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바람이 부는 날, 옛 기억을 더듬으며송추행버스를 탔다. 사패능선과 도봉산 송추남능선이 삼태기처럼 마을을 품고 있는 울대리 송추계곡으로 배낭을 메고 떠난다. 북한산둘레길 13구간은 솔고개에서부터 도로변이라자동차 소음과 매연이 심해서 건너뛴다. 곧바로송추원 마을을거쳐 송추계곡으로 가는 코스를 추천한다.
서대문역에서송추행 버스에 올랐다. 좌석이 군데군데 비어 있었다. 홍제역을 지나자 탑승하는 등산객이 점점 많아진다. 덜컹거리는 차 안에서 그들도 들뜬 속내를 숨기지 않고 소풍 가는 아이들처럼 떠들며 가을 속으로 여행을 떠난다.
불광역에서 북한산 등산객이 한꺼번에 많이 타는 바람에 버스는 북새통, 연신내정류장에서부터 내리는 사람이 없으면 버스 기사는 아예 문을 열지도 않고 그냥 지나친다.
도시의 빌딩 숲을 지나 구파발역에 도착하니 만남의 광장 가로수에도 등산객들의 옷차림에도 울긋불긋한 단풍이 들었다. 가을 냄새와 단풍잎 냄새, 사람 냄새가 물씬 풍겨온다.
버스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풍경은 영락없이 고향마을그대로다. 가로수 가지 끝에도 골목길 풀 잎사귀에도 가을이 내려앉아 결실을 재촉하고, 언덕배기 감나무 가지에는 홍시가 빨갛게 익어간다.
한 자락 바람이 분다. 기와지붕 너머로 붉은 감나무 이파리와 노란 은행 잎사귀가 첫 비행을 나선 조롱이 새끼처럼곡예비행을 하듯 날아다닌다. 나뭇잎은 회오리바람에소용돌이치고.골목길은 빨강, 노랑, 분홍빛으로 모자이크를 수놓은 듯 현란하다. 밭 언덕에도 가을이 무르익어 간다. 사기막을 지나 솔고개를 넘으면 이제 내려야 할 시간이다
송추 푸른 아파트 버스 정류장에서 내려 개천을 따라 걷는다. 사패산과 도봉산의 크고 작은 골에서 흘러내린 물줄기가 모여서 송추계곡의 큰 물줄기를 만들고, 송추원 마을을 가로질러 곡릉천으로 흐른다.
마을 입구에는 백 년 된 느티나무당목이마을을 지키고, 골목길에는 백 년이훨씬 넘은 뽕나무와 오동나무와 은행나무가 터줏대감처럼골목을지킨다.동네 한가운데에는 홍살문터가 있다.
「송추원 마을, 뿌리 깊은 우리의 마을을 찾아서」 안내문은 마을 유래를 이렇게 소개한다.송추원 마을은옛날부터 신선이 노는 곳으로 알려져 왔으며 아름다운 산과 신비로운 물줄기가 조화를 이룬 곳으로,소나무(松)와 가래나무(楸)가 많아 원래 송추(松楸)라고 불렀다. 한자로 송추동(松楸洞)이라고쓰고, 가래나무 추(楸) 대신 못 추(湫) 자를 사용하여사계절 내내 맑고 시원한 물이 계곡에 흐른다는 의미로 통용되고있다고 전한다.
(송추원마을 계곡 데크 길)
송추원 마을 표지석에도, 옛날부터 소나무(松)와 가래나무(楸)가 많은 계곡이라 송추골이라 불렀다고 한다.
가래나무는 야생 호두나무처럼 생겼다. 조경수와 약재로도 많이 이용되고 있으며, 옛날에는 조상의 무덤가에 가래나무를 많이 심었다. 열매는 밤처럼 생겨 동글동글하고 호두보다 단단하여 불가에서는 이것을 갈아 염주나 단주를 만들기도 한다.
송추원 마을은 울대리에 속해 있다. 울대리 지명은 울대고개 밑에 있어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과 오봉산이 마을 뒤쪽을 막고 삼각산이 남쪽을, 일영 산맥이 서쪽을 감싸 사방이 막혀 있어 답답한 마을이라는 데에서 유래한 이름이라는 설, 예부터 숲이 우거진 땅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 등이 전해 내려온다.
송추계곡의가을
쉼터 벤치에 앉아가을을 눈에담고마음에새기면서커피를 마신다. 마을을 가로지르는 개천건너편엔 카페촌이 들어섰고, 그 너머 송추계곡으로 이어지는 데크길홍예문과 송추남능선으로 이어지는 오봉탐방지원센터가 보인다.사패능선과 도봉산 포대능선이나란히어깨동무를 하고, 여성봉은 곱게 땋은머리채만 보인 채 돌아 앉아 있다. 아마도 오봉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다.
계곡 홍예문으로 들어선다. 개울을 따라 물소리에귀를 열고걷는다. 울긋불긋한 단풍에마음도 물이 들어 옷에서 물씬 가을 냄새가 풍긴다. 신입생 때 MT 왔던 기억이 떠오르고 낯설지 않은 이의 그림자도 보인다. 길은 개천과 나란히 숲속으로 뻗어 있다.
떨어진 단풍잎을 밟으면서 가을 속으로 들어간다. 긴겨울잠을 준비 중인 숲속을 바라보니 상큼한 냄새가 물씬 풍겨온다.
길 건너편자연학습원에 “당신의 뱃살은 안녕하십니까?”라는 글씨와 통나무 칸막이가 보인다. 연령대별로 ‘마음만은 홀쭉해!!, 10대 15cm부터 60대 26cm, 그리고 답 없음’까지 통나무로 일곱 칸으로 간격을 재미있게 표현해 놓았다. 중년의등산객 몇 사람이 개구쟁이처럼 통나무 사이를 드나든다.
억새 무리가 은백색의 꽃술을 흔들며 길손을 부른다. 예스러운 원두막이 보이고, 폭포 물줄기가 널따란 담(潭)으로 흘러드는데, 담은 투명하고 푸르스럼한 비췻빛이라 그 깊이를 가늠할 수가 없다.
물 위에 떨어진 단풍잎은오색찬란한 색종이처럼 둥둥 떠 다닌다. 억새꽃과 원두막과 폭포를 배경으로 아가씨들이 사진을 찍고 있어나도 가을 감성에 젖어들고학창 시절그때가 생각난다.
(송추계곡 가을 단풍)
사색하기 좋은 숲속 쉼터를 만났다. 단풍 천지다. 쉼터에는 망원렌즈를 장착한 사람이 가을을 카메라에 담기에 여념이 없고, 한쪽에선 아기와 엄마가 스마트폰으로 기념사진을 열심히 찍는다. 벤치에는 가을 독서에 열중인 사람도 보인다. 한동안 벤치에 앉아 단풍 속에 풍덩 빠져 갖은 상상을 다하다가 자리를 털고 일어선다.
쉼터를 지나 널찍한 공터에 이르니 계곡의 숲속에 문인석이 보인다. 표지석에는 대한불교 조계종 약사여래 기도도량 송암사라고 새겨져 있고 희한한 광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사찰 일주문을 중심으로 문인석이 오른쪽에 2개, 왼쪽에 8개가 나란히 계곡을 바라보고 서 있다. 왜 사찰 입구에 문인석을 세워 놓았는지 궁금하기도 했지만, 절간에 들러 문인석에 대한 얘기는 다음에 물어보기로 하고 송추폭포를 만나러산행을 계속한다.
계곡은 끝없이 이어지고 숲속에서 상큼한 낙엽 냄새가 풍겨온다. 길가에는 개쉬땅나무가 붉고 곱게 물들어가고 덜꿩나무도 검붉은 이파리를 내밀고 있는가 하면, 붉은색으로 물들고 있는 복자기 나무도 만추의 행렬에 함께 한다. 두 갈래 길에서 계곡으로 난 한적한 오솔길은 대마 포대가 깔려 있어 걷기에 편하다. 계곡의 소와 담과 흐르는 물은 맑고 푸르러 눈이 시리다. 길은 다시 임도와 합류하여 태고종 도성암 표지석을 지난다. 아치형 나무다리와 금강송 몇 그루, 그리고 입산시간 지정제 팻말을 지나면 돌길이 이어진다.
송추샘과 송추폭포
상류 계곡에는 강도래, 옆새우, 날도래, 하루살이 애벌레, 꼬리치레 도롱뇽, 청개구리와 버들치가 산다. 국수나무가 곱게 노란색으로 물들어 골바람에 하늘거린다. 국수나무는 줄기 속이 국수가락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며, 산길과 숲의 경계 부분에서 자라기 때문에 길을 잃었을 때 국수나무가 보이면 근처에 길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숲의 경계에 국수나무가 있는 게 참 신기하다. 이게자연의 섭리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계곡의 바위에는 이끼가 파랗게 자란다. 이끼는 바다에서 살던 녹색식물이었는데, 진화를 하여 육지로 올라온 최초의 바다식물이다.이끼는 다른 식물이 살 수 있도록환경을 만들어 주고, 새들에게는 폭신폭신한 둥지를 만들 수 있는 이불을 제공해주기도 한다.
계곡을 가로지르는아치형 구름다리를 건너면물 흐르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사패산과 오봉과 송추폭포로 갈라지는 이정표가 보인다.송추샘이분수처럼 물을 내뿜는다. 앞의둥그런쉼터엔 벤치와 원목 나무 의자가 있어 쉬어가기에 좋다. 산행을 나온 아낙네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점심을 먹으면서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이 정겹다.
(가을 송추폭포)
송추샘에서 계곡을 따라 나무 데크 아치교를 건너면 물 떨어지는 소리가 제법 크게 들린다. 송추폭포다. 거대한 반석을 타고 흘러내리는 물줄기가바위를 휘감고 돌아물보라를 일으키며 백 척이 넘는 담으로 떨어진다. 폭포에서 오름길은 낙엽이 지척이고 돌길이다.
산행은 송추폭포에서 마무리하고 송추샘을 거쳐 송추원 마을로 하산한다. 송추원 마을 밤나무집에 들러 엄나무백숙에 막걸리 한잔을 하고, 아름다운 추억을가슴에품고서마을 길을 걸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