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을 기다리던 그네는 사라졌다. 그네가 메여 있던 밤나무 가지는 덩그러니 빈 채 옛 친구를기다린다.못 보던 벤치 두 개가 가지런히 놓였고 사진 액자처럼 생긴하트도곁에세워졌다.
하트 뒤편으로는 대여섯 그루의 밤나무 가지에 탐스러운 밤송이가 가을 햇살에 여물어가고, 햇살을 견디지 못하고 아람이 벌어진 밤송이는 툭툭 알밤을떨어뜨린다.
우이령 들머리 오봉 아파트 담벼락에는 ‘양주에서 시작하는 우이독경 이야기’벽화와 함께 이곳에서식하는 동식물 이야기가 적혀있다. 우이령은 다시 소통할 수 있는 길이 되었다. 소귀고개로 가는 우이령은 북한 무장 공비 침투로 길목으로41년 동안 폐쇄되었다가 2009년부터 사전 예약제로 운영되어 왔다. 양주시와 시민들의 노력으로 2024년 3월부터 평일에 한하여 완전히 개방되었고, 주말과 공휴일과 성수기에만예약제로 운영되고 있다.
소의 귀처럼 길게 늘어져 소귀고개라 부르며 옛날 양주에서 우마차로 한양을 오고 가던 길이다. 우이령은 북한산국립공원에서 자연 생태계가 가장 잘 보전된 곳이다. 희귀 식물인 산개나리는 물론, 희귀 동물인 오색딱따구리와 소쩍새와 올빼미도 이곳에 서식하고 있다. 건너편 쌍룡사 사찰 풍경소리에 언덕 꽃밭에선 산수국 무리가 쑥쑥 자란다.
교현 탐방지원센터를 지나면 맨발로 걸을 수 있는 말랑말랑한 흙길이 시작된다. 흙 알갱이는 적당히 수분을 머금고 있어 밟는 걸음마다 등산화 자국을 남기고 맨발로 걷는 사람은 발바닥 흔적을 남긴다. 자동차가 지나간 곳엔 흙 알갱이가 밀려 작은 둑이 생겼고, 파인 골엔 빗물이 흐르고 모래알과 돌멩이가 드러나 보인다.
길섶엔 우이령 숲 지킴이 국수나무가 즐비하다. 산속에서 길을 잃어버렸을 때 국수나무가 보이면 오솔길이 나온다고 한다. 국수나무 곁엔 이고들빼기가 앙증맞게 노란 꽃을 활짝 피웠다.
키가 작은 국수나무와 진달래, 철쭉, 산딸기나무, 찔레꽃나무는 숲의 울타리 역할을 하면서 인간이 더 이상 숲을 침범하지 못하도록 경계를 한다.자연생태계가 말없이 인간세상에 가르침을 준다.
계곡엔 맑은 물이 흐른다. 백색소음을 들으니 마음이 편안해지고 머리까지 맑아진다. 개천골짜기엔갈대가 빼곡히 들어찼다. 갈대숲 사이로 흐르는 물줄기는 소리 없이 곡룡천으로 긴 여정을 떠나는 중이다. 길가엔 키다리 억새가 무리 지어 숲을 이루어 갈바람에 드러눕는다.
소귀고개 2.5 킬로미터 이정표 옆에 쉼터도 있고 세족 터도 마련되어 있다. 하산길에 여남은 명이 앉아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탁족을 즐기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다.
때죽나무도 보인다. 때죽나무는 늦봄에 하얀 꽃이 땅을 바라보고 피는데, 주렁주렁 매달린 꽃은 향기가 달콤해서 지나가는 길손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가을에 종처럼 생긴 열매가 대롱대롱 매달린다.
때죽나무 이름에 대해서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 온다. 열매가 동자승들의 머리처럼 반질반질하다고 해서 떼중나무에서 유래했다는 설, 나무를 빻아서 물에 풀어놓으면 물고기가 떼로 죽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 열매를 우려낸 물로 빨래를 하면 때가 죽 빠지는 데서 유래했다는 민간의 이야기가 전해 온다.
(우이령 길)
가족이걷기 좋은 숲길
가을 햇살이 쏟아지는 산기슭에 허리를 드러낸 바위는 허연 등살을 내보이고, 계곡에 자리 잡은 집채만 한 바위는 크고 작은 돌멩이를 품에 안고 곰처럼 계곡을 지킨다. 그늘진 곳엔 바위에 이끼가 파릇파릇하고, 소귀고개 가는 길에는 참나무 군락이 커튼처럼 초가을 따가운 햇빛을 가려준다.
매자나무가 길섶에서 자란다. 우리나라 특산종인 매자나무는 조경수나 울타리용으로 많이 심는다. 봄에 노란 꽃이 총상꽃차례로 주렁주렁 매달리고 가을에 열매가 붉게 익는다. 잎은 조개처럼 타원형으로 둥글고 가장자리에 톱니가 있으며 가을에 진한 자색으로 단풍이 든다.
잠시 쉴 곳을 찾는 데 숲 속에 전망대가 보인다. 오봉의 다섯째와 셋째 봉우리가 고개를 쑥 빼 들고 우이령을 바라본다. 하늘엔 솜털 같은 뭉게구름이 유유히 흐르고 하늘 끝에는 새털구름이 비늘무늬 조각을 새긴 것처럼 미동조차 없이 떠 있다. 전망대에서 푸른 하늘과 흰 구름에 넋을 잃고 깜박 생각을 놓쳤다.
오봉 삼거리 못 미쳐 길섶에서 함박꽃나무가 함박웃음을 터뜨리며 반긴다. 우리나라 산에서 자생하는 식물이다. 우리에게 ‘함박웃음’이라는 글귀를 선물해 준 꽃이다. 늦봄에 함지박처럼 크고 탐스러운 하얀 꽃이 피는데 산목련이라고도 불리며, 다소곳이 피는 꽃송이는 정갈하고 우아하다. 잎은 가을에 자색으로 단풍이 든다. 북한의 국화이기도 하다.
오봉 삼거리에서 소귀고개로 향한다. 길은 좁아지고 여기서부터 차량은 통제된다. “딱! 딱! 따다다닥!” 소리가 들린다. 숲 속의 의사 딱따구리가 나무를 쪼아 구멍을 내고 그 속에 있는 벌레를 잡아먹는 중이다.
딱따구리는 부리로 그렇게 나무를 쪼아도 머리에 충격을 받지 않는다. 딱따구리의 혀가 머리를 감싸고 있어서 충격을 흡수해 주기 때문에 아무렇지 않은 것이라고 한다. 나무 구멍 깊숙한 곳에 있는 벌레를 잡아먹을 때 머리에 말려있던 혀가 부리 밖으로 길게 나온다. 딱따구리는 북한산 깃대종 새다.
북한산 깃대종 나무는 멸종위기종인 산개나리다. 산개나리는 우리나라에서 자생하는 희귀종인데 일반 개나리에 비해 색이 연하고 잎의 뒷면에 잔털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산의깃대종은 그 지역의 생태·지리·문화적 특성을 반영하는 상징적인 동식물로서 산림의 건강 정도를 나타내는 생태 환경 지표종이다.
오봉 전망대가 보인다. 팻말엔아랫마을 다섯 총각이 고을 원님 딸에게 장가들기 위해 북한산 상장능선에서 바위 던지기 내기를 하여 오봉 봉우리가 생겼다고 전한다. 오봉의 유래에 대해서는 「오봉과 여성봉의 전설」 편에서 소개할 예정이다.
아직 무더위가 가시지 않아 날은 덥지만, 말랑말랑한 흙길에 우거진 참나무 그늘을 걸으면서 바람까지 솔솔 불어주니 산책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원점 회귀해서 가는 길에 석굴암에 들러봐야겠다.
(우이령 전망대에서 바라본 오봉)
관음봉 석굴암 적멸보궁
석굴암 삼거리 사찰 안내문에 석굴암은 관음봉 중턱 명당에 자리한 나한기도 도량이자 천년고찰로서 신라 의상대사가 창건하였고 고려 나옹화상과 조선 설암대사가 주석하였다고 한다.
암자로 오르는 길은 포장이 되어 있고, 절까지 오백여 미터 가파른 길을 올라야 한다. 삼사백여 미터를 올라 숨이 가빠질 무렵 오봉을 등지고 불이문(不二門)이 서 있다. 불이문은 해탈문이라고도 하는데 번뇌의 세계에서 깨달음의 세계로 들어가는 입구를 뜻하는 문이다. 사찰로 들어가는 3문(三門)인 일주문, 천왕문, 불이문 중에서 불이문은 절의 본전에 이르는 마지막 문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진리’ 그 자체를 달리 표현한 말로써 본래 진리는 둘이 아님을 뜻하는 말이라고 한다.
불이문 뒤에 해태상을 조각한 돌다리가 놓여 있는데, 아마도 풍수지리상 화재를 예방하기 위한 게 아닌가 어림 짐작된다. 불이문을 지나 언덕에 올라서자 사찰 마당이 보인다.
관음봉이 석굴암을 내려다보고 있다. 대웅전으로 가서 부처님께 삼배. 석굴암이 시작된 자연 동굴 나한전에는 석조나한상 불상을 모시고 있다. 출입문이 너무 낮아 머리 조심! 시주를 하고, 생전에 부처님께 귀의하셨던 부모님과 장인어른, 장모님의 극락왕생을 기도드리면서 엎드려 절을 올린다.
적멸보궁 대적광전은 중창 불사 중이다. 내년 설이 되면 적멸보궁 단청도 완성된다고 한다. 도량을 한 바퀴 둘러보고 십수 년 전에 들렀던 석굴암 흔적을 기억으로 떠올려봐도 대웅전과 나한전 말고는 모두 생경스럽다. 암자가 아니라 도량 석굴사로 다시 태어난 것 같다. 절간 마당에서 상장능선을 바라보니 가슴이 뻥 뚫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