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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온 Mar 15. 2024

오늘 난 다른 공간에서 다시 태어난 날 생각해

2024년 3월, 프랑스 니스에서

환경이 변하면 평소의 시간과는 다른 시간을 경험한다. 경험하는 대상에게 시간은 굉장히 느리게 흐르며 매 순간 높은 밀도로 다가온다. 경험의 변화가 크면 클수록 이런 시간 축의 어그러짐도 커진다. 지금 난 그런 어그러진 시간 축 위를 걷고 있다. 생애 처음 마주한 프랑스를 경험하고 있다.


익숙한 공간에서의 시간은 안정적이다. 익숙한 것들로 채워진 익숙한 공간은 그제와 어제와 오늘을 같아 보이게 한다. 매 순간이 미묘하게 다름을 분명 알면서도 늘 똑같은 나날의 반복이 시작되고 끝나는 것처럼 느껴지게 한다. 어제도 그렇게 살았는데 오늘마저 그렇게 살았고 내일도 그렇게 살게 되겠지 하는 소소한 절규를 내면으로부터 끄집어낸다. 익숙한 공간이 주는 안정감을 사랑하고 그 일상에서 작지만 지속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것을 즐김에도, 나의 기반이 변하는 것을 상당히 귀찮아하고 비효율적이라 느끼면서도 가끔은, 아주 정말 가끔은 그런 내면의 소란에 사로잡혀 오늘 하루 열심히 산 나의 시간을 평가절하하곤 한다.


지금 난 등 떠밀려 이곳에 와있다. 이곳까지 오는 길에 단 한 톨의 자의도 담기지 않았다. 다른 공간을 경험하는 게 뭐 그리 대단할까, 다른 해보고 싶은 일들이 산더미 같은데 이런 쓸데없는 데 아까운 시간을 소비해야만 하나. 심지어 이곳까지의 한 발짝 한 발짝은 험난했고 또 피곤했다. 자도 자도 도달하지 못하는 종착지를 향한 무한한 기다림의 시간과 그 안에서 피어오르는 불만 또 그 안에서 새어 나오려 기회를 엿보는 불안감. 이 모든 것을 온전히 느끼며 또다시 기다림. 그렇게 무한한 기다림의 끝자락에 손을 얹고 찬찬히 미끄러지다 보니 결국 이곳에 당도했다. 다른 공간의 땅에 발 딛는다. 사람이 달라졌고 그들이 사는 집의 형태가 달라져 있다. 그러고 보니 시간마저 뒤집어져 있다. 이 거대한 변화를 향해 한 번의 탄성을 내지르고는 피로에 잠식되어 기절.



아침에 눈을 떠보니 사람들의 생김새만, 집의 형태만 달라진 게 아님을 깨닫는다. 난 한평생 이런 색으로 조합된 바깥세상을 본 적이 없다. 쨍하게 새파란 하늘과, 그 경계에 맞닿은 부드러운 에메랄드빛의 바다와, 그 너머로 포근하면서도 다채로운 색상으로 조합된 집들. 이런 구조, 이런 색감을 실제로 볼 수 있다는 게 이토록 감격스러울 수 있을까. 한국의 자연은 웅장하고 위압적이고 예리하며 청량한, 또는 새침한 느낌이 강하다면 이곳의 자연은 온화하고 포근하며 스르르 번져 나가는, 햇빛으로 모든 게 이뤄진 것만 같은 그런 느낌이다.



여기 사람들은 태양에 미쳐 있는 듯하다. 다들 볕만 쫓아다니는 듯하다. 해안가를 따라 뛰어다니는 사람들, 해가 쨍쨍한 테라스석만 골라 앉는 사람들, 해가 내리쬐는 데도 개의치 않고 해변에 누워있는 사람들. 이들 틈에 있으면 주근깨가 폭발하는 게 느껴지는 데도 나 또한 덩달아 해를 쫓아다니게 된다. 눈이 빛에 의해 멀어버릴 것만 같음에도 해안가 따라 늘어져 있는 의자에 괜히 앉아있게 되고 날이 차갑거나 혹은 타들어갈 것 같음에도 테라스 자리를 탐내 보기도 하며, 해 떠있는 동안 햇빛 뽕 뽑자고 계속 걸어 다니기도 한다. 해의 주기에 맞춰 밖을 향한 일정이 시작되고 끝을 맺게 된다. 내가 무엇을 해야 해서 나가는 게 아니다. 해가 떠있기에 해에 이끌려 나가는 것이다.



난 내가 정말 변하지 않을 사람이라 생각했다. 영영 그 무엇도 변하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라 내게서 너무나 익숙해지고 편해진 나머지 나의 주축이 되어버린 성격, 습관이 그러하단 말이다. 특히 시간과 사람을 다루는 나의 태도는 정말이지 변할 수가 없는, 모난 채로 딱딱하게 굳어져 영원할 것만 같은, 나라는 존재 그 자였다. 조금만 피곤해지면 이게 나에게 중요한가, 저게 나한테 도움이 되는가를 먼저 따져 묻고는 불필요하다 싶음 냉큼 버려버리고 만다. 산책은 하루 딱 1만 보, 그 이상은 시간 낭비라 자제한다. 맛있는 음식? 맛집 찾을 시간에 대충 채소 챙겨 먹음 그만인데 무엇하러 애먼 시간을 쏟으랴.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시간은 서로의 일상을 나누는 때로, 이 순간만 오면 자괴감을 느낀다. 어쩌다 이리되었나 싶지만 현대인에게 이게 뭐 흠이 되랴, 오히려 득이 아닌가라는 굳건한 믿음으로 나의 이러한 성격을 향한 타인의 모든 비난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여기 온 이후로는 능동적이어야만 하는 압박이 사라졌다. 느긋하게 펼쳐진 광활한 자연과 따사로운 햇살 앞에 자연의 시간을 그저 넋 놓고 쫓기만 하는 그런 수동적인 상태가 되었다. 느긋해진 마음과는 달리 내 모든 경험의 순간은 한껏 조밀해진 시간의 틈바구니에 끼워 맞춰져 있다. 모든 것들이 초 단위로 생생하게 느껴지고 초 단위로 모든 것들이 각인된다. 매 순간 의미 있게 살려 노력했던 한국에서의 일상은 많은 것을 제대로 음미하지도, 마음에 새기지도 못하게 했다. 그러나 이곳에 온 이후 모든 것을 놓아 버린 채 부유하듯 지내온 일상은 되려 하나하나를 의미로 채우고 잊히지 않을 기억으로 남았다. 이곳 니스에서 익숙하던 일상으로부터, 익숙하던 습관과 태도로부터 완전한 이방인이 된 나는 시간으로부터 자유를 얻었다. 이 자유의 토대 위에 전과는 다른 새로운 자아를 얻었다. 새로 태어난 나에게서부터 무한하게 뻗어 나오는 이 생생한 감상을 매일같이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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