없는 진공의 상태, 무의 상태입니다.

칠흑 같은 밤길처럼 깜깜한 상태가 무한히 펼쳐집니다.

우주만큼이나 큰 깜깜함이 펼쳐집니다.

그 안에서 나의 별, 참나가 있습니다.

참나는 발명이 아닙니다. 발견입니다.

태어나면서부터 가지고 있던 본래 나를 찾아봅니다.

이제 나는 어릴 적 보물찾기하는 것처럼 진짜 나를 찾습니다.

조금이라도 생각에, 마음에 가려있다면 진짜 나는 보이지 않습니다.

생각이 순식간에 떠오르고 하나의 이미지가 나를 찾지 못하게 가릴 수 있습니다.

계속 생각을 떨쳐버립니다. 그러면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습니다.

보물찾기를 계속합니다.

너무 급하지도 않고, 너무 느슨하지도 않게

참나를 찾아봅니다.

집중하여 찾아봅니다.


나의 마음이 완전히 소멸되었지만,

하나의 마음이 남아있습니다.

참나를 만나야 한다는 그 유일한 마음입니다.

그 치열한 마음으로 계속 참나를 찾습니다.

참나는 형상이 아닙니다.

참나는 또한 지극히 개별적인 체험입니다.

언어로 말할 수 없는 오묘함입니다.

광명일 수도 있고 청음일 수도 있고 향기일 수도 있습니다.

다만, 참나를 만나면 바로 알게 됩니다.

이 존재가 나의 깊숙이 자리하였던 진짜 나였다는 것을요.


먹구름에 햇빛이 가리듯이 나의 번뇌들이 참나를 가리고 있습니다.

이제 번뇌가 없으니 참나를 만나게 됩니다.

번뇌가 완전히 소멸할 때, 참나는 스스로 빛나게 됩니다.

참나는 항상 그 자리에서 빛나고 있습니다.

밤하늘에 구름을 없애면 비로소 훤한 달이 드러나듯이

원래부터 영원히 빛나고 있었던 참나가 드러납니다.

내 안에 에고라는 구름을 거두어 내면 반드시 보입니다.

보이지 않다는 것은 아직도 구름이 남아있다는 뜻입니다.

내 안에 생각과 마음 등 에고가 잔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에고를 완전히 걷어내십시오.

걷어내고, 걷어내고 반복합니다.

그러면 반드시 드러날 것입니다.


<참나 발견>

아, 참나가 훤히 빛나고 있습니다.

아, 이 존재가 진짜 나구나,

아, 이 존재가 본래 성품이었구나.

아, 이 존재가 영혼이구나.

아, 이 존재가 신이구나.

아, 이 존재가 하느님이구나.

아, 이 존재가 참나구나.

아, 이 존재가 불성이구나.

아, 이 존재가 아트만이구나.

아, 이 존재가 도(道)구나.

아, 이 존재가 깨달음이구나.

아, 이 존재가 영원히 나를 살게 하는구나.


이제 나는 주인을 맞이합니다.

지금껏 나라고 믿었던 육체와 에고와 생각이 내가 아님을 확인합니다.

이제 참나가 내 몸에서 늘 빛나게 합니다.

참나의 존재가 내 육체와 에고를 통제하도록 합니다.

지금까지는 에고가 주인이 되어 저차원의 삶을 살았습니다.

이제 참나가 주인이 되고 참나가 빛나는 삶을 살 것입니다.


우리는 늘 육체적으로 고난이 있습니다.

마음에 상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나는 참나를 발견하였습니다.

형상에서 오는 에고의 문제들은 매우 저차원적입니다.

거대한 창공에 먼지 한 톨 정도의 문제밖에 되지 않습니다.

영원히 사는 내가 저렇게 내 안에서 빛나고 있지 않습니까.

그 존재는 형상과 에고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습니다.

아무리 형상이 괴롭고 마음이 요동을 쳐도

그런 것은 어떤 상황에 불과합니다.

내 존재는 영원히 그렇게 빛나고 있습니다.


어느 때고 내가 주인인 삶을 살아야 합니다.

늘 명상하십시오.

에고가 참나를 가리지 않도록 늘 명상하십시오.

나는 영원불멸의 빛나는 삶의 주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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