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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조각
말할 수 없는 비밀을 말하면 그건
말할 수 있는 비밀이 되는 걸까.
하지만, 이건 정말 말할 수 없는 비밀.
내게는 스트레스를 푸는 두 가지의 비법이 있는데,
스타벅스의 돌체라떼나 푸룬주스, 마그밀처럼
엄청나게, 바로, 즉시, 효과를 볼 수 있다.
어느 아침, 지각 위험의 늦은 시간에
빨강 신호등을 즉시 파란불로 바꾸는 것처럼
삶이 막힘없이 평탄해진다.
화를 낼 필요 없고
짜증 부릴 이유 없고
뱉은 뒤 후회할 말도
신경을 긁는 생각도
모두 없앨 수 있다.
효과가 정말 어마어마하다.
그 첫 번째 비법은, 독서다. 책 읽기.
전자책도 좋지만, 효과가 제일 좋은 건 종이책 읽기.
그리고 매일 습관처럼 꾸준하게 읽기.
책을 꾸준히 읽는 사람이라면
바로 이해할 거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말하는 ‘꾸준히’란, 스무 권, 백 권 하는
다독이 아니라 하루에 한 문장이라도
매일 공기를 마시고 숨을 쉬듯 반복하는 걸 말한다.
놀랍게도 책을 읽으면 이성을 잃지 않는다.
아무리 바쁘고 삶이 흙탕물이어도
꾸준하게 매일 책을 읽는 이유다.
그리고 그다음 비법, 바로 이게 말할 수 없는 비밀인데.
양배추 썰기다.
스트레스가 극심해 이성을 잃기 직전이나
이미 잃었을 때, 폭식의 징조가 보일 때,
혹은 뭐가 잘 안 풀려 답답하고,
기분이 안 좋거나 우울할 때도 효과 직방.
손에 올려봤을 때, 무게감이 느껴지는
속이 꽉 차 있고 신선한 양배추를 사다가
흐르는 물에 씻어 물기를 대충 털고서
냅다 써는 것이다.
단, 최대한 얇게 썰 것.
이삭토스트처럼 토스트나 샌드위치를 해먹을 때
두께감이 있어 으적거리는 게 아니라,
거미줄처럼 아주 얇게 썰어
입안에서 사르르 녹아들 만큼 얇게.
채를 썬 양배추는 비빔밥에 쓰기도 하고,
케첩 뿌려 어릴 적 치킨 먹을 때 주던
양배추 샐러드로 먹기도 하고
식초에 절여 상큼하게 먹기도 한다.
양배추는 몸에도 좋고 식감도 좋고
채를 썰 때의 아삭하는 소리까지 좋다.
삶은 언제나 뜻대로 되지 않는다.
남은 둘째치고 내가 나를 배신할 때.
아프고 야근하고 지치고 바이러스에 지고
블루투스 이어폰 충전을 안 하고
과식과 운동 쉬기를 함께 하고
바보 같은 실수를 하고
그 실수가 금전적 피해까지 일으키고
선물 받은 물건을 잃어버리고
근육은 잃고 체지방을 얻는
믿기 힘든 나를 만날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을 수 있고
그래서 지켜야 하는 건 나 자신이라
생각이 꼬리를 물고 마음에 먹이 타지기 전에
지체하지 않고 양배추를 썬다.
그렇게 썰어둔 양배추는 쌓이지 않고
어딘가로 사라지기 때문에
나는 어디에도 구속되지 않고
다시 산뜻하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
나를 해치지 않고 남도 해치지 않고.
불필요한 에너지 소모 없이 새롭게.
by 개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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