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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다올 Sep 05. 2024

마지막 대군이 머문 그곳

조계동 계곡으로

조선의 마지막 대군, 인조의 셋째 아들 인평대군을 만나러 가는 길이다.

습작 노트를 챙기고 배낭을 어깨에 둘러멘 채 부랴부랴 집을 나선다. 오늘은 조계동 계곡으로 인문학 탐사 기행을 가기로 약속한 날이다. 자료를 찾아보고 등산로를 탐색하기도 했지만, 조계동은 첫걸음이라 부담스럽기도 하다.

설렘과 일말의 흥분을 안고 전철에 몸을 싣고 수유역에서 강북 01번 마을버스로 갈아탄 뒤, 종점인 수유리 아카데미 하우스에서 조계동 계곡 탐사를 시작한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시원한 물소리가 들리고, 북한산 둘레길과 초대길이 만나는 산행 들머리에 아카데미탐방지원센터가 보인다.

초대길은 대한민국 초대 국회부의장을 지낸 해공 신익희, 초대 대법원장 가인 김병로, 1호 검사 이준 열사, 초대 부통령 이시영 선생 등의 묘가 모여 있는 곳이다. 근방에 근현대사기념관 개관을 기념하면서 그렇게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탐방지원센터를 지나자 금세 우거진 숲길이 나오고 빗물에 흙이 씻겨 내려가지 않도록 바닥에는 돌을 깔아 놓았다. 구천계곡이라 부르는 조계동이 시작된다. 이곳엔 고려 선종 사찰인 조계사가 있었는데, 그 이름을 따서 물이 맑고 계곡이 아름다워 예로부터 조계동(曹溪洞)이라 불렀다. 조계사 흔적은 사라지고 기와 조각 몇 편만이 옛 절터임을 말해준다. 지금은 주민들 체력단련장으로 사용되고 있어 유적의 흔적이 지워지고 있는 게 못내 아쉽다.


   조계동은 여느 북한산 계곡처럼 여름엔 수량이 넘쳐흐르지만, 가을로 접어들면서부터 물줄기는 엿가락처럼 늘어지고 가늘어진다.

최근에 들머리 초입인 아카데미하우스 계곡 건너편에 고려말에서 조선 초기에 분청사기를 굽던 가마터 유적이 발굴되었다. 이 가마터는 상감청자에서 분청사기로 이행하는 도자기 생산의 변화 양상을 보여주고 있어 유적 기념물로써의 그 보존 가치가 매우 높다. 허나 옛 가마의 모습은 찾아볼 길이 없고, 여기가 가마 터라고 하기엔 안내판 하나 가지곤 어림도 없다.

(조계동 구천폭포 상단)


별서 송계별업과 구천은폭

오르막길 바위 옆에 부석금표 안내문이 서 있고, 이끼가 잔뜩 낀 바위에 부석금표(浮石禁標) 각자가 뚜렷하다.

조계동 일대 화강암은 재질이 굳고 단단하여 조선시대 왕릉의 석물로 이용되던 채석장이다. 단종의 왕비인 정순왕후의 사릉 석물 채석이 끝난 뒤에 조정에서 부석금표 각자를 바위에 새겨 백성들이 석재 채취는 물론 주변에 산소 쓰는 것을 금하는 표석을 세워 놓았다.     

  

   이곳이 사릉 부석소로 선정된 건 조계동의 석질이 우수하여 왕릉 석물에 적합하다는 표면적인 이유도 있었지만, 그 이면에는 효종 임금 시절에 인평대군의 세 아들인 복창군 과 복선군, 복평군 등이 남인과 자주 어울렸던 장소를 훼손하기 위한 정치적인 의도로 보는 게 학계의 정설이다. 당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인평대군의 별서가 희생양이 된 셈이다.


   오백여 미터를 더 오르면 폭포가 물보라를 일으키는 계곡에 송계별업(松溪別業) 안내문이 서 있다. 송계별업은 풍경이 아름다운 조계동에 인조의 셋째 아들이자 소현세자와 효종의 아우인 인평대군이 지은 별서이다. 폭포 아래 계곡을 가로지른 ‘비홍교’ 다리 위엔 ‘보허각‘ 누각이, 산기슭엔 ’영휴당‘ 정자가 있었으나 지금은 흔적조차 사라지고 송계별업 각자만이 이곳을 지키고 있다. 시끄러운 조정의 당쟁을 보고 싶지 않아 이곳 송계별업에서 구천은폭을 바라보며 살고 싶었던 인평대군의 마음을 헤아려본다. 


   보허각에서 위를 올려다보면 아름다운 구천은폭 물줄기가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고, 아래를 바라보면 광활한 마들평 평야가 눈앞에 펼쳐진다.

인평대군은 그의 문객 이신(李伸)에게 한문으로 구천은폭(九天銀瀑) 글씨를 써서 폭포 상단의 바위에 새기게 하였다. 구천은폭 각자가 있어 사람들은 구천폭포라 부르고, 조계동을 구천계곡이라고 한다.

폭포는 상단, 중단, 하단으로 그 높이는 가히 백 척이 족히 넘을 듯한데, 물줄기를 타고 천하는 용이 안간힘을 다하고 있다. 폭포 용틀임 치며 몸부림친다.

(한겨울 구천은폭)


인평대군의 파란만장한 삶

구천폭포는 북한산 4대 폭포 중에서 가장 수려하고 웅장하다. 구천(九天)은 우주의 중앙과 동쪽, 동북쪽, 북쪽, 서북쪽, 서쪽, 서남쪽, 남쪽, 동남쪽의 9개 방위를 일컫는 말로써 하늘을 의미한다. 그래서 구천은폭은 하늘에서 은빛 찬란한 물줄기가 쏟아진다는 뜻이 된다.

지금은 자연 생태 보호 차원에서 구천폭포 출입을 금하고 있어 구천은폭 글씨를 볼 수가 없다. 여름을 지나 가을에 낙엽이 지고 겨울이 오면, 폭포 옆에 있는 데크 계단참에서 구천은폭 각자를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인평대군은, 인조 이후 적자로 태어난 세자를 제외하고, 사실상 조선의 마지막 대군인 셈이다. 효종과 현종, 순조, 고종 임금은 한 명의 적자가 있었으나 모두 세자가 되었고 대군은 없었다. 다른 조선의 왕자들은 왕비가 아닌 후궁에게서 태어난 아들이기 때문에 ‘대군’이 아니라 ‘ㅇㅇ군’으로 불렸다.

인평대군은 병자호란으로 형인 소현세자와 봉림대군과 함께 청나라에 인질로 끌려갔는데 그의 형들은 7년이 지나 환국하였고, 그는 청에 끌려간 지 1년 만에 돌아왔다.     


   인조는 청나라에 대한 ‘삼궤구고두례’의 치욕을 당한 모욕감을 가지고 있던 터라, 소현세자가 청나라와 가깝게 잘 지내는 것에 대해 시기하고 질투하였으며, 청나라에서 자신을 폐하고 소현세자를 왕위로 올릴까 항상 두려워했다고 한다.

소현세자가 죽은 후에 인조는 세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둘째 왕자인 봉림대군(효종)을 세자로 책봉하여 독살설 소문에 대한 의구심을 더욱 짙게 하였다.       


   인평대군은 열세 번이나 사신으로 청나라에 다녀와 그 노독으로 서른여섯(1622~1658)의 젊은 나이에 죽었다. 청에 외교사절단을 이끌고 갔다 오는 데 열 달 가까이 걸렸으니, 노숙을 밥 먹듯 하며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게다. 게다가 청나라 사신을 접대하는 일도 도맡아 했으니 어찌 몸이 남아났겠는가!

오죽했으면 신하들이 인평대군의 형인 효종 임금에게 그를 쉬게 하도록 청을 올렸으랴. 결국 과로가 겹쳐 젊은 나이에 죽은 것이다. 대군이 죽고 나자 그의 별서는 허물어지고 '구천은폭' 각자만 남아 세월의 덧없음을 말해준다.          

(구천계곡 상단에서 바라본 북한산)

마들평과 북한산 주봉  

구천은폭을 지나면 바위와 암릉지대로 철주 쇠밧줄이 연이어 나오고, 길은 상당히 거칠고 험하다. 올라갈수록 가파른 협곡 사이로 너덜길이 이어진다.

깊은 골에서 흘러내리는 물줄기는 거세게 소용돌이치며 여울을 만들고, 계류는 바위 사이를 뚫고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반석을 타고 마침내 넓고 푸른 담으로 흐른다. 물줄기는 작은 폭포에서 여울로 흐르고 이내 쌍둥이 폭포로 돌변하기도 한다. 송계별업에서 인평대군도 이 협곡의 소용돌이치는 물길을 보았으리라.     


   경사진 언덕에 통나무 쉼터가 나온다. 쉼터에서 감귤로 갈증과 에너지를 보충하고 여장을 다시 꾸려 가파른 계곡 물길을 따라 헐떡거리며 오른다. 마지막 힘을 다하여 8부 능선에 올라 뒤를 돌아보니 마들평에 지어진 아파트가 마치 인평대군을 알현하는 듯 머리를 조아린다. 멀리 왕십리 너머 아차산과 유명산의 실루엣이 보인다.        

왼쪽을 바라보니 북한산의 웅장한 세 봉우리, 백운대와 만경대와 인수봉이 우뚝하고 그 아래에 노적봉이 버티고 서 있다. 산등성이 너머로 도봉산 오봉과 주봉, 신선대, 선인봉, 자운봉, 만장봉이 설악의 공룡능선처럼 삐쭉삐쭉 날카로운 등을 드러낸 채, 그 너머로 수락산과 불암산 능선으로 이어진다.       

    

   마지막 깔딱 고개로 올라서자 길은 편편해지고 진달래능선과 소귀천계곡에서 오르는 등산로와 합류한다. 대동문 기와지붕이 보이고 등산객들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대동문에 도착하니 여기저기 산객들이 둘러앉아 가져온 음식을 펼쳐놓고 허기진 배를 채우고 있다. 나도 커피와 김밥으로 요기를 하고 오늘 여정을 습작노트에 기록한다. 조계동 탐사 여행을 마치고 거친 세상을 살아온 인평대군의 삶을 뒤돌아본다. 대군도 이곳에서 갓끈을 풀고 도포를 벗어놓은 채 막걸리 잔을 들었으리라.     



[참고자료]

구천계곡 현장 안내문

국가유산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송계별업 터(松溪別業址)


[산행 안내]

<산행코스> 수유리 아카데미하우스-아카데미탐방지원센터-분청사기 가마터-부석금표 바위-송계별업 터-구천은폭-통나무 쉼터-대동문

<산행거리> 6km, <소요시간> 3시간, <난이도> 중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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