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무인형 Mar 17. 2019

다음 고지를 향하여

임신과 사색_ 8

주말에 피곤했는지, 12시간이 넘도록 잠을 잤다. 남편이 출근하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기는 했지만 그것도 잠깐이었다. 정오가 다 될 때쯤 보석이가 발을 굴러 겨우 잠에서 깼다. 엄마 배고파, 라고 호소하듯이 배 왼쪽에서 통통 거리고 있었다. 새삼 혼자가 아님을 느끼는 순간이다.


서재를 정리하다 임신 초기에 읽었던 태아의 발생에 대한 책을 다시 꺼냈다. 


20주가 지난 태아의 신체는 제법 신생아와 가까운 비율을 가지며, 빠른 속도로 몸무게가 증가한다. 500gm의 무게는 조산하더라도 생존이 가능해지는 최저선을 뜻하며, 이즈음 폐 성숙이 이루어지기 시작한다. 가장 먼저 심장이 발생했고, 그것을 보고 생명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반면 폐의 성숙은 발생의 완성과도 같은 것이다. 폐 성숙이 이루어졌느냐가 만출된 태아의 생존가능성을 결정한다. 물론 모든 조산은 만기 출산에 비해 위험성을 갖지만, 태아가 적어도 28주를 지나면 출산 시 90% 이상 생존할 수 있다고 한다.      



지난주에 보석이의 몸무게가 500gm을 돌파한 것을 듣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더랬다. 지금은 임신 23주 차, 하루하루 생존가능성의 확률이 높아지는 기쁨과 감사가 누적된다. 고위험 임신이 아니었다면 당연히 얻는 생명으로 여겼을지 모른다. 14주에 있었던 고비를 잘 버텨준 것이, 현재 자궁 수축이 없고 자궁 문도 잘 닫혀있어 하루 종일 누워있지 않아도 되는 것이, 보석이의 건강한 발길질이 매일 느껴지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생생히 느끼고 있다.

      

보석이는 다음 고지인 28주를 향해 오늘도 엉금엉금 기어간다. 매일 하루의 나이를 먹는 보석이는 매일이 생일이다. 일주일은 7일로 구성되고 23주에서 7일이 지나면 정확하게 다음 24주가 온다는 사실이 얼마나 신명 나는 일인지! 하루하루를 저축하는 마음으로 기쁘게 밤을 맞이한다. 오늘도 1시간이 채 남지 않았다. 하루를 통과한 것을 축하하며 내일도 신명 나게 보내보자, 보석아.     

매거진의 이전글 태동의 시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