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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인형 Mar 13. 2019

태동의 시작

임신과 사색_ 7

이틀 전부터 배 왼쪽 아랫부분에서 미세한 진동이 느껴진다. 


아주 희미하게  하고 두들긴 후 다시 잠잠해지니 처음엔 태동인지 몰랐다. 큰 혈관에서 맥박이 뛰는 것과 비슷하지만 규칙적인 박동은 아니다. 근육이 움찔거리는 느낌 같기도 하지만 배 한가운데에는 미세 경련이 일어날 만한 근육이 없을 듯하다. 장에 가스가 차서 부글거리는 것도 의심해보았지만 배변 활동이 편안할 때도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가능성이 떨어진다. 


태동이 가장 의심되지만 서둘러 남편을 불러 배에 손을 대고 기다려도 한동안 소식이 없으니 내 착각인지 아닌지 확인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


오늘 정기검진을 가보니 아기가 또 많이 자라 있다. 체중은 621그램 정도. 머리둘레, 배 둘레, 허벅지 길이 등이 다 주수보다 크다. 배 둘레는 주수보다 열흘 정도 앞서있다.


 “아기가 통통하네요.” 의사가 말했다. 


초음파 탐촉자로 다리 한쪽의 단면을 보여주었는데, 허벅지와 종아리의 구분이 명확하고 실루엣이 꼭 근육질의 다리 같았다. 


“아유, 운동선수해야겠어요.” 간호사도 추임새를 넣는다. 


“태동 느껴지시죠? 움직임이 아주 활발하네요.” 


의사의 말이 없어도 아기가 팔다리를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태동하다’라는 단어에는 ‘태아의 동작’이라는 의학 용어 말고도 ‘어떤 일이 생기려는 기운이 싹튼다’는 뜻도 있다. ‘민족의식이 태동하다.’, ‘새로운 현대 사회가 태동했다.’와 같은 단어의 쓰임이 이제야 이해가 간다. 


태동은 눈에 띄는 거창한 시작이 아니라 전에 없던 무언가가 은밀하고 조용하게 시작하는 것인가 보다. 엄마를 긴가민가 헷갈리게 만드는 보석이의 태동처럼. 


                                    *


눈으로 확인하고 나서야 이 느낌이 태동일 거라는 확신이 온다. 


곧 아기의 체중이 급증하는 시기가 온다. 키도 크고 다리 힘이 세져서 곧 배를 빵빵 차댈 것이다. 


책상에 앉아있는 지금도 ‘나 여기 있다’고 말하는 듯 가끔씩 배 한쪽이 움찔거려 타자 치는 손을 멈추게 된다. 가만히 태명을 불러봤더니 또 움찔한다. 아기와의 소통이 시작되는 모양이다. 


아까 초음파로 보니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던데 아무래도 클래식만으로는 지루해할 것 같다. 선곡을 바꿔야겠다. 


신나게 발을 굴러보자, 보석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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