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라이트 감독의 어톤먼트(2007)
날 선 감각
이 영화는 보면 볼수록 무겁다. 해방감을 느낄 수가 없다. 진지하고 긴박하며 예민하고 날 선 분위기가 지속되면서 피로가 누적된다. 사건이 편하게 진행되는 법이 없다. 심지어 로비와 세실리아의 사랑이 시작될 때조차도 타인에게 공개되어선 안 될 비밀스러운 편지나 남몰래 이루어졌던 서재에서의 사랑, 귀족과 하인의 자녀라는 신분 차이로 인해 긴장하고 또 긴장했다. 이는 감각을 예민한 상태로 만들었다.
감정이 만들어낸 죄의 무게
일반적으로 무겁다 느끼는 소재, 상황이 있다. 오해와 진실 사이를 오가며 받게 되는 상처와 억울함이 그러하고 전쟁, 죽음 등 잘 알진 못하지만 함부로 말해선 안 될 것만 같은 소재가 그러하다. 브라이오니의 잘못된 증언으로 로비는 사랑하는 이 앞에서 당당하지 못한 모습으로 이별하게 되었고, 억울하게 전쟁터로 끌려갈 수밖에 없었고, 결국 사랑하는 그녀를 다시는 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그의 잘못이 아님을 알기에, 그가 느꼈을 억울함 또한 어렴풋이나마 이해할 수 있기에 극이 진행될수록 속이 쓰려진다. 억울함, 슬픔과 같은 감정은 사람을 처지게 만든다. 잘못이 어디서부터 출발하였는지, 정말로 나의 잘못이 있었는지 또는 없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과거로, 과거로 회귀한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상처를 받고 점점 더 마음이 아파진다. 아픈 마음은 내 몸 안에서 자극을 낳고 그 자극에 집중케 한다. 생각만 내면으로 응축되는 게 아니라 감각마저 그렇게 나의 내면에 갇히게 된다. 모든 것이 내면에서 가중되어 점차 무거워지기만 한다.
전쟁과 죽음
전쟁과 죽음의 무게. 덩케르크에서의 롱테이크를 보고 있노라면 묘한 무게감을 느끼게 된다. 단순히 전쟁의 처참함만을 보여줬더라면 그런 느낌을 받진 못했을 것이다. 해당 장면에서는 처참함보다는 무력감이 더 크게 와닿는다. 희망이라곤 없는,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내일을 포기한 것만 같은 그런 이들이 한데 모여있다. 그들의 모습을 생의 마지막에나 어울릴 법한 슬픈 음악으로 포장한 뒤 로비에게 보여준다. 그 장면 하나로 그의 꿈은 그저 허황한 것에 불과해졌다.
죽음의 기로에 놓인 이들을 바라보는 브라이오니 또한 그렇다. 그녀는 속죄를 위해 간호사가 되었고 속죄를 위해 열심히 일한다. 그러나 그녀는 병원 안에서 속죄받지 못한다. 의도와는 달리 죄의 무게만 가중된다. 그녀는 그곳에서 누군가의 상처와 아픔을 마주하고, 죽음을 마주하고, 이별을 마주한다. 영원한 이별을 목격하면서 그녀는 어른이 되어간다. 이별의 아픔이 무엇인지를 배우고 이를 알아갈수록 무거워지는 감정을 느낀다. 자신의 죄가 더욱 커지고 무거워진다.
되돌아가는 시간
과거로 돌아간다. 하지만 진짜로 돌아갈 수는 없다. 이미 지나버린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으니까. 본 영화는 시간을 종종 역행한다. 같은 사건을 서로 다른 시점으로 보여주기 위해서도 그랬고 현재 상황으로 인해 떠올려버린 지난 실수를 후회하기 위해, 바꿀 수는 없지만 바꾸고 싶은 지난날을 다시 쓰기 위해서도 그러했다. 이 모든 과거로의 역행은 현실의 이루어지지 못할 간절함과 상반되어 더 극적인 안타까움을 만들어낸다.
브라이오니의 잘못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도 시간은 거슬러 올라간다. 죽임을 당한 프랑스 아이들 그리고 고의로 물에 빠졌던 브라이오니의 대비는 로비에게 남아있는 이 바보 같은 어린 애를 향한 원망을 엿볼 수 있다. 브라이오니는 지난날에 갇혀 자신을 돌아보고 돌아보며 후회한다. 현재가 회상시킨 지난 잘못이, 자신이 손대지 않았더라면 아름다웠을 그들의 인생이, 다시 붙여놓을 수도 없게 된 그들의 사랑이 자꾸만 자신의 잘못을 키운다. 그렇게 브라이오니의 죄는 타인에 의해서도, 그리고 본인에 의해서도 계속해서 커지기만 한다.
영원히 끝날 수 없는 이야기의 끝
“이야기는 계속될 수 있어. 우리 이야기는 계속될 수 있어. 나는 계속할 거야.”
로비와 세실리아의 사랑 이야기는 끝을 맺지 못한다. 계속 사랑을 이어가고자 했지만 결국 전쟁으로 인해 영원히 만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이야기는 그렇게 다시 이어지지 못한 채 끊어졌다. 브라이오니의 이야기도 끝을 맺지 못한다. 속죄해야 할 이들이 그녀의 곁을 영영 떠나버리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죄는 다시는 용서받지 못한 상태로 영원히 이어질 것이다.
생각을 해봤다. 끝맺지 못한 이야기는 관객에게 무엇을 남기는지. 찝찝함, 분노, 짜증, 불쾌함 등의 좋지 못한 감정이 남는다. 이는 이들의 애절한 사랑 이야기를 떠올리고 싶지 않게 만들고 설령 강렬하게 새겨진 감정의 기억으로 떠올리게 되더라도 썩 유쾌하게, 좋은 감정으로 되새김질하진 못하게 만든다. 그런데 결말이 행복하지 않다고 해서 로비와 세실리아의 사랑이 아름답지 않았던가. 그들의 사랑은 짧았기에 더 강렬하고 더 애절하다. 하지만 이렇게든 저렇게든 결실을 보지 못한 이들의 이야기는, 그 아름다움은 찝찝함에 의해 가려진다.
결국 작품 안에서만큼은 모든 이야기가 끝이 났다. 브라이오니는 두 사람에게 행복이라는 친절을 베풀고 속죄된다. 두 사람은 함께 도달하고자 했던 곳에서 행복한 엔딩을 맞는다. 비록 우린 이 결말이 사실이 아님을 알게 되었음에도 조금은 위로받게 된다. 그들의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로 시선을 다시 맞춤으로써 좋지 않게만 남을 뻔한 감정이 조금이나마 환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