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확행'을 생각한다고?
며칠 전 헬스장에서 하체 운동을 하다 잠깐 쉬는 동안, 내가 무의식적으로 가장 편한 자세를 찾아냈다는 이야기를 썼다. 그 이후 '쉼'을 생각하면서 언급했던 '소확행'을 쓰고 나서 문득, 요 근래 소확행이 없었다는 걸 새삼 알게 됐다.
'마지막 소확행이 언제였더라.'
책상 옆에 놓인 수납함 제일 앞에 꽂혀있는 스티커를 보며 '이걸 언제 샀는지' 기억을 더듬었지만 떠오르지 않았다. 가계부 앱을 열어 사용내역을 더듬고 나서야 언제인지 알 수 있었다.
5월, 바쁨이 최고조에 이르는 때였다. 프로젝트 마감일이 6월 초, 5월은 나 자신을 갈아 넣는 시기다. 그날도 집에서 이미 갈아 넣은 뒤 회사에서 또 갈린 뒤라 점심 식사를 건너뛰기로 했다. 수면이 부족하면 속이 울렁거려서 되려 음식이 땡기지 않기 때문이다. 갑자기 잉여시간이 생겼으니 빠르게 기분 전환할 걸 하기로 했다. 바로 스티커 플렉스!
나는 기본적으로 문구를 좋아한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덴버라는 판박이 스티커가 든 풍선껌이 애들 사이에서 인기였고, 띠부실이라는 것도 결국엔 스티커였다. 스티커는 우리 유년시절을 점령했고, 나는 그대로 몸만 컸나 보다. 그런 나에게 소모품인 스티커는 진짜 '소확행' 구실을 톡톡히 해내는 품목이었다.
회사 근처에서 스티커 살 데라고는 없는 거 빼고는 다 있는 그곳! 다이소에 도착해 자연스럽게 스티커가 있는 곳으로 갔지만, 들뜬 기분이 가라앉을 수밖에 없었다. 슬라이딩 형식의 진열대를 밀면서 다 뒤져봐도 살 게 없었다. 진열된 대부분의 스티커가, 책상 옆 스티커 보관함에도 있던 것이다.
'소확행'은 어디까지나 소소해야 한다는 철칙과 습관적인 소비를 지양하는 생활신조 탓에 평소에도 최대 2천원어치만 사는 편이었는데 그게 잦다 보니 신상품 출시일이 내 구매력을 따라오지 못했나 보다. 원래 프로젝트 마감을 앞두고 '집중 모드'일 때는 온전한 쉼과 행복을 느낄 여유가 없기에 '소확행'이 필요한 법이다 보니, 자주 구매했던 탓이다.
결국 빈손으로 돌아오는 길이 조금 허무했다. 딱 2천원 만큼만 확실하게 행복해지고 싶은 기분을 해소해 줄 구매거리는 없었다. 무인 아이스크림가게에 들어가 600원 하드를 사서 입에 물고 나왔지만, 그 소확행은 딱 600원짜리, 1,400원이 부족한 아쉬움이 더 확실하게 느껴졌다.
이 시기에는 내 몸 가누기도 귀찮은 때라, 휴대폰 따위 주머니에 넣어두고 이어폰도 끼지 않고 좀비 워킹으로 걸어 다니는데 문득 장미꽃들이 나와 함께 걷는 걸 알아차렸다.
회사에서 다이소 가는 길은 주로 산책으로 많이 다니던 길이다. 나무가 양옆으로 파릇하고, 하늘을 올려다보면 나뭇가지들 사이로 파란 하늘이 보인다. 고개를 한껏 젖혀 하늘만 보고 걷다 보면, 높은 빌딩들이 낮은 빌딩으로 변하는데 그 순간 하늘이 확 트인다. 그러고 나면 벚꽃나무길이 시작되고, 오른쪽으로 꺾으면 장미꽃길이 이어진다.
다이소를 향해 갈 때는 경보하듯 빨리 걷느라 미처 보지 못했던 경치는, 600원어치 소확행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서야 눈에 들어왔다. 장미꽃길은 동 주민센터와 동네 주민들이 협조해서 조성하고 유지관리를 하는 '주민참여정원' 같은 거였다. 그래서인지 장미꽃이 관리가 잘 되어 있다. 겹장미꽃도 색깔별로 있는 그 길을, 아주 좋아했다.
동네 주민들에게는 장미꽃길을 가꾸는 게 소확행일지도 모르겠다.
부족한 1,400원어치의 행복을 넘어서는 행복감을 느끼며 회사로 복귀했다. 하지만, 그 경치는 이미 내게 익숙해져 있었고 오후 일과를 해내는 에너지로 쓰기엔 무리였다. 억지로라도 기분을 상기시키려고 콧노래도 흥얼거리고 늘 마시는 커피지만 '캬-' 소리를 내며 억지로 에너지를 끌어올렸다. 집에 가서 샤워하는 중에, 사지 못한 스티커를 참 아쉬워했던 기억이 있다.
드디어 6월 둘째 주 프로젝트 마감 후, 이번에야말로 기필코 사겠다는 의지로 대형 다이소를 찾아가 딱 5천원어치 소확행을 달성했다. 그 스티커가 스티커 보관함에 담겼고, 아직 비닐도 뜯어보지 않은 상태로 7월이 됐다.
그렇게나 사고 싶어 했으면서.
프로젝트 마감 이후 나 자신을 돌보는 여유가 생기자, 스티커가 주는 행복은 뒤로 미뤄진 거다. '대확행' 크고 확실한 행복들이 이어지는 틈에서 5천원어치 행복은 끼어들 틈이 없었던 거지.
지금은 잠시 소강 시즌, 조만간 또 바빠지는 시기가 찾아온다. 5천원어치 소확행이 필요할 테니, 그때가 되면 비닐을 뜯어주기로 했다.
각자의 ‘소확행’ 방법이 있을 것이다. 편의점에서 사는 아이스크림, 치맥, 넷플릭스나 유튜브, 나노블럭 완성 같은 큰 에너지를 들이지 않지만 확실하게 행복감을 주는 방법들. '소소하다'보다는 '확실하다'는 게 포인트다. 실패할 확률이 거의 없는 행복.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게 너무 익숙해졌다. 소확행이 아니라 '소확생' 같달까. 작은 행복으로 살아가는 방식. 큰걸 기대하지 않고, 커다란 행복은 경품추첨처럼 언제 당첨될지 모르니, 무료로 가져가는 누룽지맛 사탕 하나 집어가는 기분. 이 정도면 괜찮다고, 나쁘지 않다고 스스로를 달랜다.
점점 그 소소한 행복조차 '얻으려고 애써야 하는 상황'이 점점 더 많아지는 것 같다. 예전에는 구름이 예뻐서 하늘이 파라니까 기분이 좋았는데, 점점 '오늘도 기분이 좋아야 한다'는 의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 시도는 확실하게 실패하기도 한다. 소확행을 자주 해서 더는 구매할 스티커가 없는 것처럼.
어쩌면 이건 직장인의 애환일지도 모른다. 스티커에 열광하는 어른, 캐릭터 상품을 사기 위해 팝업스토어를 예약하고 대기하는 어른. 누가 보면 웃길 수도 있겠지만, 그런 우리야말로 진짜 웃기지 않기 위해 애쓰는 중일 거다.
현대인은 누구나 기분전환이 필요하다. 회사에서, 가정에서, 세상에서 버티느라 닳아 있는 나를 위해, 잠깐의 숨 돌림이 필요하다. 소확행은 그래서 생겼을 것이다. 커다란 행복이 너무 비싸고, 너무 멀고, 너무 불확실하니까. 우리가 당장 할 수 있는 건, 천원짜리 귀여움이나 5분짜리 여유밖에 없으니까.
그렇다고 해서 그게 하찮은 건 아니다. 어쩌면 그것들이 진짜 회복의 시작일지도 모른다. 큰 행복은 멀고, 작은 기쁨은 가깝다. 소확행은 현실적이다.
누군가는 이런 걸 보고 한심하다고 할 수도 있다. 더 큰 목표를 세우고, 더 의미 있는 일에 시간을 쓰라고 할 수도 있다.
한때 '소확행'에 머무는 현대인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는 여론이 있었다. '저렴한 취향을 갖게 되고, 그것에 만족하고야 마는 그들'을 우려한다면서, '더 큰 야망'에 대해 주입하려 하기도 했다. 현실은 사회적으로 나아지지 않는데 말이다.
소확행이 이렇게 필요해진 사회적 배경을 먼저 봐야 하지 않을까. '더 큰 야망'을 품을 수 없을 만큼 팍팍한 현실, 미래의 불투명하게 만든 게 개인의 힘으로 되는 일인가?
'취향'에마저 급을 나누려 하고,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하자'라는 사회를 향한 목소리를 내는 대신, '소확행'으로 회복하려는 현대인들에게 '포부가 작다, 루저, 저급문화지향'이라며 비난하는 것도 영 좋아 보이지 않는다.
근본적 해결책은 제시하지 않으면서 개인에게만 ‘더 노력하라, 더 큰 꿈을 꿔라’고 요구하는 무책임한 조언들이 더 저급한 건 아닐까?
'소확행' 역시 근본적 원인을 해결하는 건 아니다. 다만, 나 자신을 돌아보고 근본적 원인을 해결하고자 일어날 힘을 잠깐 얻는 거다. '행복'이라는 거창한 단어를 쓰고 있지만, 기분 전환이 돼서 느끼는 감정이 '행복'이기에 소확행이라고 부를 뿐이지, 누군가 지어서 그렇게 된 게 아니라 자연발생한 문화다.
'소확행'은 지양할 대상이 아니라 이용해야 할 문화다. 소소한 행복이 '확실하게' 나를 구해주기 때문이다. 승진을 기다리고, 연봉이 오르기를 기다리고, 여유로운 삶을 기다리는 동안 우리는 계속 살아가야 한다. 그 기다림의 시간을 견디게 해주는 게 바로 이런 작은 행복들이다.
소확행,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완벽한 해답은 아니지만, 그래도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다.
지금은 잠시 여유가 있어 큰 행복을 느끼며 나 자신을 돌보고 있지만, 조만간 또 바쁜 시기가 오면 그때는 책상 옆 스티커의 비닐을 뜯을 거다. 그리고 그 5천원어치 행복으로 또 하루를 버텨내겠지. 그러고도 부족해서 또다시 가로수길을 걸어 스티커를 사러 가는 내 미래가 확실하게 예상된다.
난 그런 내가, 좀 웃기고, 좀 귀엽고, 꽤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