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째 머무르고 있는 게스트하우스의 도미토리 룸 화장실에서 샤워를 하고 있었다. 갑작스레 쏟아진 비에 젖은 몸을 따뜻한 물로 느긋이 데우고 있을 때였다. 밖에서 말소리가 들렸다. 남자 말소리가 함께 들리는 것을 보아 사장님이 오늘 온 손님에게 안내를 하고 있는 듯 했다. 샤워를 마치고 나오니 큰 캐리어 하나와 다른 짐가방이 눈에 띄었다. 아무런 인기척이 들리지 않는 것으로 보아 두 명의 짐주인은 짐을 두고 저녁을 먹으러 나간 것 같았다. 마음 편히 속옷을 옷걸이에 걸고 침대 밑 짐더미에서 얼굴과 몸에 바를 것을 주섬주섬 챙겼다. 아 깜짝이야. 분명 아무도 없다고 믿었던 캡슐 침대 안으로 두 다리가 보였다. 고개를 돌려 오른쪽 침대를 보니 블라인드가 내려져 있었다. 그제서야 깨달았다. 아, 이 사람들 밖으로 나간 게 아니라 안으로 빠져든 거였구나.
이번만이 아니었다. 분명 같이 있던 누군가의 인기척이 사라져 느껴지지 않을 때 아직 있나? 뭐하고 있지? 하고 고개를 돌리면 높은 확률로 그 사람은 손 안의 작은 세계 속에 빠져있었다. 어떤 사람은 열심히 엄지손가락을 놀려 게임을 하고, 어떤 사람은 끝나지 않은 스크롤을 내리며 짧고 쉬운 자극을 찾아헤맨다. 하나의 자극이 끝나면 빠른 시간 내에 다른 자극을 찾아야만 한다. 그게 유일하게 나의 현실을 잊고, 생각하고 싶지 않은 문제를 덮고, 그걸 마주해야 하는 나의 존재를 지울 수 있는 방법이니까. 스마트폰을 하는 동안 우리는 이 곳에 있지만 동시에 이 곳에 없다. 손 안의 작은 세계는 아주 쉽고 빠르게 우리의 존재를 삼켜버리고 이 곳의 우리는 껍질로만 남겨져있다.
오늘 아침 밖으로 나가기 전 핸드폰 화면에는 ‘지난 주보다 스크린 사용 시간이 30퍼센트 줄었음 - 하루 평균 네 시간 이십이 분.’ 이라는 메시지가 떴다. 아마도 낙산사에서 머물던 이틀 중 하루 동안 핸드폰을 맡겼기 때문일 거였다. 입소할 때 핸드폰을 맡기실 분은 맡기셔도 돼요, 하는 말에 고민하다가 하루가 지나서야 자진해서 핸드폰을 반납했다. 핸드폰이 없으니 더이상 멋진 풍경 앞에서 자동반사적으로 카메라를 꺼내들지 않았다. 무수하게 부딪혀오는 파도를 보면서도, 가까이서 짹짹대는 참새들을 관찰하면서도 내 눈 대신 스크린을 통해 바라보는 일은 없었다. 책을 읽었고, 눈을 감고 누워 휴식을 취했고, 춤추듯 날아가는 호랑나비 두 마리의 움직임에 사로잡혔다.
스마트폰은 유용하다. 오늘은 낯선 곳에서 길을 잘못 든 내가 올바른 방향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줬고, 가는 길에 비가 투둑투둑 내리기 시작하자 택시 기사님께 나의 위치를 알려 택시를 탈 수 있게 해줬다. 스마트폰이 없었다면 나는 잘못 가는 줄도 모르고 길을 걸었을 거고 비가 오든 발이 아파 걷기 힘들든 목적지가 보일 때까지 계속 가야했을 것이다. 그러나 유용함은 종종 두 얼굴을 하고 있다. 산을 뚫어 만든 터널의 유용함 뒤에는 삶의 터전을 빼앗겼거나 생명을 잃은 수많은 생명체가 있고, 가볍고 저렴한 플라스틱의 유용함은 오래도록 썩지 않고 지구 곳곳을 떠다니는 위험과 함께 온다. 언제 어디서든 흥미진진한 세계로 떠날 수 있도록 하는 스마트폰의 유용함의 대가는 우리의 생각하고 느끼는 능력이었다.
스스로 생각하는 것을 멈출 때 우리는 무엇이 될까? 느낌을 느끼는 데 무뎌져서 더이상 느낄 수 없어질 때 우리는 어떻게 될까? 유용함을 볼모로 우리가 우리에게서 앗아가는 건 무엇일까? 우리는 진보하고 있는 걸까 잃어가고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