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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인형 Mar 24. 2019

성큼 다가온 축제일

임신과 사색_ 10

산부인과에 가서 출산 날짜를 정하는 날이었다. 기초 검사와 초음파를 하고 교수님을 만나기까지 1시간이 넘게 걸렸다. 기다리는 동안 동행한 시부모님과 어느 날짜가 좋겠느니 이러쿵저러쿵 고민을 하고 있었다. 예정일 부근이 마침 구정 연휴이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의 스케줄과 조율하여 겨우 출산휴가 3-4일 받을 남편의 일정도 고려해야 했다.      



나보다 몇 살 차이 안 날 듯 젊은 여교수님은 오랜만에 건강한 모습으로 나타난 나를 반겨주었다. 아기가 너무 잘 크고 있고 조산 위험도 보이지 않아 한시름 놓았다며 활짝 웃는다. 대기실에서의 치열한 고민이 무색하게 교수님은 고위험군 임신인 만큼 37주가 되자마자 위급한 상황이 생기기 전에 낳는 것이 좋겠다며, 이틀을 콕 집어 수술 날짜로 권했다. 


그녀의 말투는 언제나 명쾌하다. 쓸데없는 걱정을 심어주는 위협적인 표현을 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실재하는 위험을 숨기지도 않는다. 특진 교수는 아니지만 뛰어난 수술 실력과 빠른 판단으로 인정받고 있는 새 교수라 들었다. 그녀가 최선의 선택지라는 두 날짜를 제시하니 고르는 마음도 안심이 된다. 나도 일할 때, 혹은 대인관계에서 이런 명쾌한 태도를 가질 수 있다면 좋겠다.    


진료실을 나오니 시어머니가 안절부절못하며 밖에 서 계시다. 시어머니도 의사가 날짜를 정해주었다는 말을 듣고 더 이상의 고민 없이 활짝 웃는다. 대기실에서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던 시아버지에게 “당신, 한 달 후에 할아버지가 된대요.”라고 말씀하시자 갑자기 축제 분위기가 되었다. 막연하던 보석이의 출생이 눈에 보일 듯 가까워진 것이다. 


우리는 가벼운 마음으로 병원 카페에서 커피와 빙수를 먹으며 당장 해야 할 일을 의논했다. 시아버지는 준비해야 할 것이 많은데 혼자 하려 하지 말고 시간 많은 시부모님을 불러 써먹으라며, 시어머니를 ‘손주 출생 준비위원장’으로 임명하셨다. 어머님은 내 집으로 손수 오셔서 아기 옷, 침구 빨래를 와서 해주시겠다고 나섰다. 다소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오늘만큼은 감사하고 행복한 마음이 든다. 
 

이렇게 보석이가 태어날 날이 3주나 앞당겨졌다. 앞으로 50일이 남아있다고 생각했는데 30일이 남은 것이다. 이제는 정말 본격적으로 준비해야 한다. 조리원에 전화를 걸어 언제쯤 출산하고 퇴원할 예정이라 말해두었다. 오늘 내로 아기침대를 주문하고, 주말에 서랍장을 사러 가구점에 가야겠다. 


한 달 후 보석이의 인생이 시작되고 나와 남편의 인생도 180도 달라지는 날이 올 것이다. 축제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인생의 다음 막을 맞이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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