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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다올 Nov 07. 2024

숨은벽능선 운해와 일몰


들머리와 능선 풍경

비가 온 뒤라 기온은 뚝 떨어지고 아침부터 쌀쌀한 바람이 불어온다. 여벌 옷과 보온 장비를 단단히 챙기고, 걱정 반 기대 반으로 숨은벽능선 산행 길에 나섰다.

곧 운행을 중단한다는 송추행 704번 버스를 타고 북한산성 입구를 지나 밤골 입구 효자 2통 버스 정류장에서 내렸다. 굿당 국사당 안내 간판이 보이고 임도가 나온다. 양쪽으로 울타리가 쳐져 있고, 울타리를 벗어나자 아름드리 밤나무가 지천이다. 밤골계곡이다.      


   꽹과리 소리가 들린다. 굿이 시작된 모양이다. 국사당 입구에 이르니 갓을 쓴 천하대장군과 이빨 빠진 할미 지하여장군이 반긴다. 할미 앞에 꼬마 지하여장군이 손님을 맞이한다.

호기심에 목을 빼고 담장 너머로 쳐다보니 무당이 오색 저고리와 치마에 하얀 고깔을 쓰고 춤을 추면서 접신을 하고 있다. 박수는 신나게 꽹과리를 두드린다. 무당이 작두를 타는 게 아니라 오색 천을 탄다. 이런 광경은 처음이라 넋을 잃고 한참 구경하다가 밤골공원지킴터 원목 의자에서 채비를 한다.     


   지킴터 개수대를 통과하여 교현리 방향 북한산 둘레길로 간다. 얕은 고갯마루 이정표에는 백운대 4.1 킬로미터, 사기막골 입구 0.7 킬로미터라고 안내한다.

백운대 방향으로 능선길을 타고 오르면 흙길과 박석을 깐 길이 번갈아 나오고, 소나무가 울창한 오솔길이 펼쳐진다. 노랗게 물든 참나무 잎사귀와 잔가지 사이로 언뜻언뜻 상장능선이 보이고, 오르막 낮은 봉우리에 통나무 쉼터도 나온다.

숨은벽 능선 아래 밤골 계곡에는 숨은 폭포가 두 개 있다. 총각 폭포와 각시 폭포다. 계류의 수량이 그리 풍부하진 않은 것 같았다. 너덜길이라 애용하진 않는다.   


   왼쪽 아래는 조선시대 도자기를 굽던 사기막골이다. 청담동(淸潭洞) 사기막골 계곡에는 국립공원공단에서 운영하는 야영장이 들어섰다. 야영장은 탄소 중립 무공해 캠프장이다. 캠프 종류도 다양하다. 냉난방과 냉장고와 주방과 실내 화장실이 있는 카라반, 냉난방 시설과 냉장고만 있는 솔막, 바닥 보일러만 되는 산막, 그리고 맨땅에 텐트를 치고 야영을 즐기는 야영지가 있다. 

능선 내리막 안부 삼거리에 도착했다. 영장봉이 모습을 드러내고 숨은벽은 숨었다. 평탄한 오솔길을 지나자 오르막이 나온다. 마당바위까지 테크 계단과 철주 가드 레일이 이어진다.

(마당바위에서 바라본 도봉산 운해)


운무에 휩싸인 산봉우리

마당바위를 머리 위로 두고 헉헉대며 가다 쉬기를 반복하면서 오른다. 거대한 암벽 벼랑에 설치된 데크 계단이 나온다. 코앞에 영장봉이 문지기처럼 길을 막아서고, 상장 능선은 병풍처럼 북한산을 에워싼다.

구름에 휩싸인 도봉산 봉우리들이 숨바꼭질한다. 운무가 오봉을 뒤덮고 다섯 봉우리는 금세 시야에서 사라진다. 데크 계단참에서 도봉산을 바라보니 구름이 걷힌 곳엔 파란 하늘이 열리고 영화의 영상처럼 준봉들이 모습을 살짝 드러낸다. 신비롭다. 마당바위 마지막 깔딱 계단을 딛고 오른다.     


   길은 더욱 가팔라지고 숨을 헐떡거리며 벼랑길을 올라 마당바위에 도착했다. 사방이 뻥 뚫려 있다.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바람이 세게 불어와 옷깃을 여민다.

뒤편으로 가서 해골바위부터 본다. 해골에 제법 물이 고였다. 빨간 등산복을 입은 아낙이 해골바위에 서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을 찍는가 보다.

건너편에 보이는 노고산 일영산맥이 북한산을 호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도 골바람은 사납다. 모자 끈을 쪼이고 주변을 둘러보니 경이다. 숨을 헐떡거리며 올라온 보람이 있다. 이 맛에 산꾼은 산에 오른다.


   마당바위에서 오봉 능선과 사패 능선도 카메라 앵글을 당겨서 잡아본다. 운무에 갇혀 고개만 빼꼼히 내민 도봉산 오봉과 신선대, 자운봉, 만장봉, 선인봉이 김 서린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그림처럼 흐릿하게 그 자태를 드러낸다.

커피 한잔을 마시면서 찬찬히 풍경을 감상한다.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린다. 고양이가 밥 달라고 보챈다. 김밥을 주니 옆에 와서 다리에 비벼댄다.

숨은벽 고래바위 등에는 산꾼들이 여럿이 앉아 여가를 보내고 있고, 중천에 떤 해는 백운대와 인수봉 동쪽 사면에 그림자를 드리웠다.     


   인수봉 뒤태인 설교벽엔 암벽을 타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설교벽은 북향이라 눈이 제일 먼저 쌓이고 가장 늦게 녹아서 눈 인 성 밖의 성벽이라고 한다. 인수봉을 지긋이 바라보고 있으려니 갑자기 꼭대기에서 달려 내려오듯 밧줄을 타고 백운대로 하강하는 바윗꾼이 눈에 들어온다.

백운대 깔딱 고개엔 사람 단풍이 이채롭다. 백운대에서 밤골로 줄줄이 하산하는 길인가 보다. 깔딱 고개 계곡의 단풍잎은 물들다 말라비틀어지고 울긋불긋한 등산복을 입은 등산객 행렬이 줄을 이었다.

(숨은벽 마당바위 일몰)


숨은벽 마당바위 일몰

전설의 백운대 파랑새 능선을 이 잡듯 샅샅이 뒤지며 바위를 훔쳐보았다. 장군봉과 엄지 바위, 파랑새 바위, 이름이 생각나는 대로 위치를 대충 어림짐작해 본다.

험준한 암릉 지대와 천애 낭떠러지 아래로 그래도 얌전한 봉우리가 보인다. 원효봉이다. 원효대에서 산꾼이 사진을 찍고 있는지 한동안 서성이다 내려간다.

마당바위에 도착하자마자 등산객들은 경쟁이나 하듯 울긋불긋 단풍으로 뒤덮인 오봉을 배경으로 사진부터 찍는다. 한차례 등산객이 몰려왔다 내려가고 나면 마당바위는 한산해진다.

오늘의 일몰은 오후 5시 30분이다. 지금 시각은 오후 5시, 아직 시간이 남았다.   

  

   기다리다가 눈앞의 영장봉을 흘끗 쳐다보니, 흰 도포를 입은 신선이 가부좌를 틀고 삼매경에 접어든 것 같은 환영이 보였다. 딴 곳을 둘러보고 영장봉을 바라보니 신선은 온데간데없고, 등산객이 신선이 머물던 자리를 차지했다. 그곳이 명당인가 보다.

해가 빠르게 내려간다. 카메라를 고정하고 앵글을 맞추는데 20대 아가씨가 사진을 부탁한다. 일몰 사진 실루엣이 멋지다. “해가 지면 곧 어두워지겠지요?”하고 묻고선 그 아가씨는 하산을 한다.

중년의 여인이 일몰 사진을 부탁한다. 뒤태부터 옆, 앞모습까지 여러 포즈를 취하면서 열 번 넘게 핸드폰 셔터를 누른 것 같았다. 그녀는 핸드폰 사진을 보고 만족한 표정이다.    

 

   예전에도 마당바위에서 미국 달라스에 산다는 중년 부부를 만난 적이 있다. 한국에 들렀다가 옛 기억을 더듬어 숨은벽 산행을 왔다고 했다. 출국하면 미국 시민권을 신청하고 한국 국적도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말까지 덧붙이면서. 그때 그 중년 부부는 안테나봉을 넘어 밤골계곡으로 하산한다면서 내려갔다.

그때도 나는 마당바위에 앉아 오봉 한 번, 인수봉과 숨은벽 한 번, 그리고 하늘을 보고 드러누웠다. 운무가 걷히기 시작하고 흰 구름 한 조각이 운해를 가로질러 푸른 하늘로 흘러간다. 내 마음도 구름처럼 흐른다.   

  

   나도 일몰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먹구름 우에 얹힌 해가 마지막 빛을 발산한다. 사위어가는 태양을 바라보며 뒤태 실루엣도 남기고, 스무 장이 넘는 일몰 사진을 촬영했다.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헤드 랜턴을 켜고 하산을 시작했다.

20여 분 내려가다 중년 아낙을 다시 만났다. 혼자 숨은벽 일몰 사진을 찍으러 왔는데 길눈이 어두워 내 뒤를 따라 내려온다.

세상사는 얘기를 나누는 도중에 남편은 바다 낚시꾼이란다. 남편은 바다로 가고 자기는 산행을 시작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아 어디 단풍이 좋은지도 모른다길래 부왕동암문 환희령으로 가보라고 했다.                   

(구름에 휩싸인 설교벽, 숨은벽, 파랑새능선)


   마침 배도 출출하던 차에 밤골 날머리 건너편에 있는 임진강 매운탕 집으로 가서, 오랜만에 얼큰한 매운탕에 소주 한잔하러 간다. 어부가 임진강 두지리에서 고기를 잡아 운영하는 식당이란다. 매운탕에 소주를 곁들이면서 식도락을 즐긴다. 내년 봄에 청담동 계곡 처녀치마가 치마를 활짝 펼칠 때 다시 와봐야겠다.



[참고 자료]

사기막골 안내문, 밤골 안내문     


[산행 안내]

<산행코스> 밤골공원지킴터-북한산둘레길 이정표-숨은벽능선-안부 삼거리-영장봉 데크 계단-마당바위-안테나봉-숨은벽-(하산: 능선길 회귀)-사기막공원지킴터

<산행거리> 8km, <소요시간> 5시간, <난이도> 중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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