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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석규 Dec 27. 2018

기다림 속에 숨어 있는 완전한 공허함

기다림 속에 숨어 있는 완전한 공허함


 고독함과 공허함이라는 주제의 책은 자주 접하게 된다. 글을 쓴다는 것은 몇 가지 주제어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기다림은 우리에게 고독함을 안겨주는 도구이다. 

이게 무슨 말이냐고요? 교수생활도 벌서 5년이 지났다. 학생들을 가르치고 이런저런 일도 참 많은 것 같다. 조심해야 할 말도 있지만 한 학기가 끝날쯤이면 늘 찾아오는 성적 이의신청기간이다. 요즈음은 온라인으로 이의신청을 받고 바로 답변을 주도록 되어 있다 보니 학생들 입장에서는 쉽게 교수에게 이의를 제기한다.

편리함 뒤편에는 늘 공허함이 있듯이 학생을 지도하는 일은 늘 보람과 공허함이 공존한다.

성적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는 학생도 있지만 성적에 대한 아쉬움을 내게 말하고 싶은 학생이 있다. 또 한 학기 많은 배움을 통해 이의신청을 하는 학생도 종종 있긴 하지만 대부분은 성적에 대한 자세한 평가결과를 듣고 싶어 한다. 

그러다 보니 학생과 교수 간에 얼굴을 맞대고 말하지 않다 보니 쉽게 서로가 생각을 글로 뱉어 낸다. 동료 교수들은 수업을 진행하는 것보다 성적처리 과정이 힘들다고 한다. 힘들다는 것은 곧 학생과 교수 간의 느껴지는 자연스러운 감정이 아닐 수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늘 이런 상황만 있지는 않다.

어느 학생의 과제를 채점하면서 부모님이 신장으로 수술을 받아야 하는 상황 속에서 자신의 장기를 이식하는 여학생의 이야기를 페이스북에 깊은 감동의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과제를 평가하면서 가슴이 아프기도 하지만 학생의 행동과 그 순간에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을까 생각하면서도 꼭 안아 주고 싶은 학생이었다.

고독은 자신의 마음속에 들려오는 신호를 들을 수 있는 의미를 가진다. 고독할 때 사람은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성찰하게 된다.  

  늘 학생과 교수 간에 자연스러운 감정의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늘 변치 않았으면 좋겠다

 이렇게 한 학기가 이렇게 마무리 되면 마음속에 있는 공허함은 어디로 갔나 다음 학기를 준비하는 새로운 삶을 받아들이게 된다. 새로운 만남이 오고 새로운 만남은 또다시 혹독한 겨울을 지나 새로운 봄이 찾아오듯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봄의 향기를 느낀다. 물론 학생들도 마찬가지이다. 한 학기를 마치고 졸업을 해야 하는 4학년의 경우는 더 이상 과제와 시험에 얽매이지 않고 사회로 나갈 수 있다는 설렘이 가득 차게 된다. 학생들을 바라보면 졸업 후 녹녹지 않은 사회 생활을 잘할 수 있을까? 괜찮은 일자리에 들어가 일을 잘하고 있나? 걱정이 된다. 워낙 IMF시대 이후 다시 찾아오는 불확실성으로 인해 들어가 곳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희망을 갖고 졸업하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정작 사회에 나가보면 컴컴한 길을 걷고 있는 것처럼 막막하기만 하기 때문이다. 긍정적 불확실성이란 어둡고 고독한 낯선 곳으로 모험을 떠나는 것이다. 실패 아니면 성공이라는 이분법적 사고가 아니라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떠나는 것이다. 모험을 하려면 때로는 거센 비바람도 맞아야 하고 차디찬 겨울바람을 지나쳐야 하는 과정이다. 

인생의 본질적 변화를 위해서는 기다림 속에서 외롭고, 공허한 감정에 마주 앉아 봐야 한다.

 스피노자의 에티카에서는 인간이 본질적 감정을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있는데 기다림 속에 외롭고, 공허하다고 해서 이러한 감정의 상태가 불완전성이라고 말할 수 없다고 말한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갖게 되는 감정이 바로 기쁨과 슬픔 아니던가?  희망을 갖고 한 학기를 시작한 학생은 많은 과제와 시험으로 한 학기를 마무리할 때쯤이면 평가를 받아야 하고 교수는 평가가로 돌변한다. 낮은 성적을 받았다고 이전에 있었던 완전한 감정이 상실되는 것은 아니다. 교수가 학생으로부터 받은 감정이 이전에 있었던 완전한 감정이 박탈당하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이다. 

다시 말하면 수많은 기다림 속에 느끼는 감정인 기쁨은 외부의 영향으로 인해 우리 신체의 활동능력이 증가될 때 신체능력 증가분을 말하고, ‘정신이 더 큰 완전성“으로 이행을 의미한다. 또한 고독함과 공허함은 개인이 갖게 되는 슬픈 감정의 하나인데, 마찬가지로 외부의 영향으로 인해 우리 신체 활동 능력이 감소할 때 신체능력의 감소분에 해당하는 감정이 바로 슬픔이다. 

즉, 스피노자는 현실 속에 인간이 느끼는 모든 감정(기쁨, 슬픔)은 작은 감정에서 더 큰 감정으로 이행하는 과정으로 보았다. 실재성(Reality)은 곧 완전성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소소한 경험과 사건 속에서 무언인가 새로운 변화를 꿈꾸며 살아간다. 마음먹은 대로 되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고 오랜 준비하고 노력했던 일이 잘 풀리지 않는 경우가 많다. 잘 풀리지 않은 사건으로 인해 우리는 때로 여러 감정에 얽혀 살아가게 된다. 더 중요한 것은 그런 사건으로 인해 자신의 감정에 깊이 있는 성찰을 통한 삶의 의미 있게 장식해야 한다.

자신의 현재 감정과 생각을 늘 성찰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인생의 고독함 감정을 단순히 불안정한 감정으로만 받아들이게 된다. 인생의 변화는 인생의 로또로 꿈꾸는 그 사건으로부터 시작되지 않는다. 사건을 어떤 시각으로 인식하는지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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