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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인형 Mar 21. 2019

임신 8개월의 어느 날

임신과 사색_ 9

임신 8개월째에 접어들며 컨디션이 확실히 달라졌다. 바로 누워 잠을 자지 못하고, 허리가 아파 옆으로도 오래 눕지 못한다. 아침에 일어나면 속이 쓰리고 손발이 조금씩 부어있다. 평소 숨쉬기 편치 않은 것은 물론이다. 배가 ‘남산만큼’ 부른 몸 상태를 생각하면 당연한 신체 반응이다.


조심스럽게 옆으로 눕고 배를 침대에 얹듯이 올려놓아야 한다.

가장 불편한 점은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든 것이다. 이게 진짜 임신 증상인지 게으름인지 임신 기간 내내 헷갈렸지만, 생각해보면 임신 중기에는 꽤 오랜 시간 앉아서 글쓰기 같은 작업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50분만 앉아 있어도 만사가 귀찮고 눈이 뻑뻑해진다. 10분만 쉬려고 소파에 누웠다가 두세 시간씩 잠들거나 쓸데없이 휴대폰만 만지작거리다 시간을 흘려보내기도 한다. 그래서 그런지 외출을 거의 안 하는데도 하루가 긴 느낌이 없다. 오늘 할 일을 1/3도 못 채우고 어느덧 밤이 된다. 남은 2달은 마음을 비우고 느슨하게 하루를 보내야 할까 싶다.     


태동은 꽤 과격해졌다. 남편은 처음에 물고기가 튀는 것 같다고 표현했으나, 더 이상 물고기의 힘이라고 설명할 수 없어졌다. 슈퍼맨 날아가듯 팔다리를 쭉 뻗는지 배 양쪽을 동시에 툭 차기도 하고, 원투원! 하고 잽을 날리는 듯 배 중앙을 연거푸 때리기도 한다. 가끔은 머리인지 어깨인지가 배 한쪽으로 불쑥 튀어나와 있어 손으로 살살 쓰다듬어 준다. 캥거루가 뱃속에 새끼를 넣고 다니는 기분을 이제 알겠다. 뱃가죽과 자궁벽이 늘어날 대로 늘어나 아기의 움직임을 고스란히 전달한다. 200일 넘게 지나고 있지만 아직도 신기하다. 공처럼 부푼 배 안에 나와 별개인 하나의 인격체가 살고 있다.

      

아기가 태어나면 곧바로 1살이 되는 게 우리나라 나이 계산이다. 예전에는 0살에서 시작하는 외국의 셈법이 정확한 줄 알았지만, 지금 보니 우리 조상의 판단이 더 타당하다. 이 아이의 탄생은 분명 2018년이 아닌 2017년부터였고, 오만가지 변화를 겪고 있는 내 몸이 바로 그 증거다.


남편 직장 동료의 아내는 얼마 전에 딸을 낳았다. 3-4일의 출산 휴가를 내고 아내를 조리원으로 옮긴 후 직장에 복귀했는데, 딸이 자신의 유전자를 ‘몰빵’했다며 신이 나서 동료들에게 피자와 치킨을 대접했다고 한다. 우락부락한 이목구비를 가진 사람이라 남들이 보기에는 아들도 아닌 딸이 아빠를 닮은 일이 축하할 일인지 의아했다 하면서도, 남편은 그게 그리 부러운 모양이다. 아들과 나가면 ‘붕어빵이다’, ‘영락없는 아빠와 아들이다’ 소리를 듣고 싶단다. 나는 꼭 나를 닮았으면 하는 생각은 없고 우월한 유전자를 골라 가지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처음에는 남편이 붕어빵 야망을 밝혔을 때 나를 닮는 것을 바라지 않는 걸 서운해야 하나 고민이 되었지만 지금은 남편이 소망을 이루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이번 주에는 병원에 방문하여 수술 날짜를 잡는다. 아이의 생일이 미리 결정되는 셈이다. 날짜가 정해지면 본격적으로 준비를 해야 한다. 산후도우미를 예약하고, 아이의 이름을 정해야 한다. 세세한 육아용품을 마저 구매하여 아기 방을 꾸미고, 침구와 의류를 삶아야 한다. 생각해보니 아기의 살에 닿는 게 중요하다면 아기의 옷뿐 아니라 나와 남편의 옷도 깨끗해야 한다. 집과 차도 대대적으로 청소하여 숨은 먼지를 털어내야겠다.

 

이제 정말, 얼마 안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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