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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다올 Oct 31. 2024

구름바다 천해대 비경

비경 천해대 운해

해 뜰 무렵 천해대(天海坮)는 장관이다. 산봉우리가 운무에 둘러싸여 먼바다 섬처럼 나타났다 사라지고, 운무가 걷히면 숨었던 봉우리들이 구름바다 위로 마술처럼 모습을 드러낸다.

운해에 둘러싸인 천해대 끄트머리에 앉아 있는 거북 바위는 구름을 뚫고 고개를 내밀어 코를 벌렁거린다.


북한산 구암봉(龜巖峯) 아래에 천해대와 거북 바위가 있다. 구암봉은 천년 고찰 태고사 뒤편에 있는데, 북한산성 주능선에 있는 동장대에서 능선을 타고 내려오다 중간쯤에 나지막하게 솟은 봉우리가 구암봉이다. 그곳 천해대에 거북이를 닮은 바위가 있어 봉우리를 구암봉이라 부른다.

천해대는 고려의 국사였던 태고 보우대사가 좌선하던 곳이라 태고대(太古坮)라 불리다가, 언제부턴가 천해대로 이름이 바뀌었다. 그 이름이 무슨 연유로 바뀌었는지 자료를 찾아보아도 알 길이 없다.      


   북한산성 축성 책임자였던 성능(聖能) 대사도 천해대에서 수행했다고 한다. 그는 토목과 건축에 뛰어난 안목을 지닌 스님이었던가 보다. 성능대사와 화엄사 장륙전(丈六殿) 일화가 있어 여기 소개한다.

화엄사 장륙전 불사 백일기도 회향일에 노승의 꿈에 문수보살이 나타나 “물 묻은 손으로 밀가루를 만져서 밀가루가 묻지 않은 사람으로 화주승(化主僧)을 삼아야 불사를 이룰 수 있다”라고 하였다.


화엄사 스님들이 물 묻은 손으로 밀가루를 만졌는데 모두 손에 밀가루가 묻었고, 오직 성능 스님만이 손에 밀가루가 묻지 않아 화주승이 되었다고 한다. 성능 스님이 백일기도 끝에 문수보살의 가르침으로 장륙전 불사를 이룰 수 있었고, 숙종 임금은 각황전(覺皇殿) 친필을 헌사했다.

이후 숙종은 성능대사를 팔도도총섭이자 북한산성 축성 책임자로 봉하여 산성을 완성케 하였고, 나중에 성능대사는 양산 통도사 계단탑을 증축하였으며 「석가여래영골사리탑비」도 건립하였다.


   항간에 천해대에는 5층 석탑이 있었고, 서산대사 휴정이 지은 시를 새긴 헌액과 영조가 쓴 헌액이 있었다는 이야기도 들리는데, 바위 틈새에 기와 조각만이 보일 뿐 석탑 흔적을 찾아볼 수가 없다. 거북 바위 코잔등과 등허리와 다리에 정을 박아 구멍을 뚫거나 바위를 쪼갠 흔적이 보이는데, 조사 자료가 없어 안타까울 뿐이다.


천해대 주변은 운무가 내려앉아 온통 구름바다로 변해버렸다. 거북 바위를 안개와 구름이 솜이불처럼 둘러싸고 거북이의 그 상처는 운무로 아물어지는 듯하다. 구암봉에 운무가 층층이 쌓이고 천해대 거북이는 운해를 가로지르며 헤엄치는 꿈을 꾸고 있을 게다. 헤엄쳐 가려던 거북이 다리를 부여잡고 바위틈에 자라는 어른 소나무에 붙들어 매 놓았다. 거북이 등에 올라타 나도 용궁 구경을 가고 싶었다.

용궁 가는 길에 어도 만나고 고래도 만나고, 토끼도 만나보고 싶다. 심호흡을 크게 한 번 하고 거북이 등에 올라타 용궁 여행을 떠난다.


   눈을 감고서 운해를 헤치고 바다 용궁으로 거북이 등을 타고 가는 꿈을 꾼다. 갑자기 몸이 서늘해진다. 용궁 대궐 앞에 다 왔는가 하고 눈을 번쩍 떴더니, 바람이 불어 천해대가 운해파묻혔다. 거북이 등에 올라탄 여기가 하늘인지 바다인지 가늠이 안 된다. 운해 속의 산봉우리 외딴섬들을 바라본다. 구름바다로 뛰어내리면 풍덩 하고 소리가 날 것만 같다. 밀물처럼 밀려온 운무는 아직 물러갈 기미도 보이지 않고, 해가 한 자쯤 떠오르자 운해가 서서히 걷히기 시작한다.


운무가 썰물처럼 자취를 감추기 시작하자 파묻혔던 봉우리들이 드러나고 어디가 협곡이고 골짜기인지 가늠이 된다. 해가 떠오르고 북한산성 봉우리와 계곡이 진면목을 드러낸다.

북한지에 북한산성에는 32개의 봉우리와 12개의 계곡이 있다고 하고 있는데, 아직 운해가 먼바다로 다 쓸려가지 않아 그 개수와 깊이를 헤아릴 수가 없다.

(운무 속의 천해대에서 바라본 백운대)


구암봉 거북 바위

운해가 걷히고 나자 북한산이 얼굴을 드러낸다. 천해대 거북 바위가 바라보는 곳이 어딘지 뚜렷이 보인다. 행궁이다. 행궁은 임금이 유사시에 머물던 궁궐이다. 북한산성 행궁은 상원봉 아래에 있는데, 상원봉은 임금이 머무는 봉우리라는 뜻이다. 그곳에 행궁을 수비하는 남장대가 있었다.

천해대 능선 위에는 어수재(御需齋)가 있었고, 능선 정상의 봉우리 이름은 붉은 해를 맞이하는 시단봉(柴丹峯)이다. 시단봉에는 북한산성 수비를 지휘하는 동장대가 있다. 세 개의 지휘소 장대 중에서 동장대만이 유일하게 복원되어 아쉽다.


천해대에서 오른쪽을 바라보면 원효봉과 영취봉을 거쳐 백운대에 이르는 능선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왼쪽은 환희령과 나월봉을 기점으로 의상능선이 용이 승천하는 것처럼 꿈틀거린다.

발아래에는 중흥사 대웅전과 마당이 훤히 보이고, 절간 뒤로 등편봉과 장군봉, 북장대가 있었던 기린봉이 금성채를 이루고 있다. 장군봉은 고려 최영 장군이 머물렀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단풍 구경도 할 겸 봉성암에 들려 성능대사 부도탑을 친견하려는데, 출입구에 외부인 출입금지 표지가 있어 부처님 오신 날을 기약하며 돌아선다. 천해대 아래에 있는 원증국사 부도탑을 사하고 태고사로 간다.

태고사 경내에 원증국사탑비가 있다. 원증국사 태고 보우대사는 고려말 혜근 나옹화상과 더불어 고려 불교의 중흥조인 고승이었다. 나옹화상은 다음과 같은 유명한 선시를 남겼다.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 하네. 성냄도 벗어놓고 탐욕도 벗어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 하네.

원증국사탑 비문은 고려의 이색이 썼으며, 최영 장군과 이성계 장군도 보우대사의 제자였다고 적혀있다.

는 고려 공민왕의 왕사로 요승 신돈과 대립하다가 신돈의 참언(讒言)으로 속리산에 금고(禁錮)되기도 했으나, 신돈이 죽은 후에 국사로 봉해졌다.   


하산길에 들른 중흥사

조선의 팔도도총섭 성능대사가 머물었던 중흥사로 내려와 절간 마당에서 구암봉을 바라보니, 거북이가 고개를 쳐들고 멀리 행궁을 바라보고 있다. 태고 보우대사도 성능대사도 떠난 그 자리에서, 잊혀가는 조선의 역사, 사라진 옛 궁궐 130칸 행궁을 보고 싶어 그곳을 쳐다보고 있는  같다.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복원되는 그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도량 마당에 있는 쉼터 의자에 앉아 겹겹이 쌓인 북한산 능선과 봉우리들을 바라본다. 지난날 보살이 물 한잔과 귤 한 개를 주던 모습이 생생하게 오르가슴이 따뜻해진다. 천해대 모습을 화가가 그림을 그리듯 머리에 떠올려보면서 습작 노트도 촘촘히 챙겨본다. 노트를 보다가 천해대와 거북바위 한 번, 구암봉 야트막한 봉우리 한 번, 그리고 하늘 한 번 보고 노트에 첨언을 한다. 중흥사 템플스테이를 온 젊은 친구들이 감색 옷을 입고 마당을 가로질러 천천히 걸어간다. 저녁 공양시간이 되어가는가 보다.   


   중흥사는 북한산성 축성 이전부터 있던 절이었다. 이곳은 원래 고구려의 영토였으나, 백제의 온조왕이 점령하여 산성을 쌓았다. 북한산은 깎아지른 절벽과 암봉으로 형성된 천연 요새, 금성탕지(金城湯池)이다. 인수, 백운, 만경 세 봉우리가 세 개의 뿔을 닮아 삼각산이라 불렀으며 화산(華山) 또는 화악(華岳)이라고도 불렀다.


북한산성의 정문인 대서문은 성문 중에서 가장 낮은 곳에 있다. 낮은 곳에 위치할 뿐 아니라, 대서문에서 중성문에 이르는 곳까지 지형이 평탄하여 적의 공격에 취약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노적봉과 증취봉 사이의 협곡에 이중으로 방어할 수 있는 중성을 쌓고 중문인 중성문을 설치하였다.

중성문 안은 내성으로서 북한산성 수비를 책임지는 사찰과 행궁이 자리했다. 오랜 세월 동안 대신들의 갑론을박을 거쳐 산성 축성이 결정되었지만, 3개 군영이 나누어 축성하는데 불과 6개월밖에 걸리지 않았다.   

(천해대 거북바위에서 보이는 행궁터)


   하산길 산영루 크계단에서 옆으로 난 샛길 숲은 단풍이 제법 곱게 물 들었다. 단풍을 바라보면서 느슨한 길을 내려가는데, 중년 아낙이 평상복 차림으로 올라오다 한마디 한다.

   “그 넘의 여편네는 이런 길을 가라고 그러냐!” 뒤따라오는 남편을 보고 원망 섞인 투로 말하고 나서 아낙은 바위에 엉덩이를 걸친다.


산은 거짓말을 안 하는데, 사람이 거짓말을 한다. 

하산하는 산꾼에게 정상으로 올라가던 초보 등산객이 묻곤 한다.

   “정상까지 얼마나 남았어요?”

   “거의 다 왔어요. 조금만 더 가면 돼요.” 산꾼은 이렇게 대답한다.

천해대에서 거북이를 타고 운해를 누비다가, 나도 거의 다 내려왔다. 버스에 올라타 구파발 단골집 이모네 밥상으로 간다. 오늘도 닭볶음탕에 소주 한잔을 곁들이면서 천해대 탐사를 정리하려고 한다.

           


[참고 자료]

『서울 역사 답사기 1, 북한산과 도봉산편』, 『國譯 北漢誌』, 서울역사편찬원     


[산행 안내]

<산행코스> 북한산성 탐방지원센터-무장애탐방로-중성문-산영루-천해대 탐사-봉성암-태고사-중흥사-원점회귀

<산행거리> 7km, <소요시간> 4시간, <난이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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