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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다올 Oct 24. 2024

다섯 형제와 오봉 이야기


들머리 가을 풍경

소나무와 가래나무가 무성했던 , 울창한 숲과 사계절 내내 맑은 시냇물이 흐르는 송추의 가을 속으로 들어간다. 가슴이 설렌다. 송추행 704번 버스를 타고 솔고개를 지나 송추 가마골 푸른 아파트 정류장에 도착했다.

개천을 따라 도봉산과 사패산 실루엣을 바라보며 송추남능선 산행을 시작한다. 맑은 물이 흐르는 개천에는 물고기가 떼를 지어 먹이를 찾느라 분주하고, 물속에 비친 산봉우리와 능선은 물결이 일렁일 때마다 피카소의 추상화처럼 삐뚤삐뚤한 몽타주로 변신을 반복다. 하늘과 산이 물속에 잠겼다. 얼룩 진 그림, 빛 바랜 그림이 안경 너머로 거울처럼 비친다.

송추원 마을 카페의 야외 테라스 멋진 야외무대도 하늘 물빛으로 파랗게 물들었다.


   오봉탐방지원센터를 지나자 호젓한 참나무 숲길이 이어진다. 길은 낙엽이 쌓여 폭신폭신하다. 황소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발바닥과 무릎으로 전해지는 부드럽고 편안한 느낌이 너무 좋다.

이정표는 여성봉과 오봉, 울대습지를 가리킨다. 자연생태계가 살아 숨 쉬는 울대습지로 들어섰다. 습지 가장자리에 나무 데크 길이 둘러져 있어 가까이에서 자연의 식생을 관찰하기에도 좋다.

전망대에 올라가 습지의 보물창고인 (물웅덩이)을 내려다본다. 둠벙은 갈수기 때 농업용수를 대주기도 하고 물속 생물의 서식처가 되기도 하며, 새들과 동물의 쉼터로서 생태환경의 연결고리 역할을 하기도 한다.


  울대습지에는 고마리와 창포가 자생하고 있다. 습기가 많은 곳이나 도랑에 자라는 고마리는 더러운 물을 깨끗하게 정화시켜 주어 "고마워"라는 뜻으로 고마리(고마니)라고 불리며, 창포는 우리 조상들이 단옷날 그 뿌리와 줄기를 삶은 물로 머리를 감던 풍속이 전해오는 수생 식물이다.

습지를 나와 이정표가 가리키는 송추남능선의 한적한 오솔길로 발걸음을 옮긴다. 내딛는 걸음마다 황토 알갱이가 완충역할을 하면서 마음까지 편안해진다.     


여성봉과 오봉 가는 길

고도가 높아지고 돌계단이 번갈아 나온다. 자락길은 산등성이 고갯마루로 이어지고, 북쪽 사패산 봉우리가 여성봉을 훔쳐보고 있다. 사패산(賜牌山) 지명의 유래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다.

조선 선조 임금의 딸인 정휘 옹주가 유정량(柳廷亮)에게 시집갈 때 선조가 딸의 혼수품으로 하사한 산이라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과 산 아래에 마패를 제작하는 곳이 있어 이름이 유래되었다는 이야기가 사람들 입을 통해 전해 내려오고 있다. 그럴듯한 이야기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참나무가 우거진 능선을 따라 오른다. 고개를 들어보니 수풀 사이로 여성봉이 수줍게 얼굴을 내민다.

산자락의 계곡으로 내려섰다 다시 능선을 타고 산모퉁이를 돌아서니, 저 멀리 인수봉과 백운대와 만경대가 빛바랜 물감으로 그린 그림처럼 아늑하게 보인다. 소나무가 점점 눈에 많이 띄고, 암릉지대 철주 쇠밧줄을 잡고 숨을 몰아쉬며 오른다. 여성봉은 호락호락 길을 허락하지 않는다.

여성봉 암릉 둘레에 설치되어 있는 나무 데크를 따라 꼭대기에 올랐다. 등산객들이 모여 앉아 커피를 마시면서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는가 하면, 오봉과 북한산 실루엣을 배경으로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는 이도 있다.

(여성봉의 하늘)


   멋진 풍경을 카메라에 담고 나서 배낭을 내려놓고 여성봉 암릉에 앉아 오봉과 북한산바라보며 뜨거운 커피 한 잔을 마신다. 커피가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는 느낌이 참 좋다.

여성봉은 생김새뿐 아니라 바위 틈새에 수십 년 된 소나무 한 그루가 자라고 있어 새삼 생명의 신비로움과 자연의 경이로움을 느끼게 한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북한산의 전경은 진경산수화를 보는 듯 걸작이다.

오봉이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보이고, 북쪽 능선을 따라 도봉산의 주봉과 자운봉을 비롯하여 만장봉과 선인봉과 사패산이, 남쪽으로는 상장능선과 숨은벽과 영장봉, 인수봉과 백운대와 만경대가 여덟 폭 동양화 병풍처럼 내게로 다가온다.


   여성봉에서 오봉으로 가는 길은 소나무 오솔길이다. 능선의 북사면은 참나무가, 남사면에는 소나무가 군락을 지어 자라고 있다. 북사면은 흙이고 남사면은 바위다. 참나무와 소나무의 식생 특성이 여기서 잘 대비되는 것 같다.

능선 전망대에서 한층 가까이 보이는 오봉을 조망하고, 북서면 산비탈을 따라 낙엽이 수북이 쌓인 오솔길을 걸어간다. 단풍나무 이파리가 한쪽 가지에선 노랗게, 다른 한쪽 가지에서는 붉게 물들어간다. 암릉지대에 올라 호흡을 가다듬고, 다시 오름길을 따라 바위 꼭대기에 올라서니 오봉이 발아래에서 조아린다. 거대한 다섯 암봉이 나란히 우뚝 솟아 있다.

         

   정상 암릉에 소나무 한 그루가 자라고 있는데, 페르시안 고양이가 소나무 그늘 아래에서 낮잠을 자고 있다. 어디선가 고양이 울음소리가 나길래 바라보니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보인다. 등산객들이 먹을 것을 주는지 야생에서 살아가는 고양이들도 토실토실하게 살이 올랐다.     

오봉 꼭대기에서 바라보는 북한산과 도봉산 갤러리에 전시된 수묵화 같다. 남쪽으로는 상장능선과 영봉능선, 백운대, 숨은, 인수봉, 그리고 영장봉이, 동쪽으로는 사패능선과 포대능선, 신선대, 선인봉, 만장봉, 주봉이 군졸을 호령하는 장군처럼 늠름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아름답고 신비롭기만 하다.   


처녀 총각의 애절한 사랑

오봉 정상에서 여성봉을 바라본다. 오봉과 여성봉에 대해 입으로 전해오는 그럴듯한 이야기가 있어 여기 소개한다.

하나는 다섯 형제와 건너 마을 처녀의 연정에 얽힌 이야기다. 옛날 도봉산 기슭의 한 마을에 다섯 형제가 살고 있었는데, 형제들 모두 건너 마을의 한 처녀를 사모했다. 처녀의 아버지는 도봉산 꼭대기에 가장 큰 바위를 올려놓는 자에게 자기 딸을 주겠다고 약속을 하였다.  

다섯 형제는 북한산 상장능선에서 바위를 들어 도봉산을 향해 힘껏 던졌는데, 넷째만 힘에 부쳐 산꼭대기에 바위를 올려놓지 못했다. 처녀의 아버지는 사윗감을 결정하지 못하고 혼사를 미루어오다가 세월이 덧없이 흘러 그 처녀가 병들어 죽고 다섯 형제도 죽었는데, 죽은 처녀는 여성봉으로, 형제들은 오봉으로 환생하여 계곡을 사이에 두고 서로 바라보면서 애틋하게 그리워하고 있다고 한다.     

        

   또 다른 이야기는 다섯 형제와 고을 원님의 외동딸에 얽힌 사연이다. 옛날 도봉산 아래 부잣집에 힘이 장사인 다섯 형제가 살고 있었는데, 새로 부임한 원님의 외동딸에게 반해 서로 장가를 들고 싶어 했다.

난처한 원님은 산꼭대기에 가장 커다란 바위를 올려놓는 사람에게 자기 딸을 주겠다고 약속했고, 다섯 형제는 커다란 바위를 하나씩 산꼭대기에 올려놓았으나 넷째는 힘에 부쳐 바위를 꼭대기에 올려놓지 못했다.     

네 사람이 바위를 봉우리에 올려놓았으니, 고을 원님은 사윗감을 고르지 못하고 망설이다가 그만 딸의 혼기를 놓치고 말았다. 원님의 딸은 혼례도 올리지 못하고 시름시름 않다가 죽었다. 이를 불쌍히 여긴 옥황상제가 외동딸을 여성봉으로 환생시켜 주었고, 다섯 형제도 오봉으로 환생하여 서로 애타게 바라보고 있다고 한다.


   오봉 끝자락에는 부처를 닮은 관음암이 있는데, 계곡 건너편 여성봉을 차마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고 돌아 앉아 돌부처가 되었다는 이야기도 전해 내려온다.     

오봉의 헬기 포트에서 팻말이 가리키는 오봉샘으로 하산한다. 이정표는 오봉샘까지 0.6 킬로미터 내리막길이다. 하산길오봉을 지척에서 볼 수 있는 암릉 전망대가 나온다.

이곳에서 보는 오봉은 위대한 걸작품 그 자체이다. 인간의 손으로는 도저히 빗을 수 없는 조각품이다. 이토록 웅장하고 아름다 예술품을 에 두고 사람들은 자가용을 몰고 기차를 타고 동으로 남으로 먼 길을 떠난다.     

(하산길에서 바라본 오봉)


   오늘도 나는 도시의 노마드(Nomad)가 되어 이 골짜기 저 능선을 오르내리며 산속을 헤매어 다녔다.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그 나라와 도시를 소개하는 책자의 표지가 될 수도 있는 이 멋진 봉우리를 만나보고. 

오봉은 나란히 키 재기를 하고 있다. 모두 갓을 쓰고 행차 준비를 마쳤는데, 넷째만 갓을 쓰지 못한 채 엉거주춤 앉아 있는 것이 영 안쓰러워 보인다. 오봉의 아름다운 사진을 친구에게 카톡으로 보낸다.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조각 수도 없는 웅장하고 늘씬한 각선미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전망대에서 능선을  내려가면 삼거리에 오봉샘 팻말이 나무에 걸려있다. 능선은 생태복원을 위하여 휴식년제를 취하고 있어 더 이상 갈 수가 없다.     


   오봉샘 팻말이 가리키는 산비탈을 따라 이삼백여 미터 내려가니 계곡에 오봉샘이 보인다. 완만한 내리막 흙길이지만 낙엽이 수북이 쌓여 조심스럽게 내려간다. 낙엽송이 하늘을 찌를 듯 곧추서 있고, 산등성이를 넘고 모퉁이를 돌아 평탄한 능선을 지나서 고갯마루 오봉 삼거리에 도착했다.      

우이암으로 가는 길에 나무 데크 전망대에 올라 다시  오봉을 눈에 담는다. 장군의 투구를 쓰고 산하를 호령하는 우이암과 다섯 봉우리 오봉을 조망하고 우이남능선으로 하산한다. 우이암에 대한 스토리텔링은 보문능선 편에서 다루기로 하고 서둘러 우이선 경전철에 몸을 실는다.     



[참고 자료]

산림청 홈페이지     


[산행 안내]

<산행코스> 송추원 마을-오봉탐방지원센터-송추남능선-여성봉-오봉-오봉샘-오봉삼거리-우이남능선-우이동

<산행거리> 8km, <소요시간> 4시간, <난이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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