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 리 감독의 세상의 모든 계절(2010)
차가운 계절
며칠 전 어떤 영화가 굉장히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차가운 열대어, 2010>는 뇌리에 박힐 만큼 강하고, 빠르고, 잔인하고, 재밌으면서도 매력적인 영화였다. 그래서인지 이번 영화감상에서도 차가운 열대어가 많은 영향을 미치지 않았나 싶다.
이번 영화는 지난 영화와 굉장히 상반되는 느낌이다. 그 때문에 초반까지는 더 극단적인 따듯함을 느낄 수 있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난 톰과 제리 부부, 그들의 아들 조에게 집중하고 있었다. 그러다 조금은 자극적일 수 있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그 후로는 메리에게 온전한 시선을 쏟기 시작했다. 그녀가 만들어내는 잔잔하게 보이지만 어딘가 날 선 감정이 불안함을 형성하는데 그것이 불편하면서도 은근한 재미를 주었다.
계절
제목에 충실하게 '계절'에 초점을 맞춰 영화를 감상했다. 그래서일까? 영화에서 계절을 느낄 수 있는, 계절과 관련 있는 어떤 것을 찾지 못했다. 어떤 이는 관계를 계절에 맞춰 표현했다고 하는데 나는 영, 감이 오질 않는다. 심지어 계절의 흐름 또한 느끼지 못했다. 톰과 제리의 농장으로 계절의 변화를 효과적으로 보여주고자 했던 것 같은데 나는 인지하기가 힘들었다. 이는 아마 영화 화질의 문제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그러한 문제들 때문인지 총체적으로 이 영화는 정적이었다. 시간은 흐르고 계절은 바뀌고 일상은 똑같다. 영화의 계절은 내게 한결같은 일상, 특별할 것 없는 나날들, 1년짜리 진정한 현실적 인생의 축소판을 보여주는 듯했다. 사는 건 다 똑같다. 그래서 예상치 못한 잔혹함을 느꼈다.
늙음의 특권
젊음의 특권. 시끄러움, 생동감, 원하는 대로 움직여주는 건강한 몸뚱이, 빠른 움직임, 느리게 가는 시간, 앞으로 한참은 살아있을 것이란 막연한 기대감, 살아있는 친구들이 더 많은, 죽음을 향한 무딘 감각.
반대로 늙음의 특권도 있다. 흘려보낸 시간에 따라 쌓인 경험, 이는 곧 지혜, 볼 수 없었던 것을 볼 수 있게 되는 눈.
우린 흔히 늙음을 얻는 것보다 잃는 것에 쉽게 연결 짓는다. 자꾸만 짧아지는 생명줄, 사라져가는 친구들, 떨어지기만 하는 신체기능과 면역력, 갈수록 좁아지기만 한 스스로 당당할 수 있는 자리. 그런데 이는 어쩌면 우리들이 만들어낸 믿음과 같은 것이 아닐까. 유난히 늙음에서 발견되는 부정적인 것들에만 시선을 집중시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젠 젊음의 특권만 생각해볼 것이 아니라 늙음의 특권에 더 집중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늙음으로 향하고 있는 우리 자신을 위해서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