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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다올 Sep 12. 2024

선림봉 대슬랩과 백척폭포


보물이 숨겨진 계곡

계곡에 숨겨진 보물이 있다. 그 보물을 찾으러 향림담 계곡으로 간다. 불광중학교 담장을 끼고 태고종 웃산 불광사 들머리를 지나 북한산 향로봉과 족두리봉을  바라보며 산기슭 마을길로 접어든.

들머리에서 여장을 챙기고 웃산 불광사 담장을 끼고 지나가는데, 계곡 물소리에 실린 스님 독경 소리와 목탁 소리가 잔잔하게 마음에 파문을 일으킨다.

목탁 소리에 맞추어 대중 보살들은 합장을 하고 앞의 보살 궁둥이에 대고 절을 하고 절을 한다. 부처님 전에 절을 올리는 보살들의 마음을 헤아려보며 그 간절함을 에둘러 모른 체하고 절간 담장을 지난다. 

 

   웃산 불광사 담장을 끼고 불광공원지킴터를 지나자 오른쪽에 족두리봉 암릉을 오르는 깔딱 오르막 이정표가 보인다. 향림담 계곡 길은 곧장 무지개다리를 건너 나무 데크 계단을 따라 올라간다. 입구에서부터 계곡물 흐르는 소리가 시원하게 들리고 오름길에 조그만 공터와 정자가 나온다.

데크 계단을 쉼 없이 오른다. 사점(死点, Dead point)이 오고 호흡 완급을 조절해야 하는 시간이다. 오른쪽 무릎을 구부리고 한쪽 팔을 무릎에 기댄 채 숨을 고른다. 사점 순간을 슬기롭게 극복해야 오르막 길 산행이 부대끼지 않는다.

사점은 산을 오르면서 서서히 심장박동과 호흡이 빨라지고 운동량이 자신의 심폐기능 이상으로 커지게 되어 숨이 가빠지고 산소가 부족해져 나타나는 현상이다. 사점을 잘 극복하기 위해 서서 잠시 쉬다 출발하기를 한두 차례하고 나면, 곧 적응이 되어서 호흡이 자연스러워진다.


   아직 늦더위가 가시지 않아 이마에서 땀이 얼굴과 목을 타고 줄줄 흐른다. 초가을에 찾아오는 애매미가 “쓰와시~ 쓰와시~”하며 화음을 넣다가 “뿌요~ 뿌요~”하면서 노래를 마무리한다. 울음 소리를 들으면서 걸음 걸음 내딛는 발걸음이 가볍다.

오르막 데크 계단을 올라서니 바윗길이 시작된다. 온통 바위와 소나무로 뒤덮인 거대한 암릉 향림봉과 선림봉이 눈앞에 다가온다. 웅장한 암봉에 압도되어 시선을 고정한 채 오르막 바윗길을 헤아린다.  


   계곡 물소리가 한층 가까이 들린다. 암릉에 철주 난간이 연이어 나오고 주변은 온통 짙푸른 소나무밭이다. 북한산에서 이곳이 유독 소나무가 많은데, 활엽수가 자라기 어려운 암반지대라 그런 게 아닌가 하고 어림짐작한다. 비옥한 땅에서 자라는 참나무는 보이지 않는다. 이곳 소나무 이파리는 맑고 싱싱하고 짙푸르다.

오르막이 끝나고 마중을 나온 아기 코끼리 바위가 계곡을 바라보고 다. 장에 간 엄마 코끼리애타게 기다리고 있 것 같다. 코끼리 바위를 돌아서자 넓은 체력 단련장이 나온다.


백척폭포와 대슬랩

길은 가파른 암릉지대로 이어지고 안전 쇠밧줄 난간을 잡고 거대한 암릉 구간을 오른다. 암릉은 연이어 나오고 긴 철주 난간 지대를 올라서자 영화의 한 장면처럼 거대한 선림봉 대슬램이 펼쳐진다. 산꾼들은 북한산 4대 슬랩 중의 하나라고 한다. 슬랩 홈통 바위를 타고 오르는 등산객이 보인다.  

슬랩 끄트머리 암반을 타고 백척폭포 물결이 그림처럼 흐른다. 산속에 숨겨진 보물이다. 나무 나이테 결을 닮은 물비늘이 흑백영화의 필름처럼 이어지고, 비늘무늬를 암반 위에  그리면서 흐르는 모습이 인화된 사진처럼 투명한 물결선과 명암드러낸.    

(향림담 백척폭포 물비늘)

   대슬램은 선림봉 정상에서부터 시작되고, 꼭대기에서 암반을 타고 눈물처럼 흘러내리는 빗물이 암반 틈새에서 자라는 소나무를 키운다. 바위 절벽에서 자라는 소나무는 그 기상이 의연하고 청초하다.

수억 년 빗물이 암릉 위를 흐르면서 시나브로 바위를 깎아 물길을 틀고 골을 만들었다. 가느다랗 눈을 뜨고 바라보니, 산봉우리 암릉 자락이 마치 춤추는 발레리나의 주름치마처럼 머릿속에 그려진다.

백척폭포 전망 바위에서 동영상을 촬영하고 사진도 여러 컷 찍으면서 여유를 부리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다 일어선다. 폭포 상단 작은 여울에서 친구 서넛이 둘러앉아 발을 담그고 담소를 나누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향림담과 향림사지

계곡 상류로 올라갈수록 폭포와 여울과 소가 많이 나온다. 흰 거품을 일으키며 힘차게 흘러내리는 물줄기가 담으로 떨어진다. 향림담(香林潭)이다. 오죽했으면 숲에서 향기가 난다고 했겠는가! 

가뭄이 계속될 때는 향림담엔 가느다란 물줄기만 흘러내리는데, 오늘은 운이 좋은가 보다.

예전에 바위 밑에서 석간수가 나와 산꾼들이 목을 축이기도 했는데, 약수터는 사라지고 바위에 향림담 한자 글자만 남아 있다. 이곳은 철주 난간이 설치되어 있어 지금은 출입이 제한된다.      


   향림담을 지나면 이정표는 향로봉과 족두리봉을 가리킨다. 향로봉 방향으로 계단을 딛고 오르면 몇백 년은 됨직한 금강 몇 그루가 마주 보고 있는데 사찰 천왕문을 지키는 천왕처럼 떡 버티고 서 있다.

거사림을 떠난 속인이라 마음속으로 관세음보살 나무아미타불을 되뇌이며 마지막 돌계단을 박차고 오른다. 잣나무가 빽빽이 들어선 넓은 터가 나온다. 향림사지로 추정되는 곳이다. 석축 흔적과 여기저기 주춧돌과 기와 편이 보이지만, 향림사 터라는 역사적인 고증은 아직 없다.

산객 몇몇이 허기진 배를 채우고 있다. 커피를 한 잔 마시려고 반석에 앉았는데, 등성이를 타고 바람이 불어온다. 빽빽한 잣나무 가지가 산바람에 파도처럼 출렁거리고, 짙은 송진 냄새를 실은 솔바람이 쏴아 하고 밀려와 전신을 감싼다. 솔향에 커피 향 풍미가 더해지는 것 같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은 향림사에 대해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고려 현종이, 거란이 삼각산 향림사에 침공해 오자, 태조 왕건의 관(재궁: 梓宮)을 두 번이나 옮겨 숨겼다. 그만큼 향림사는 깊은 산속 은밀한 곳에 있었다는 말이 된다.

주초석에 앉아 바람 소리를 들으면서 한가한 시간을 보내고나니 묵은 때가 말끔히 씻겨지는 기분이다.

향림담 계곡 탐사는 이곳에서 마무리하고, 사찰 터에서 위로 백여 미터 올라가면 고갯마루에 향로봉과 선림공원지킴터 이정표가 나온다.  

(폭포와 향림담)

   선림공원지킴터로 하산하여 주말농장 밭둑길 지나가는데 배꼽시계가 신호를 보낸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기왕이면 맛깔난 집으로 가자.

웃산 불광사에서 백여 미터쯤 내려가면  옛날 성북동 북악 산성에 있던 닭볶음탕 맛집 ‘성너머집’과 식객 허영만이 인정한 ‘오두리 두부’ 식당이 내가 종종 들리는 집이다.

오늘은 산꾼들과 닭볶음탕에 소주잔을 기울이면서 향림담 계곡 산행을 마무리한다. 버스에 앉으니 포만감에 졸음이 몰려오고 온몸이 노곤해진다. 보물을 품에 안고 눈을 감는다.


[참고 자료]     

문화경제, 이한성 동국대 교수, "이한성의 옛 절터 가는 길 ① 향림, 그대는 도대체 어디에?"


[산행 안내]     

<산행코스>웃산불광사-불광공원지킴터-무지개다리-코끼리바위-백척폭포 전망대-향림담-향로봉 이정표-향림사지-선림공원지킴터     

<산행거리> 7km, <소요시간> 4시간, <난이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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