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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다올 Oct 03. 2024

마음이 쉬어가는 무수골


그림 같은 하늘과 산     

서울에도 이런 곳이 있다. 그림처럼 다가오는 싱그러운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파란 하늘에 흰구름이 돛단배처럼 떠가고, 하늘 높이 솟아오른 암봉과 기암괴석과 부드러운 곡선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하늘에 맞닿았다.

북받쳐 오르는 흥분을 주체할 수가 없어 시선을 다른 곳으로 둘 수다. 

도봉역에서 쳐다보는 하늘은 '푸르다'라고 말할 수밖에 달리 표현할 형용사가 없다. 암봉을 둘러싼 푸른 산세가 푸른 하늘과 어우러지니 어디가 산이고 어디가 하늘인지 그 경계가 모호하다. 무수골 계곡으로 가는 하늘과 산과 개천은 한 폭의 동양화라고 하기에 과장됨이 없다. 

쪽 눈으로 도봉산 자운봉·선인봉·만장봉과 주봉능선 끄트머리 우이암을 바라보고, 다른 쪽 눈으론 북한산 백운대·인수봉·만장대와 용암봉 산성능선을 조망하면서 걷는 기분을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겠는가. 


   무수천 개울 바닥까지 훤히 드러나 보일 정도로 물이 , 구름을 실은 푸른 하늘이 물속에 잠겨 물까지 파란색으로 다. 모든 게 파랗다.

무수천하늘이 비치구름이 떠가고 버들치 무리가 구름을 헤집고 숨는다. 백로 한 마리가, 버들치 떼가 놀랄세라, 그림자를 숨기고 조심스레 디딤발을 옮기면서 물고기 사냥에 여념이 없다.

부리를 물속으로 내리 처박은 뒤 고개를 들자 버들치 한 마리가 백로 주둥이에서 바둥거린다. 버들치는 살고 싶어 몸부림치고 백로는 부리로 물고기를 공중제비시키듯 돌려서 대가리부터 삼킨다. 백로 목구멍이 요술 막풍선처럼 록해진다.

배를 채운 청둥오리 한 쌍이 징검다리 위에서 가을 햇살 아래 꾸벅꾸벅 졸고 있고, 갈대숲에는 청둥오리 무리가 둥지를 틀고 있다. 송사리 떼는 그런 줄도 모르고 유유히 헤엄치며 물길을 가로지른다.


   폭포 소리가 들린다. 설레 걸음으로 가보니 하류에서 물을 끌어와 무수에 물을 대는 소리였다. 이곳을 벗어나자 하천은 조용하다. 무수천은 갈대밭으로 이어지고 송사리 떼가 갈대숲을 헤치고 숨바꼭질한다. 

갈대숲을 지나자 바닥에 길게 드러누운 반석이 아이들을 부른다. 꼬마들은 물장구치며 놀고 어른들은 너럭바위에 돗자리를 펴놓고 한나절 여가를 즐긴다.

산자락 주말농장 텃밭엔 싱그러운 채소가 자란다. 무수아취 캠핑장과 명상과 힐링을 함께할 수 있는 무수골 녹색복지센터가 나란히 보인다. 녹색복지센터는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쉼의 공간이다. 인터넷에서 예약제로 운영되고 있으며, 비용도 저렴하고 시설도 훌륭해서 가족들이 많이 이용하는 것 같다. 개천 세일교 다리를 건너 무수골 자연마을로 걸어간다.     


벼가 익어가는 마을  

마을로 들어서자 무지개논 들판이 눈앞에 펼쳐진다. 들판은 층층이 다랑논에 색깔이 제 각각인 벼 이삭이 가을 햇살에 여물어간다. 이삭이 누렇게 익어가는 토종벼, 고개 숙인 찰벼, 흑진주처럼 까만 벼, 얼룩덜룩한 색깔이 뒤섞인 벼가 줄줄이 파란 다랑논을 가을색으 도배를 한다.

논둑에는 허수아비가 길게 줄지어  이삭 지킨다. 생김새도 제각각이다. 밀짚모자를 쓰고 헐렁한 셔츠 입은 허수 아비, 이마에 수건을 질끈 동여 메고 검정치마를 두른 허수 에미, 파란 모자에 셔츠를 입은 청년 허수, 허수 옆에는 챙이 달린 모자를 쓴 허수 아내, 피에로 모자를 쓰고 함박웃음을 짓고 있는 허수 딸아이, 그리고 허수 할배와 허수 할매, 허수 친구들이 두 팔을 벌리고 훠이 훠이 참새를 쫓는다.


   다랑논 둑방엔 밤송이 여물어간다. 무수골 윗말은 밤나무가 많아 예로부터 밤골로 불려 왔다. 영근 밤송이가 떨어져 알밤이 뒹굴고 아름이 벌어져  대롱대롱 가지에 매달린 밤송이는 언제 알밤을 떨어뜨릴지 몰라 한참 기다려본다.  여문 밤송이는 이파리가 바람에 간들거리자 삐쭉  내민다.

사람들은 풀숲을 헤집고 보물찾기 하듯 알밤을 줍는다.

개천에는 줄기가 소용돌이치며 하얀 포말을 일으키고, 작은 물고기 떼가 물살을 가르고 물거품 속으로 숨어든다. 개울가에는 정화식물 고마리가 군락을 이루어 산다. 그 사이 흐르는 물살은 해지고 개울가 몽돌엔 이끼가 자란다.

(윗말 무수골 다랑논과 허수아비)


   무수골에 하늬바람이 불고 벼가 익어가고 알밤이 여물 송사리 떼가 노닌다. 천혜의 자연 풍경이 어울린 무수(無愁)골은 근심 걱정이 없다. 무수골은 무시울(윗말), 중간말, 아랫말로 나누었는데, 지금은 윗말만 자연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옛날에는 전주 이 씨, 안동 김 씨, 함열 남궁 씨, 이렇게 세 성씨가 씨족을 형성하여 살았다. 지금은 윗말에 십여 가호가 자연마을을 유지한 채 과거를 품에 안 살아간다.

언덕에는 느티나무가 마을을 지킨다. 수령이 200년이 넘고 높이가 22미터라고 하니, 이곳 역사를 줄줄이 꿰고 있는 나무 앞에서 괜히 숙연해진다.


   마을 입구 울타리 대문에 '느티나무 가든' 나무 간판이 보인다.  호기심이 발동해 고개를 기웃거렸더니 한옥 대문이 달린 집 바깥마당에 탱자가 노랗게 익어가고 있다. 몰래 노란 탱자 개를 다가 주인에게 호되게 야단맞고 고개 숙여 "죄송합니다" 하고선, "영해군 묘역이 어디세요"라고 물었더니 손가락으로 저쪽으로 가면 된다고 한다.

느티나무 가든 입구에서 오른쪽으로 삼십여 미터를 가니 개울 건너편에 홍살문이 보인다. 영해군 묘역이다.

영해군 이당(李瑭)은 세종과 세종의 애첩 신빈 김 씨 사이에서 태어난 왕자로 세종의 열일곱 번째 아들이자 서자로서는 아홉 번째인 왕자이다. 무수골 마을 이름은 영해군의 묘가 조성되면서 유래되었다고 전한다.


무수히 전하길과 천년고찰

무수골 자연마을 이정표는 '무수히 전하길'을 가리킨다. 무수히 전하길은 숲이 좋은 길이다.

무수골 입구에서 개천을 끼고 자현암까지 이어지는 고즈넉한 숲길이다. 무수히 전하길은 사색의 공간이자 서울의 쉼표, 마음이 쉬어가는 이다.

명상하듯 호흡을 가늘게 하고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잡념을 떨쳐버리고 맑은 공기를 마시면서 숲길을 걷는다. 들리는 것은 오직 계곡의 물소리, 세속의 욕심도 내려놓고 무수히 전하길에 을 맡긴다.

아름드리 굴참나무가 즐비하다. 굴참나무가 하늘을 가려 숲길 터널을 만들바람이 솔솔 불어와 코끝을 간지럽힌다. 마음이 홀가분해지고 기분이 상쾌하다. 몸은 숲 속을 나를 것만 같다.


   송진 냄새가 물씬 풍긴다. 보기 드문 소나무 군락지다. 솔밭 쉼터에서 커피 한 잔 마시고 성신여대 난향원을 지나 무수골 탐방지원센터 앞에 선다. 왼쪽은 빈정경 도예연구소와 함열 남궁 씨의 한옥 만세재로 가는 길이고, 오르막 길은 자현암을 지나 원통사로 가는 길이다. 자현암은 아담한 비구니 사찰이다. 자현암 계곡 입구에 서면 범종각이 두드러지게 눈에 들어온다. 사찰은 범종각을 앞에 내세우고 요사채와 대웅전은 뒤로 물러나 있다. 자현암 경내 계곡 너럭바위를 타고 맑은 물이 흐르고 이 물을 공양간에서 요긴하게 쓴다.

무수히 전하길은 자현암에서 끝나고 이제부터 흙과 돌이 뒤섞인 길이 번갈아 나온다. 계곡은 거칠어지고 물살은 빨라진다. 덩달아 호흡도 가빠지고 이마엔 땀방울이 맺힌다.

(무수히 전하길 송림)


   아름드리 소나무와 참나무가 혼재한 숲이 이어지고, 계곡 물 흐르는 소리가 희미해다. 땀을 훔쳐야 할 때쯤 물소리가 사라졌다가 숨었던 계곡이 다시 나타난다.

철교를 건너자 소나무 개체수는 줄어들고 참나무가 빽빽이 군락을 지어 하늘을 가린다. 물줄기는 가늘어지고 계곡엔 이끼 낀 바위가 드문드문 자리하고, 금강송도 어쩌다가 한그루 씩 보인다. 한동안 참나무 군락이 이어지고 숲은 무성해지고 길은 점점 가팔라진다.  


   마지막 데크 계단을 오른다. 원통사 절간 용마루가 보이는가 싶더니 쪽동백나무가 숲을 가득 채운다. 쪽동백나무 자생지다. 쪽동백나무와 때죽나무는 형제처럼 꽃과 나무줄기 열매가 많이 닮았다.

쪽동백은 봄에 꽃대가 올라와 송이마다 수십 개가 넘는 하얀 꽃이 줄을 지어 피는데 동백꽃처럼 통째로 뚝 떨어지고, 가을에 동그란 열매를 맺는다. 잎사귀는 둥그스름하고 때죽나뭇잎 보다 크다.  

옛날 여인들은 동백기름으로 머리단장을 했다. 동백기름은 따뜻한 남서쪽 해안지방에서만 나는 귀한 화장품이라 여염집 아낙들은 쪽동백나무나 생강나무 씨앗을 짜서 그 기름으로 치장했다고 한다.  


   절간의 은은한 향 내음이 코끝을 스친다. 우이암 암릉을 타고 내린 맥이 원통사 대웅전에 혈을 맺었다. 우이암은 원래 관음봉으로 불리었으며 주변 동물 형상을 한 바위들이 관음봉을 향해 머리를 조아리고 있다. 그래서 관음봉 기가 뻗친 천년고찰 원통사는 관음 기도 도량이라고 다.

태조 이성계가 원통사 석굴에서 기도를 마치고 천상의 상공(정승)이 되어 옥황상제를 배알 하는 꿈을 꾸고, 원통사 거북바위에 상공암 글자를 새겼다고 전한다. 거북바위에서 수락산을 바라본다. 저 멀리 수락산이 이곳을 향하여 머리를 조아린다.

사찰에서 우이암에 올라 마들평을 바라보니 가슴이 후련하다. 보문능선을 타고 하산 길에 오른다. 진달래가 피는 봄에 다시 보문능선 길에서 도봉산 암봉을 보고 싶다. 도봉산 암릉지대 Y계곡에서 오래간만에 짜릿한 느끼고 싶다.



[참고 자료]

무수골 현지 안내문, 원통사 안내문


[산행 안내]

<코스> 도봉역 1번 출구-무수천-무수골 자연마을-무수히 전하길-자현암-무수골 계곡-원통사-우이암-보문능선, <거리> 8km, <소요 시간> 4시간, <난이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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