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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석규 Jan 24. 2019

고용은 일기예보가 아니다

모 공공기관 연구를 9개월 동안 수행하고 있다. 연구라는 것이 뭔가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도 있겠지만 고용 관련 문제는 현실을 정확히 관찰해야 한다.

특히 직업을 갖고자 하는 청년들 입장에서는 서툴게 선택한 직업이 후회로 돌아오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민간 및 공공에서 제공되는 직업정보가 충분한 정서적 문제까지 다루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진로상담받고 자신의 진로를 완벽하게 확신할 수 없다. 확신은 실전에서 얻어지는 것이니까. 왜 청년들이 고용 리턴을 하게 되는가? 

특히 해외 나가 있는 전문가들에게 의견을 들어보니 결국 삶의 의미와 즐거움이 큰 문제란다. 일을 하면서 갖게 되는 여유와 놀이, 즐거움이 없는 일자리는 유망한 직업이라도 소용없는 일이다. 처음에는 남부럽지 않은 체면으로 어깨가 으슥하지만 삶이라는 게 즐거움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사람들과 어울리는 법, 퇴근 후 맥주 한잔의 여유, 새로 나온 영화를 보러 가는 기분 말이다.

미래 고용 문제에 대한 내 생각은 그동안 학생들을 지도하고 연구를 바탕으로  한 내 소견이다. 오해가 없기를 바란다.

첫째, 미래 직업이란 그 직업을 선택했을 때 자신의 미래에서 얻어질 당장의 이익을 생각하지 말라는 것이다. 왜냐면 미래 고용가능성은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 자신이 감내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번 달 월급이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적을 수 있다. 일이 생각하는 것보다 안 풀릴 수 있다는 점이다.

급여가 안정적인 직장을 원하는 것은 한국 청년들의 가치관이다. 매달 꼬박꼬박 월급이 들어오는 안정적인 직장이다. 반면에 짧게 많이 벌어 나이 들면 편하게 내 사업하겠다는 가치관을 갖고 있는 청년들을 자주 본다. 결국 중요한 것은 잘 먹고 잘 살기 위한 것 아닐까? 사회적 일자리에 가겠는가 라는 질문에 선 듯 말을 하지 못한다. 월급은 적지만 꾸준히 일할수 있지만 미래의 소득보장을 담보할 수 없다는 것이 문제이다. 공공기관에서 고용정책을 담당하는 책임자들도 그렇게 생각한다. 쓸데없는 직업이라고 생각하여 아예 생각조차 접어둔다. 우리 사회에서 사회적 기여를 통해 일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최근에 사회적 기업 연구를 시작하면서 대학원 과정에 개설을 준비하고 있다. 아쉬운 것은 많은 젊은 친구들의 폐기와 열정을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앞으로 청년들의 열정을 다해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모습을 자주 봤으면 하는 바람이다.

둘째, 정서적 문제까지 꼼꼼히 확인해야 한다. 성격적 장점과 단점이 유망한 직업과 자신이 맞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때로는 외롭고, 혼자 해결해야 할 환경에 노출될 수 있다는 점이다. 소소한 즐거움을 잠시 내려놓으라면 하겠는가? 그 일에 미쳐야 고용문제는 개인의 것이 된다.

학생들이 진로상담에서 나누는 주제는 바로 적성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은데  무엇이 맞는지 모르겠거나 전혀 모른다고 한다. 좋은 일은 언제 그랬는지 모르게 찰나같이 지루해진다. 재미는 늘 새롭고 짧아야 쾌감을 준다. 결국 끊임없이 자기 이해가 필요하다. 그때그때마다 자신을 성찰하고 재미와 즐거움을 가질 수 있는 일에 도전을 놓지 말라는 것이다. 이런 상항은 미래 직업 선택에서 우선적이어야 하지만 그럴 겨를이 없다. 온갖 유망 직업이 쏟아지다 보니 당장에 성공 가능성에 시선이 가기 때문이다. 고용정책도 이를 반영하여야 한다.

셋째, 미래 고용 가능한 직업은 가상현실이 아니다.

당신 눈 앞에 보이는 것만이 모든 세계가 아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미래를 공상으로 직업을 바라는 문제는 더 커진다. 내가 어릴 쩍 시절은 핸드폰이 귀한 시절이 있었다. 소통하는 인터넷 환경이 이렇게 빠르게 바뀔 거라 누가  생각했던가?

사람은 생각하는 범위에 제한적이다. 다른 사람이 평균적으로 생각하는 범위에서 생각하고 행동한다. 몽상가가 되라는 말은 참 무서운 말이다. 직업의 세계는 날카롭게 분석하여 얻어진 것이어야 하며 현실적이며 실천 가능한 것이어야 한다. 미래는 이럴 것이야라는 상상 속에 나오는 것이 아니다. 

미래는 기상 일보처럼 내일 날씨를 알려주지 않는다. 미래 고용 가능한 직업은 1년 뒤의 날씨를 예측해야 하는 불확실한 미래의 모습이다. 가다 보면  예측하지 못한 날씨에 비도 오고 바람도 불 것이다. 그것이 예측 불가능한 예보이다. 그런데 비가 그치면 무지개는 볼 수 있다는 사실. 넷째, 청년들을 위한 미래 고용 문제는 개인의 자발성, 의지, 동기, 자격 등을 고려하여 수준별  지원이 필요하다. 고학력 청년들의 불만은 자신의 인적자원에 비해 쓸데없는 교육에 잡혀 오히려 교육이 방해가 되는 친구들이 있고.. 한편에는 교육조차 턱 없이 부족한 수준을 보유하거나 미래 접근 동기가 없이 낮은 자존감과 능력을 보유한 청년들이 있다. 더 큰 문제는 고학력과 실력을 보유한 청년들이 갈 곳이 마 탕치 않다는 사실이다. 미래 가능성 있는 일자리는 발표되지만 정작 고용구조는 더디게 따라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잠시 머물러 있을 일자리에 인적자원 수준이 높은 청년들이 머물게 되고 이런 신호기 재가 보호와 지원이 필요한 낮은 자존감을 갖고 있는 청년들에게는 실업이라는 직격탄을 맞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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