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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avrin Jul 25. 2020

해파리처럼 살기

01. 되는대로 살자

꿈이 뭐냐는 질문만큼 사람을 곤혹스럽게 하는 건 없는 것 같다

이런저런 미사여구를 다 붙여서 말하고 나면 이걸 내가 이룰 수 있을까 하는 부담이 들고

꿈같은 건 없고요 그냥 놀고 싶습니다!라고 말하고 나면 내가 한심한 사람이 된 기분이 든다.

그러니까 어느 쪽이든 어떤 대답이든 말하는 사람도 마음이 무겁고 듣는 사람도 곤란한 질문이랄까?

코로나 시기를 지내면서 근 세 달 동안을 별다른 약속 없이 집 안에서만 지냈다.

다른 사람에게 쉬이 만나자고 말하기도 어렵고, 다른 사람의 약속에 흔쾌히 나가기도 어려워 바쁘다는 말로

오는 약속과 가는 약속 모두를 차단해버렸다.

처음 며칠간은 내 멋대로 살 수 있는 시간이 생긴 게 참 편하고 좋더라 그리고 그 며칠이 지난 후엔 모두가 예상하듯 인간이 괜히 사회적 동물이라고 불리는 것이 아니구나 생각하게 되었다. 

사람이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면 으레 자신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는데 나는 스스로에게 저 곤혹스러운 질문을 끊임없이 물어보고 또 물어보았다. (저 질문의 승자는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도 그 때문이다)

차라리 남이 물어보는 질문이었다면 하하 웃으며 넘기기라도 했을 텐데

나를 가장 잘 아는 녀석이 물어보는 질문이라 도망치지도 못하고 계속 저 질문에 매달려야만 했다. 

그리고 석 달만에 내가 내린 결론은 되는대로 사는 삶을 사는 게 내 꿈이다. 지금의 순간에 집중하면서 살기

수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중요하다고 하는 말이지만, 요즘처럼 크게 와 닿은 적은 없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지지난주까지만 해도 말도 안 되는 무력감과 울적함에 혼자 눈물짓던 순간도 있었다.

이 세상에 나 혼자만 동그마니 남겨져 나에게 남겨진 것은 아무것도 없는 기분

나 말고 다른 사람들은 이렇게나 바쁘고 열심히 살아가는데 나만 시간을 죽이고 있는 기분

그 묘한 패배감과 자신에 대한 자책감이 하루하루를 참 힘들게 옥죄었다. 

글도 쓰고 싶었다가 에이 내가 무슨 글이야 안 쓴 지 엄청 오래되었는데 나보다 잘 쓰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뭔갈 시작하기도 전에 거절하는 것은 결국 나 자신이었다.

이걸 해볼까 저걸 해볼까 하기 전에 내 머릿속에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그랬다가 망하면 어떡하지? 였다. 

근데 망하면 뭐 어떤가! 당장 사람이 죽고 사는 문제도 아닌데

오히려 사람이 극단적인 상황이 닥치면 대범 해지는 순간이 있지 않은가 나한텐 지금이 그 순간인 것 같다.

그래서 새로 결정한 내 꿈은 슈퍼카를 사는 것도 아니고 고층아파트에 사는 것도 아니고 행복하게 사는 것도 아닌 그냥 되는대로 사는 것이 되었다. 

예전에 인터넷 어느 게시글을 읽은 적이 있다. 해파리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대충 그런 내용이었던 것 같은데 

해파리들은 지느러미도 없고 말랑한 몸이 전부라서 대부분의 시간은 그냥 파도에 몸을 맡기고 둥실둥실 떠다니는 게 삶의 대부분이라는 글이었다. 물론 운이 나쁘면 그 물살을 따라 바다거북이를 만날 수도 있고, 뾰족한 바위에 부딪힐 수도 있겠지만, 뭐 어쩌겠는가 그게 내 운이었나 보지

열심히 살다가 바다거북이를 만나는 것보단 편하게 살다가 만나는 쪽이 차라리 덜 억울하지 않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 내 롤모델은 해파리가 되었고, 좌우명은 해파리처럼 살기가 되었다.

오늘도 내일도 되는대로 살아보지 뭐! 남에게 피해만 안 끼치면 되는 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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