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산 이후
7주3일에 진료를 보고 그 주수에 맞는 아기 크기와 심장소리를 들었다.
내가 다니는 병원은 보통 8주차에 졸업시킨다고 하던데 진료실서 의사가 "다음주에 졸업합시다"란다.
6주부터 조금씩 시작되던 입덧은 7주차에 한층 심해져서 아침마다 울렁거리고 아무 것도 하기 싫은 의욕상실의 나날이 계속 됐다. 집앞에 나가서 살살 걷는 것 이외에는 티비보고 낮잠자기 무한반복.
임신대백과류의 책에서 12주 이전에 중요한 장기와 기관이 대부분 만들어지기 때문에 이 시기 유산이 80%를 차지한다고 했다. 산부인과 의사도 주위에 임신사실을 알리는 것은 12주 이후에 하라고 했다. 둘만의 비밀을 간직한 채로 남편은 아침마다 내 배에 주사를 놓고 쓰다듬으며 꼭 만나자고 말했다.
떨리는 맘으로 8주 초음파를 보러간 날 초음파상에서 아무런 움직임이 보이지 않았다. 의사도 당황했는지 몇번을 이리저리 돌려보더니 아무 말이 없었다.
"심장이 안뛰는 거 맞죠?" 라고 내가 먼저 물었다. 짧은 대답 "네"
아득해지는 정신을 붙잡고 진료실로 돌아와 다음 주 월요일 소파수술 하자는 얘기를 들었다.
당시엔 황망함으로 슬픔도 절망도 느낄 수가 없었다. 다음 날은 눈 뜨자마자 오열로 하루를 보냈다.
남편이 휴가를 내고 강릉으로 1박2일 여행을 갔다. 동해바다를 보며 '다음 생에는 꼭 건강하게 태어나기를 바랐다. 다시 내 자식으로 온다면 그땐 꼭 건강하게 만나자고 예쁘게 키워주겠다고 얘기했다.'
그렇게 심장이 멎어버린 애기를 4일간 더 품고있다 보내줬다.
몸조리를 위해 수술 전날 만들어둔 미역국, 전복죽, 잣죽을 꼬박 일주일간 먹고 짧은 장마 뒤 본격 더위가 시작되었어도 수면양말과 긴파자마를 입고 땀을 쏟으며 2주를 지냈다.
3주차엔 집 앞 미용실에서 머리도 자르고 아는 지인네 집으로 마실 나가기를 하면서 일상으로 복귀를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전히 임테기는 선명한 두줄...
정신은 이전으로 회복을 시도중이지만 몸은 여전히 임신상태로 인식한다는 거.
몸은 거짓말을 못하는 거였다.
아가야
다른 세상에선 아프지말고 건강하게 태어나라
다시 내게 올 땐 건강하고 예쁜 모습으로 돌아와라
엄마가 많이 미안하다
건강하고 예쁘게 키워줄께
꼭 엄마한테 다시 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