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동윤 Mar 30. 2022

미운 아줌마

1.

먼 사람들은 아름답지만 가까워질수록 아름다움이 옅어지는 게 무섭다.


2.

학교 버스 기다리던 중 벌어진 일이다. 옆에 있던 지긋한 아저씨가 도로 위로 뛰어들었다. 햇빛이 너무 뜨거웠던걸까. 그는 굼뜬 걸음으로 횡단보도가 멀지 않은 곳에서. 굳이 더운 숨 뿜어대는 차량 사이를 지난다. 정지선 향해 달려오던 하얀 택시가 불쑥 튀어나온 정수리에 급정거를 한다. 따가운 진노랑 햇빛이 남자의 편평한 등에 닿아 하얗게 반짝인다. 신호등 위 돋아난 카메라도 반짝인다. 소심한 경적이 울린다. 빨간불이다. 느린 걸음의 남자는 뒤돌아 보지 않는다.


'아저씨 저기 카메라가 있어요.'


어쩌면  나이든 아저씨는 바로  같은 관심을 기대했는지 모른다. 세상에 잊혀가는 이가   있는 가장  외침. 누군가 굽은 피터팬의 움직임을 보고  마디 붙여줬으면 하는. 세상에 작은 각인을 남기고 싶은 것이다. 나는 언젠가 머플러 제거하고 달리는 오토바이 녀석에게  시선을 똑같이 나눠드렸다. 피해자는 가해자가 된다. 가해자는 피해자가 된다. 그런 역전은 싫다. 무관심이 약이라는데. 세상에는 나와 다른 들이 너무나 많다.


3.

지하철 2호선. 색 바랜 보라빛 패딩 입은 곱슬머리 아줌마는 좇기듯 급하다. 그녀의 건조한 손에는 검은색 수레 손잡이가 들려있다. 지하철 문이 열리고 아줌마는 당신 앞 몇 없는 사람들 사이를 헤엄치며 수레를 끌고 뛰쳐나갔다. 저돌적인 몸놀림 피하지 못한 탑승객의 운동화 위로 바퀴가 헛돈다. 그 여성은 눈쌀을 찌뿌렸다. 나도 따라 눈쌀을 찌뿌린다. 쪼그라들어 불편한 우리네 시야로 들어오는건 슬로우모션으로 달아나는 아줌마와 수레다.


4.

들어도 들을 수 없는 언어와 들려도 들리지 않는 언어. 우리는 어쩌면 외국어를 쓰는지 모른다.


5.

또 다른 지하철 2호선. 나는 벤치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불쑥 누군가 나와 책 사이를 비집고 얼굴을 들이민다. 푸른 형광 패딩 차림의 안경 쓴 아줌마다. 스스로 자르셨는지 무척 짧은 앞머리와 레오파드 무늬 냉장고 바지. 엉뚱한 조합이 주는 위화감에 나는 긴장했다. 어눌한 목소리로 그녀가 묻는다.


"학생 내가 몸이 너무 아픈데 화장실을 못 가. 천 원만 빌려줄 수 있어?"


현금이 정말 없기도 하거니와 아줌마가 택한 방법도 당혹스럽고 더욱이 나는 학생도 아니었기에 죄송하다 하였다. 그녀는 멍한 눈동자로 우리 사이 원래 그러하듯 냉정히 떠났다. 내게 했던 물음 그대로 가져가 다른 누군가에 옮기는, 오가는 타이밍을 스스로 정하는 아줌마의 차가운 태도가 미웠다.


지하철 도착할 때쯤. 사람들 사이 섞여있는데 저 멀리 미운 아줌마가 보인다. 시발시발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유괴범. 유괴범이나 되는 줄 아나보지? 이런 xx 같은 xx xx ..."


2호선 지하철 기다리며 스쳐간 표정들이 떠오른다. 아줌마가 다가가면 한 학생이 푸른 형광 패딩에 가려진다. 형광색 푸름이 푸르름을 가린다. 이윽고 푸름이 떠나면 당혹스런 표정의 붉음이 남는다. 또 하나 앳된 학생이 계단을 내려온다. 푸른 형광 패딩이 등에처럼 빙 둘러 날아가 학생을 가린다. 푸름이 푸르름을, 또 한 번 가린다. 삐죽 나온 학생 얼굴에서 나는 당혹과 미안의 붉음을 보았다.


미운 마음 연소되고 떠난 빈 자리. 의문이 스멀스멀 기어오른다. 그녀의 몸 상태와 화장실의 진실. 그녀가 택한 액수에 대한 궁금증. 어린 학생들만 고른 선택의 기저에는 단 하나 소중하게 남은 나이에 대한 특권 의식이었던걸까. 시원함에 닿지 못할 이유를 미련하게 좇는 것은 고작 천 원이 낳은 불편함이라서. 혹여 내게 천 원 있었더라면 그녀는 화장실에 갈 수 있었고, 그녀가 명명한 학생들의 얼굴이 붉게 물들지 않았을 것이며, 아줌마가 많은 사람들 앞에서 욕지거리 내뱉는 일도 없었을텐데 하는. 나는 그 아줌마가 미웠다.



작가의 이전글 22.03.24 연습실일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