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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은 전이하는가?

감정의 전이에 대하여

by 보리차 Feb 27. 2025

 당신은 감정이 옮겨가는 걸 느껴본 적이 있는가? 부모님이 다투면 짜증이 확 치밀고, 친구들이 웃으면 당신도 웃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가?


 감정은 분명 전이한다. 친구가 슬퍼하면 나도 슬프다. 친구가 기쁘면 나도 기쁘다. 하지만 부정적인 방향으로 전이될 가능성이 더욱 높다.


 친구가 나와 함께 참가한 공모전에서 혼자 수상하면 질투나지 않는가? 꼭 똑같은 감정으로 전이해서 ‘전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이 아니다. 상대로 인해 감정이 변화함에 있어서 ‘전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감정의 전이는 위험하다. 물론 전이하기에 공감하며 사회를 꾸릴 수 있던 것은 맞다. 하지만 공감은 양날의 검이다. 상대가 자기가 힘들다고 말했다고 치자. 그러면 그걸 들어주는 당신 또한 부정적인 감정이 들 것이다. 그 부정적인 감정이 반복해서 느껴진다면 ‘병’으로 바뀔 수 있다.


 감정이 병이 되는 것은 굉장히 힘들다. 매일 같이 감정과 싸워야 한다. 사는 게 고통스럽다는 것을 그때 처음 느껴보았다. 내가 숨 쉬는 것조차도 공기가 아깝다고 느낄 만큼. 전이는 계속된다. 친구가 나에게 전이한 병이, 너무 고통스러워서 다른 친구한테 터놓았다. 그 친구와는 일방적으로 관계가 끊겼다.


 사람은 이기적이어야 한다. 나에게 부정적일 것만 같은 감정은 끊어내야 한다. 계속 짊어지는 것이 주변인에게 오히려 더욱 힘든 일이 될 것이다. 그 마음을 품고 공감을 때로는 버려라. 감정이 병으로 변질되었을 때의 고통은 상상을 초월하니까, 병으로 만들지 말라.


 힘들다고 무너지지 말라. 때가 묻었어도, 때묻지 않았을 적의 당신을 떠올려라. 가장 늦었다고 생각했을 때가 가장 빠른 법이다.


 무너지면 친구에게 상담하고 가족에게 기대기보다는 전문의에게 약 처방받는 게 가장 빠르다. 나에게 손실이 될 일을 하지 말라. 지지 않을 흉터가 되어 딱지가 되어, 나의 한평생에 붉은 줄을 긋지 말라.


 기쁜 감정만 전이하자. 슬픈 감정 전이할 일 없게 하자.


 나와 가족을 먹여 살릴 미래의 가장으로서, 현재의 가장으로서, 과거의 가장으로서.


 얼음과 눈으로 벽을 짜올린

 여기는 지상

 연민한 삶의 길이여.

 <가정> 중


 나는 박목월의 가정의 이 인용구만 두고 보자면 본래 <가정>의 해석과는 다른 또 다른 해석이 나온다고 본다.


 얼음과 눈으로 벽을 짜올린(가족이 아닌 상대를 경계하는, 가론 타인을 경계하는 모습)

 여기는 지상(사회, 세상)

 연민한 삶의 길이여(가련한 삶의 길이여)


 본디 해석은 가족을 지키기 위해 울타리를 쳐놓고 ‘여기는 지상‘부분이 가정이어야 한다. 벽을 짜올려 가정을 지키며 가련하게 미소짓는 가장의 무게를 설명한 <가정>의 제3연이다.


 그저 나의 상황을 빗대어 해석한 것뿐이다. 해석에 옳고 그르다는 것은 존재키나 하는고?


 얼음과 눈으로 짜올린 벽은 걸핏 보면 너무 차가워 보이지만, 그래도 가족을 지키기 위한 따스함이 존재한다.


 당신도 당신과 가족을 잘 지키길 바란다. 가련한 미소 지은 채, 살아가는 것. 고통스럽지만 그것이 사회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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