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cept 술 (1) 슬픈 운명
알콜을 분해할 수 없는 피는 물려받고 싶지 않았다
요즘 즐겨 읽는 ‘아무튼’ 시리즈에서 <아무튼, 술집>이 출간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미 김혼비 작가의 <아무튼, 술>이 있는데 <아무튼, 술집>은 무엇이 다른가. 호기심에 조금 더 알아보니, 인스타그램에서 ‘시 읽고 술 마시는 팟캐스트 <시시알콜>의 진행자 김혜경 작가의 술집 탐방기’라는 간단한 책 소개를 찾아냈다. 나는 술과 거리가 멀어도 아주 먼 사람이라 두 책을 읽을 확률은 거의 없겠지만, 만약 읽게 되더라도 도저히 공감할 수 없는 애주가의 문장에 내내 소외감을 느끼거나 음주 문화 탐방 정도의 견학 마인드로 읽어야 할 가능성이 높다. 두 책이 모두 술과 술집을 통해 얻은 삶의 깊은 통찰을 유려한 문장으로 풀어낸 수작(秀作)이라고 하더라도, 그들에게 나는 적절한 독자가 아닐 게 틀림없다. 아마 내가 술에 대한 이야기를 글로 쓰려면 <아무튼, 술>이 아니라 <Except 술>이어야 하지 않을까.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지긋지긋한 무엇에 대하여 쓰는 에세이 시리즈 이름을 떠올려봤는데, 우리말에서 ‘아무튼’과 비슷한 연결어들 중에는 뒤에 명사가 오는 순간 그 명사에 방점이 찍혀버리는 어감 때문에 아무튼 시리즈와 반대되는 의미를 만들 수가 없었다. 대신 ‘~을 제외하고’를 의미하는 Except를 쓰면, ‘술만 빼면 만족스러울 내 인생’ 정도의 의미를 함축할 수 있을 것 같다.
인생에서 가장 짧은 시간에 새로운 사람들을 왕창 만나야 했던 최초의 순간은 대학교 오리엔테이션이었다. 그 전날 저녁에 아빠가 편의점에서 맥주 두 캔을 사오셨다. 아빠가 저녁에 맥주 두 캔을 사오셨다는 이 흔한 문장이 우리 집에서는 아주 이례적이고 낯설다. 나는 부모님이 술을 마시는 모습을 거의 본 일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친척들도 명절 차례상에 올린 술까지 다들 잔에 입 한번 대지 않고 따라버리곤 했다. 여자들이 편해야 집안이 잘 굴러가는 거라고 온갖 제사와 차례까지 단칼에 없애버리신 할머니의 선언으로 그마저도 볼 일이 없게 되었다. 외가는 독실한 기독교인이어서 술을 멀리했지만, 아빠를 포함한 친가는 종교적인 이유와 전혀 상관없이 술을 가까이 할 수가 없었다. 아빠는 술을 딱 한 모금만 마셔도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이 시뻘개지고 눈까지 충혈된다. 모르는 사람들은 그게 ‘딱 한 모금’이 아닐 거라고 생각하지만, 정말 ‘꼴깍’ 소리나는 그 한 모금이 맞다. 만약 거기서 멈추지 않고 한 모금을 더 마시면 온몸 구석구석에서 거친 심장 박동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숨이 가빠진다. ‘필름이 끊길 때까지’ 술을 마신다는 표현은 아빠같은 사람은 절대 쓸 수 없다. 보통 사람들의 필름은 술로 끊겼다가도 다시 새 필름으로 이어붙이기가 되는 것도 같지만, 아빠의 경우에는 아예 이어붙일 기회가 없을 수도 있다. 아빠는 알콜을 분해할 수 있는 능력이 남들보다 현저히 떨어졌다. 술은 원래 마시면서 느는 거라는 어느 애주가의 말은 아빠에게 거의 폭력이나 다름없었고, ‘오늘은 먹고 죽자!’ 하는 어떤 술자리의 외침은 아빠에게는 끔찍한 예언일지도 몰랐다. 55년생 아빠는 아빠 세대의 남자가 술을 마실 수 없다는 게 얼마나 괴로운 일이었는지에 대한 일화를 자주 이야기하곤 했는데, 어떤 모임에서든 아빠에게 억지로 술을 먹이려 했던 사람들과 밤새 이어지는 술자리에 대하여 거의 분노에 가까운 비난을 쏟아냈다. 친가 식구들은 모두 아빠와 같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런 아빠가 자기 손으로 맥주를, 그것도 두 캔씩이나 사 온 것은, 대학교 오리엔테이션에서 술 마시다가 죽은 안타까운 학생들을 뉴스에서 이틀 연속으로 심각하게 다뤘기 때문이었다. 아빠는 딸이 술을 마실 수 있는 운명인지 시험해보려는 것이었다. 그런데 혼자 마시라고 하기는 멋쩍으셨는지, 대학교 오리엔테이션 전야제라는 희한한 이름을 붙여 부녀가 건배를 하자고 했다. 나는 식탁에 아빠와 마주 앉아 캔맥주를 딴다는 것에 신이 나기도 했고, 왠지 술을 잘 마실 수 있을 거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 때문에 짠! 하자마자 벌컥벌컥 절반을 들이켰다. 술맛을 모를 때라 쓰고 찝찌르르하고 톡 쏘는 액체가 목으로 다 넘어가는 동안 얼굴을 잔뜩 지푸렸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한꺼번에 마시면 어떡하냐고 아빠는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놀라서는 나를 가만히 지켜보았다. 나의 운명이 결정되는 순간이었다. 사실 나는 어떤 증상이 시작되더라도 버틸 작정이었다. 혹시 아빠와 같은 운명이라 하더라도, 최소한 다음 세대는 조금 진화하기 마련이라는 희망을 품었다. 아빠는 ‘아무렇지도 않은데?’ 하며 남은 반 캔을 더 들이키는 나를 잠시 지켜보다가 온몸이 타오르듯 붉어지시는 바람에 바로 침대에 가서 누우셨다. 긴소매 옷에 일부러 화장도 안 지우고 포커페이스로 버티겠다는 전략은 일단 성공했지만, 나는 아빠의 운명을 그대로 물려받았다. 밤새 시뻘개진 몸으로 침대에서 앓았다. 맥주 한 모금에 뻗는 아빠와 맥주 한 캔 마셨다고 침대에서 밤새 앓아야 하는 딸이라니, 슬픈 운명이 아닐 수 없었다.
다음 날 저녁 나는 그 슬픈 운명을 받아들이기를 일단 보류하겠다는 강한 정신력으로 무장한 채, 사범대 학생회실에 넓게 깔아놓은 신문지 위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있었다. 우리는 평등한 소통을 상징한다는 원형으로, 선배 한 명, 후배 한 명 번갈아 다정다감하게도 앉았다. 그건 후배 양옆으로 선배가 한 명씩 앉아서 후배에게는 더 이상 원형을 탈출할 자유가 없다는 말과도 같았다. 그래도 그땐 한 살 차이 나는 선배들이 왜 그렇게 하늘같이 느껴졌는지, 화장실 간다고 일어나도 빨리 갔다가 다시 같은 자리에 앉아야 한다는 양쪽 선배들의 압박에 얌전히 순응했다. 곧 듣도 보도 못했던 진귀한 술게임의 향연이 펼쳐졌고, 선배들은 좌석 배치의 마법을 이용해 목표물을 차례로 저격하고 있었다. 벌칙주는 전날 연습했던 맥주가 아니었다. 소주를 가득 부은 종이컵으로 벌칙주를 두 잔 연속 들이키고 종이컵을 내려놓는데, 순간적으로 처음 느껴보는 아찔한 뭔가가 머리 위로 쏟아졌다가 내려갔다. 아무렇지 않게 게임을 이어가다가 충혈된 두 눈에 목까지 시뻘개져 숨을 쉬지 못하는 나를 본 선배들은 사색이 되어 일어났다. 내 얼굴은 이미 이 세상 사람 얼굴이 아니었다. 나를 학과방으로 옮겨 눕히고 몇몇 여자 선배들이 차가운 물수건을 가져오고, 남자 선배들은 비닐봉지 가득 메로나며 조스바같은 하드를 사다 나르며 나를 먹였다. 두 번째 벌칙주를 따라 주었던 여자 선배가 내 손을 붙잡고는 ‘얘 손에서도 심장이 뛰어. 이런 거 처음 봐.’ 하는데, 과대표 선배가 도대체 얼마나 많이 먹였길래 이렇게 된 거냐고 나무라는 소리도 들렸다. 숨을 헐떡이다가 간신히 뜬 눈으로 바라본 학과방 천장이 곧 무너져 내릴 것처럼 공포스러웠다. 정신이 없던 와중에도 차라리 변기통 붙잡고 구역질을 하거나 필름이 끊겨서 뻗어버리는 게 덜 민망할 것 같았다. 처음 만난 선배들이 정신없이 오고 가면서 “얘 앞으로 술 절대 먹이지 마.” 소리를 연거푸 외치는데, 정말 울고 싶었다.
오리엔테이션에서 술 마시다가 죽었다는 학생들은 아마도 나같이 슬픈 운명에 맞서 이겨보겠다고 한심한 칼을 빼 들었다가 제대로 한 번 휘둘러보지도 못하고 쓰러졌을 거다. ‘취중진담’이라는 말이 가능하려면 일단 취해야 한다. 나는 취하지 못하고 숨을 못 쉬어 위험해지는 슬픈 운명이다. 취한다는 것이 무슨 느낌인지, 살짝 취기가 오른 알딸딸한 상태에서 못하던 애교도 부려보고 고백도 해보는 일은 얼마나 낭만적인지, 날이 좋으니까 술이 땡기고 비가 오니까 술이 더 땡긴다는 그 술맛은 도대체 뭔지 나는 평생 알 수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사랑하는 남자가 내가 아닌 다른 사람과 취중진담을 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할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남자의 가장 좋은 술친구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은 두고두고 마음이 아플 일이었다. (다음 글에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