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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석규 Jan 24. 2022

품격있는 일이란

본능으로써의 일

그리스인들은 일은 품위없고 하찮은 것으로 여겼다.

단지 일을 신의 수동적, 영원히 변치 않는 비창조적으로 보았다.

그리스인들은 일은 해야만 하는 동물적 본능만을 강조해왔고 존경받을 만한 가치가 없는 것으로 취급해 왔다.

그러나, 15세기 소수의 르네상스 철학자들은 오히려 일은 사람에게는 품격이 있는 세상을 창조하는 예술가로 표현할 정도로 가치 있는 것으로 보기 시작했다.

그래서 일하는 인간은 동물과 비교되며, 일은 인간에게 있어 필수적 활동이며 잠재력으로 보았다.이전에는 일은 미를 창조하는 사람이 아닌 수동적, 본능적인 것으로 보았다면 르네상스 시대에는 일은 무제한적이며 창조적, 품위있는 존재로 보았다.

르네상스 시대 카를 마르크스는 '인간은 노동을 통해 세상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볼수 있다'라고 하였다. 이는 사적 소유로 인한 분열의 원인으로 보았으며 공공재하를 통해 공평한 경쟁과 착취가 중단되어 일을 통해 자신을 찾을수 있다고 예견하였다.


일의 중도(middle path)


기존의 양극단적 관점에서 일을 최악의 저주이고 필요악이라고 봤다면 마틴루터는 소명에 대해 종교개혁을 통해 교회와 역사, 일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바꾸어 놓았다. 루터는 구원받는 길을 잘못해석하고 있다고 하면서 비텐베르크 교회 문앞에 95개조 반박문을 못으로 박으면서 종교개혁의 시작과 16세기 일의 인식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농부, 수녀, 신학자, 노동자 모두가 신 앞에 서있으며 도덕적 정당성을 기초로 신성한 것으로 여겼다. 당시 이러한 개혁은 유럽에서 일에 대한 단어를 바꿔 놓았다고 한다. 즉. 루터는 어떤 일이든 가치 있으며 근로자나 시민, 주부, 배우자든 현재 있는 위치와 역할을 중요하게 생각했으며 소명(calling)은 곧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루터 이후 일은 기존에 주장되어 왔던 세속적인 직업을 떠나 수도원에 들어가는 것이 신성한 일이라는 이원적 역사를 바꿔 일은 곧 신이 우리가 있는 위치에서 함께 하며 이웃을 섬기라는 것으로 보아 소명이라고 일의 개념을 바꾸어 놨다.


왜곡된 시선의 일


종교개혁으로 고전적이며 이원론적 세계관이 변화하기 시작했지만 오늘날 위계적세계관은 여전히 남아 있다. 예들 들어 보자.

어떤 사람은 소명이라는 가치있는 일을 하면서 존경받고 사회적 이목을 받아 더 많은 돈과 권력, 명예를갖게 되어 삶이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게된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존경받을 만한 위치에 있지 않거나 권력과 명예도, 돈도 못버는 일을 하면서 사회적으로 힘든일이고 스스로 위축되게만 하기도 한다. '저 직업이 의사예요 ','판사예요'라고 하며 나름 자부심과 소명을 갖게 되고 자아실현을 이룬 사람으로 본다. 자존감이 높고 낮음은 직업의 위치와 열할에 따라 좌우되지 않는다. 일은  성공에 대한 일정한 규칙, 매력적 보상과 자존감을 갖게 한다. 이런 왜곡은 어디서 기인했을까?

더 많은 돈, 더 많은 명예, 더 많은 인정과 존경은 인간의 억제할 수 없는 본능이다. 이는 르네상스시대, 마르크스주의자들의 관점을 반영한 것들이다.

현대 사회의 지칠줄 모르는 출세 제일주의는 자아실현이 최우선이라고 강조한 사상의 결과들이다.

일은 자부심과 자존감을 갖게 하여 자아실현을 하게 해준다. 이는 당신을 인정받게 하고 존경받는 사회적 위치에 올려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일정한 목표에 도달하여 성공하면 자아실현을 약속받는 것처럼 신화적 생각을 갖고 있다.

그렇다면 더 많은 돈과 더 많은 권력, 더 많은 존경, 더 많은 명예를 이루기 위해 당신이 쏟아부은 삶의 에너지, 건강, 여가들을 얼마나 희생하였는가?

이제 우리는 질문해봐야 한다. 왜 일을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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