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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다올 Aug 22. 2024

북한산성 계곡의 인문학

계류가 아름다운 북한천      

북한산성 계곡은 알아도 북한천을 아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북한천은 북한산 암릉 준봉 사이로 백운동, 청계동, 자하동 등 십이 계곡을 아우른 골짜기에서 흘러내린 물줄기가 하나가 되어 북한산성 계곡을 따라 흐른다.

계류(溪流)는 소용돌이치며 머무는 곳마다 소(沼)를 만들고, 너럭바위를 깎아 깊고 푸른 담(潭)을 만들고, 장승처럼 우두커니 서 있는 바위를 굽이돌아 폭포를 만들어, 마침내 반석 위의 넓은 탕(湯)으로 모여든다. 물방울은 햇살 어우러져 하얀 물보라를 일으키면서 계곡에 빨·주·노·초·파·남·보 무지개다리를 놓았다 허문.

계류의 탕과 담과 소는 맑고 푸르다 못해 눈이 시릴 지경이고, 그 깊이를 가늠하기 어려워 얼굴만 물빛에 비춰본다.       

   

   북한천 인문학 트레킹북한산둘레길과 만나는 계곡의 무장애길 표지석에서 시작한다. 계류는 산성 입구의 옛 수문 터에서 산영루까지가 절경이다.

봄이 오면 겨우내 얼었던 시내가 녹아 땅속으로 스며든다. 냇가의 나뭇가지에 새싹이 움트고 산기슭 생강나무와 히어리가 노란 꽃을 피우고, 길섶엔 냉이와 쑥이 돋아난다.

나무 잎사귀는 더욱 무성해지고 물줄기는 거세지며, 꽃 향기가 골짜기를 가득 채우고 한낮의 매미 울음으로 여름이 시작된다. 북한천은 절정으로 내달린다.

계류는 더욱 풍성해지고, 늦가을날  붉게 물든 단풍잎은 청도 유등지 수련처럼 물 위에 둥둥 떠다닌다.

동지섣달 서리가 내린 계곡에 하얀 눈이 골짜기를 덮으면 북한천은 한겨울 속으로 빠져든다. 북한산성 계곡의 사계는 끝이 없다.        


   북한산성 입구 계곡에는 옛 수문 터와 허물어진 성벽과 글자가 새겨진 바위가 우두커니 서 있다. 홍예문으로 된 수문은 배수와 함께 산성 방비 역할을 하면서 다리 구실도 하였으리라.

수문 터 건너편에 눈썹처럼 생긴 바위는 고려 후기 첨의 정승(조선 시대의 정승)을 지낸 민지(閔漬)가 머물면서 풍류를 즐겼다고 하여 민지암(閔漬岩)이라 부른다. 바위 위에 이끼가 끼고 수풀이 우거져 식별조차 힘들다. 민지암 앞은 계류와 담, 평상처럼 생긴 너럭바위가 일품이다. 나무 그늘도 드리워져 있어 선비 여럿이 둘러앉아 바짓가랑이를 걷어 올리고 탁족과 풍류를 즐기면서 시절을 보내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다. 지그시 눈을 감고 그때 그 선비들의 옷차림새와 노는 품새를 그려본다.         

(산성 입구 계류와 이끼 낀 민지암)


칠유암 너럭바위와 향옥탄 물방울 소리     

수문 터를 지나 말랑말랑한 흙길을 따라가면, 계류가 활처럼 휘어지고 도톰하게 튀어나온 지점에 고려의 정승 민지가 집을 짓고 살았던 곳이 나온다. 그곳은 지금 사찰 서암사(西巖寺)가 자리하고 다.

절 앞에는 세심루(洗心樓) 터가 있었고, 누각 아래 북한천 계류에 달이 물에 비친 모습이 마치 도장을 찍은 것처럼 선명하다고 하는 월인담(月印潭)이 있다. 세심루 정자는 사라지고 월인담은 수풀에 가로막혀 볼 수가 없다. 길섶의 사위질빵 향기가 절간의 향 내음을 사로잡아 길손의 발걸음을 잠시 멈추게 한다.

명승지나 역사 문화유적은 안내문과 전망대를 만들어서 후세 사람들이 그것을 기억하도록 했으면 좋겠다.


   서암사를 지나면 북한천의 또 다른 절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칠유암(七遊巖)이다. 정승 민지가 벗들과 함께 풍류를 즐기면서 탁족을 했다는 너럭바위에 七遊巖 글자가 새겨져 있다. 일곱 벗이 바지를 걷어 올리고 나란히 반석에 걸터앉아 시와 술잔을 주고받으면서 북한천을 즐기는 모습이 눈앞에 선하다.

바위에 새겨진 글씨는 모진 풍파의 세월을 헤아릴 수 없이 겪었어자태는 그대로다. 허나 예서 풍류를 즐기던 일곱 벗은 어디로 가고 물속에는 버들치만 한가로이 노닐고 있다. 

물줄기는 굽이쳐 칠유암을 휘감고 돌아 너럭바위 위에 깊은 담을 만들고 여울로 이어진다. 풍류를 아는 조선의 시인 묵객들이 이 절경을 어찌 가만히 보고만 있었겠는가!      


   칠유암을 지나 북한천 최고의 절경,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옥구슬처럼 울려 퍼지는 향옥탄(響玉灘)이 물보라를 일으킨다. 바위 사이로 거세게 분출되는 물줄기는 하늘로 치솟아 이슬보다 작은 물방울 산화한다.

여울로 모여든 옥구슬 물줄기는 하얀 거품을 일으키며 햇빛에 비늘을 반짝거린다. 향옥탄 위 쌍폭포에서 계류는 힘을 모은 뒤, 소용돌이를 치며 바위를 휘감고 돌아 향옥탄에서 그 절정을 맞이한다.

아쉬운 것은 역시 안내 표지도 없고 전망대도 없어 모르는 이는 그냥 지나치리라. 아무튼 조선의 풍류와 함께 절경을 감상하니 기분이 상쾌해지고 흥이 절로 나서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북한천의 절경 향옥탄)


산영루와 중흥사 단풍이 곱게 물들 때     

계곡 길은 이제 임도와 합쳐진다. 원효교 앞 삼거리 쉼터를 지나 계곡의 절경을 감상하면서 오르면, 원효봉과 의상봉의 중간 지점의 협곡에 중흥동 행궁을 바라보고 세운 중성문(中城門)이 앞에 버티고 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은 조선은 숙종 때, 37년간 논의를 거쳐 11.6km에 달하는 북한산성을 6개월 만에 축성하고 산성 내 행궁을 건립하였다.

중성문 누각에 올라 건너편 성벽과 사라진 수문의 홈이 파인 흔적을 보고, 마루청에 걸터앉아 천정의 상량과 기둥 옆의 빗물받이 홈통을 보면서 새삼 조상들의 지혜와 슬기를 배운다.

그 아래쪽에 시구문이 있다. 산성을 쌓다가 죽은 인부의 시신을 대문이 아닌 개구멍처럼 생긴 문으로 내본다니 서글픈 생각마저 든다. 죽도록 일만 하던 무지렁이 백성은 죽어서도 그렇게 대접받았다.       


   중성문을 뒤로하고 개천 길을 따라가다가 왼쪽 산기슭 샛길로 접어들어 숲 속에 숨어 있는 백운동문 각자 바위를 만나고 간다. 백운동문에 대한 역사적인 고증자료가 없어 아쉬운 마음을 안고 걸음을 재촉한다.

발길이 멈추는 곳, 부황사와 부왕동암문으로 가는 징검다리가 나오고 수풀 사이로 기와지붕이 살짝 보인다. 조선의 시인 묵객들이 극찬했던 산영루(山映樓)다. 처마 끝의 우아한 곡선미와 열 개의 기다란 화강암 주초석 위에 세운 둥근기둥과 팔작지붕은 가히 일품이다. 누각에 오르면 북한산 봉우리가 물속에 어린다.

깊은 골짜기에서 흘러 내려오는 물줄기는 제힘에 못 이겨 이리저리 굽이쳐 바위에 부딪히는가 하면 종국에는 마당바위를 타고 반룡담(蟠龍潭)으로 흘러든다. 용이 승천하기를 기다리며 폭포 아래 담 속에서 똬리를 틀고 웅크리고 있는 모습이 눈앞에 선하다. 과연 조선의 시인 묵객들이 극찬할 만하다.               


   산영루의 절경을 노래한 조선의 시인 묵객 31인이 지은 42수가 전해 내려오고 있는데, 매월당 김시습과 추사 김정희, 다산 정약용을 비롯한 수많은 선비가 이곳에 와서 시를 짓고 풍류를 즐겼다고 한다. 누각에는 정약용이 풍류를 즐기면서 지은 시의 현판이 걸려 있다.

예조판서와 좌의정을 지낸 조선 중기의 명문장가 월사(月沙) 이정귀(李廷龜)는 중흥사에서 하룻밤을 묵으면서 벗들과 함께 시를 짓고, 피리와 거문고에 맞춰 춤을 추면서 풍류를 즐겼다는 기록이 전해온다.      


중흥사 주지 성민(性敏)이 이정귀에게 보낸 편지에서, “산중에 늦가을 서리가 내려 단풍잎이 한창 곱습니다. 며칠만 더 지나면 시들 것이니, 구경 오실 의향이 있으시면 이때를 놓치지 마십시오.”       


이정귀의 유삼각산기(遊三角山記) 중에서, “자제는 단풍 가지를 꺾어 머리 위에 꽂았고, 나는 국화꽃을 따서 술잔에 띄웠다. 취기가 오르자 더욱 즐거워 손뼉을 치고 발을 구르며 춤을 추었으며, 거문고와 젓대가 어우러져 맑고 미묘한 곡을 연주하니 모두 천고에 드문 소리였다.”         

(가을 단풍이 아름다운 북한천 산영루)


   북한산성 수문에서 시작된 인문학 탐사는 칠유암과 향옥탄, 중성문을 거쳐 산영루에서 마치고자 하였으나, 고찰 중흥사(重興寺)가 바로 옆에 있어 들렀다. 북한산 3대 길지 중의 한 곳인 이곳은 누가 보아도 포근한 새의 둥지처럼 아늑하다. 지금은 대웅전과 만세루, 요사채 등이 복원되었고, 템플스테이도 운영하고 있다.

물 한 잔 얻어 마시려고 보살에게 청을 넣으니, 여기는 샘이 없어 호스로 물을 끌어와 먹는다고 한다. 덤으로 오렌지 한 개를 건네주는데 목마르던 참에 시원한 물 한잔에 정말 귀한 보시를 받았다. 대웅전 부처님 전에 삼배를 올리고 절간을 나선다. 중흥사에는 일주문도 천왕문도 없어 가슴 한 곳이 허전했다.   

절 주변의 계곡이 온통 단풍나무인지라 시월이 오면, 중흥사 위에 있는 태고사 천해대(天海坮)에 걸터앉아 온몸으로 가을을 느껴보고 싶다.             


   조선의 시인 묵객들은 북한천을 유람하며 시를 짓고 풍류를 즐기면서 계곡마다 이름을 지어 남겼다. 옛 문헌상에 기록된 북한산성 계곡의 이름은 장춘동(長春洞), 옥류동(玉流洞), 청계동(靑溪洞), 노적동(露積洞), 영천동(靈泉洞), 은선동(隱仙洞), 용계동(龍溪洞), 규룡동(叫龍洞), 잠룡동(潛龍洞), 용유동(龍游洞), 백운동(白雲洞), 자하동(紫霞洞) 등 곳곳이 신선이 놀던 곳이요 아름다운 선경 지대다.

이처럼 아름다운 절경을 보고 어찌 다시 오고 싶지 아니하겠는가! 7월에 두 번, 8월에도 두 번 다녀왔건만, 향옥탄 물방울 소리가 지금처럼 울려 퍼질 때, 다시 와서 산영루와 천해대의 붉고 고운 단풍 천지를 보고 싶다.

징검다리 건너 환희령으로 가는 청하동문에서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푸른 노을과 나월능선 자명해인대(紫明海印臺)에 올라 불가의 화두를 구하는 것은 덤이다.    



[참고 자료]

조선 실학자 '성해응'의 <<기경도산수(記京都山水)>>, 북한산 4대 명승지는 민지암(閔漬巖), 향옥탄(響玉灘), 산영루(山映樓), 환희령(懽喜嶺).

윤호진 경상대 교수, “산영루(山映樓) 옛터에서 만난 늦가을 정취”, 월사 이정귀의 <<유삼각산기(遊三角山記)>> (고전번역원, 이상하 역).

김순배, "북한산성 지명의 분포와 변천: 北漢誌 수록 지명을 중심으로", 한국지역지리학회지 제23권 제2호(2017) pp.325-353.             


[산행 안내]

<코스> 북한산성 탐방지원센터-계곡 무장애길-중성문-산영루-중흥사-원점 회귀,

<거리> 왕복 7km, <난이도> 하, <소요 시간> 3시간(휴식 시간 제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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