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목다올 Oct 17. 2024

산 좋고 물 좋은 소귀천


들머리 풍경 예찬 

하늘을 찌를 듯한 직벽 암봉 위엄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천길 낭떠러지 골짜기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소귀천 계곡으로 모여든다. 혹자는 홀아비 계곡이라고 부른다는  출처를 알 길이 없다. 

조선의 풍수가들이 삼각산 수백 미터 암봉 부아악 새댁이 아기를 등에 업고 마실 나가는 형세라고 했다. 그래서인지 대문이 반쯤 열려 다. 문지기가 십리 밖에 나가 있어 아낙의 걸음멈추게 해 줄 이가 없었다. 담장 바깥 백운봉에 걸린 구름이 길목으로 나지막하게 내려앉아 아낙의 걸음막아섰다.

멈춰 선 아낙의 키가 구름을 뚫고 하늘에 닿았다. 담장 너머로 고개를 삐쭉 내민 국망봉이 멀거니 쳐다보고 있다. 우람한 노적봉이 길을 막아서니 골목이 꽉 들어찼다. 산꾼은 경이로운 모습에 멍하니 하늘만 쳐다볼 뿐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요산요수(樂山樂水)라고 했던가. 어진 이는 산을 좋아하고 지혜로운 이는 물을 좋아한다는데, 나는 산을 좋아해서 산에 오른다.

에 가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산은 내 마음의 고향이다. 골짜기 거슬러 능선을 타고 산봉우리에 올라선다. 

기분이 상쾌하다.  숲 속에서 들리는 풀벌레 울음소리, 물소리가 다. 풀잎사귀를 타고 흘러내린 빗방울, 실핏줄 같은 나무뿌리에서 스며 나온 물방울이 모여 실개천을 이루고, 물줄기가 모여 개천이 되고 소귀천 계곡으로 흐른다. 계류는 거침없이 바위에 부딪히며 물보라를 일으키고 낙차가 큰 폭포에서 갈라진 물줄기는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비췻빛 담으 흘러든다. 잔물결이 일고 햇볕에 반사된 물결이 반짝거린다.


   소귀천 물소리에 귀가 즐겁다. 숲속 걷는 발걸음이 가볍다. 우거진 참나무 사이로 빼꼼히 하늘이 보이고 거대한 암봉 치맛자락에 바위를 타는 등산객들이 거미처럼 대롱대롱 매달렸다.

박석이 박힌 길에서 고풍스러운 한옥을 만난다. 선운각이다. 선운각은 조선 왕실 가족이 거주하던 집해체하여 이전해 지은 건물이라고 한. 담장을 끼고 집을 지키는 솟을대문이 덩그러니 아래를 내려다본다.

하산 길에 선운각에 들러볼 요량이다. 구이구곡에서 내려오는 물줄기를 바라보며 옥류교를 건넌다. 도토리가 툭하고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도토리 한 알이 발밑으로 또르르 굴러와 멈춘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새끼 다람쥐가 도토리를 주워 입에 물고 참나무를 타고 오르다가 힐긋힐긋 쳐다본다.    


귀가 즐거운 소귀천 

소귀천 숲길은 고요하나 계곡 물소리는 우렁차다. 소귀천공원지킴터를 지나자 우거진 참나무 숲으로 길이 이어진다. 군데군데 길바닥에 돌이 빗물에 씻기어 드러나고 반듯한 박석 사이로 작은 도랑이 생겼다.

물소리가 시원하다. 오늘은 귀가 호강하는 날이다. 개천을 따라 흐르는 계류는 맑고 청아한 소리를 내면서 폭포를 만들고, 푸른 웅덩이와 올망졸망한 소를 만들었다. 소귀천 물줄기는 거침이 없다.

소귀천(所歸川)은 중망소귀(衆望所歸)에서 유래된 말이 아닐까 생각한다. ‘여러 사람이 바라는 것이 귀결되는 바’라는 뜻으로, 수많은 사람의 기대가 한 사람에게 쏠리는 것을 의미한다. 혹자는 소귀는 우이(牛耳)이고, 우이천 계곡을 일컫는다고 말하는데, 옛 선비들이 지명을 한글과 한자를 섞어서 지었겠는가.  

(돌담 옹달샘 용천수)


   한참 고즈넉한 숲길을 걸어 올라가니 계곡에 곰보 다리가 보인다. 곰보 다리 너머엔 시골 골목처럼 돌담이 둘러싸여 있다. 열린 돌담 안으로 들어가니 샘이 보인다. 옹달샘 용천수 약수다. 

바가지에 한가득 약수를 받아 마시고 반석에 앉아 유심히 돌담을 쳐다본다. 담을 정성스레 잘 쌓았다. 모난 돌은 모난 돌대로 둥근돌은 둥근 돌대로 제 자리에 올려놓고 한층 한층 쌓아 올린 흔적이 엿보인다. 약수터에서 물을 한 잔 더 마시고 돌담 뒤로 난 길을 오르다 길가에 소귀천산악회수요지처 입석을 만난다. 산악회가 훈련하던 곳이라고 한다.

계곡에 길게 드러누운 폭포가 일품이다. 중년 등산객 서넛이 둥그렇게 모여 앉아 막걸리를 마시면서 여가를 즐기고 있다. 침이 꼴깍 넘어간다. 이곳을 벗어나자 입석에 전서체로 용담수라고 새긴 약수터가 버티고 있다.


   바위에 새겨진 용담수 글씨가 예술이다. 누군가 글씨를 쓰고 돌에 정을 멕여 새겼겠지만 마치 샘물이 용솟음치는 것 같다. 수통에 물을 채우고 물맛을 본다. 시원하고 달짝지근하다. 나무데크 무지개다리를 건너자 이제 본격적인 오르막이 시작된다. 빗물에 흙이 씻겨 작은 돌멩이가 길바닥에 뒹굴고 땅속에 박힌 큰 돌은 낯짝만 살짝 내비친다. 산꾼들이 등산화로 하도 밟아서 돌이 반질반질하다.

두 번째 나무데크 무지개다리를 지나자 길은 자갈과 큰 돌이 나뒹굴고 거친 길이 이어진다. 물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 소귀천 계곡이 나고 진달래 능선과 합류하는 지점이다. 대동문 이백여 미터 전부터는 침목계단, 대동문에 가서 허기를 채우고 커피 한잔을 마신 후에 원점으로 하산한다.


밀실 정치의 흔적

하산 길에 선운각에 들러 역사 속으로 한 걸음 들어가 보았다. 선운각에는 대궐집에나 있을 법한 솟을대문이 개나 있다. 출입처에 있는 솟을대문과 안채 담장의 솟을대문, 안채에서 다리를 건너 별채로 들어가는 솟을대문이다. 생김새가 똑같다. 옛 장인들의 솜씨가 일품이다. 솟을대문은 선운각의 백미이자 사진으로 가장 많이 접할 수 있는 광경다. 조각하듯이 손으로 나무를 깎고 모양을 하나하나 새겨서 그 위에 공포를 쌓고 지붕에 기와를 올렸다. 남산한옥마을이나 안동 하회마을 대갓집의 솟을대문보다 웅장하고 우아하다.


   선운각은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던 제3 공화국 앙정보부장의 후처가 운영하던 요정이었다. 얼굴 마담은 그 유명한 정인숙. 대통령 박정희가 낮에는 청와대에서, 밤에는 요정 선운각에서 정객들과 함께 기생을 옆에 끼고 술을 마시면서 밀실 정치를 했다고 한다. 독재자와 술과 여자는 불가분의 관계인가 보다.

선운각에서 권력자들과 재벌들은 은밀 뒷거래를 하고, 검은돈이 왔다 갔다 하고 권모술수가 판을 쳤다. 질펀한 술자리에서 기생이 웃음을 팔고 요정 마담 치마폭엔 돈다발이 수북이 쌓여다. 바깥마당에서 주인을 기다리던 집사 손에도 두둑한 돈 봉투가 쥐어졌다.


   사람들 눈에 띄는 게 꺼림칙했던지 그들은 깊숙한 산속에서 그것도 야심한 밤에 도둑질하듯 자기들끼리 쑥덕거리며 나랏일을 술상에 올려놓고 마음대로 주물렀다. 그 시절 밀실에서 세상을 주무르정객들과 재벌, 그네들은 지금 어디로 다 갔을까? 지하에서 선운각을 그리워하며 주변을 배회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묵 했던 시절의 선운각 옛 모습은 빗물에 씻기고 세월에 씻기고 소귀천 물소리에 씻겨서 말끔하게 단장하였다. 최근엔 TV드라마 촬영지로도 꽤 유명세를 탔다. 카페도 있어 젊은이들이 많이 찾아오고, 안채 마당에선 야외 이벤트도 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선운각 담장)

   솟을대문 안을 기웃거려 보니 안마당에선 결혼식이 한창 진행 중이다. 댓돌에 선 신랑신부는 백년언약을 맹세하고 가을 햇살에 신부의 드레스는 눈이 부도록 아름답다. 한옥 지붕과 처마의 곡선이 신부의 머리에서 이어지는 우아한 채플베일의 곡선미와 어우러지니 분위기는 사뭇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 구미가 당긴다.

능선을 빼다 닮은 안채의 처마가 마당에 그림자를 길게 드리웠다. 안채와 사랑채에서 마당을 가로질러 솟을대문을 지나고 다리를 건너서 다시 솟을대문으로 들어가니 단아한 별채가 나온다. 예스러운 풍경에 한동안 넋을 잃고 별채 용마루와 그 너머 산등성이를 바라본다. 선운각 밖으로 나오니 도시 빌딩이 보이기 시작한다.




[참고 자료]

선운각 안내문 


[산행 안내]

<코스> 우이천-소귀천공원지킴터-소귀천계곡-대동문-원점회귀, <거리> 8km, <소요 시간> 4시간, <난이도> 중

이전 08화 푸른 노을 지는 환희령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