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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조각
사람을 한순간 처박아 버리는 말, 만약에.
가정법을 쓰는 순간,
이미 지나온 것, 이뤄낸 것, 헤쳐 가는 것,
나아지는 것, 나아질 수 있는 것,
과거에서 현재에 이어 미래까지
모두 물거품으로 만드는 걸 알면서도
자꾸 입에 올리게 된다.
만약에 말이야, 만약에.
그런 경우의 수.
일어나지 않은 일을 두고
가능성을 부여하며 부풀리는 헛된 공상.
다른 일을 선택했다면 어땠을까.
그때 병원에 갔다면, 수술까지는 안 갔을까.
커피를 바지에 쏟는 불상사는 막을 수 있었을까.
헤어지지 않을 수 있었을까.
조금씩 벌어진 간격으로
놓친 것을 떠올리는 마음이란.
구태여 보태지 않고도 하루하루 살기가 벅찬데.
조금 늦게 일어나 준비가 늦어서
신호등 바뀌는 시간이 다투어 뛰었지만
유난히 열차가 빨리 와 타지 못하는.
또는 신호등에 가로막혀 버스를 놓치고.
거듭 설명을 듣고도 대단히 실수를 하고.
실수 앞에는 꼭 ‘대단히’를 붙이고.
지도를 보고도 엉뚱한 길로 들어서고.
비 오는 걸 알면서도 우산을 잊어 새로 사고.
잘못 산 물건 환불하려고 보니 영수증이 없고.
나아지기 위한 노력이 뒷걸음질 치게 하고.
멋진 건 둘째치고 바보 같지만 않아도 참 좋겠다 싶은.
그래도 만약에 내게
알라딘을 붙잡을 기회가 온다면,
어떤 3개의 소원을 빌어야 할까.
중고 서점에 책을 팔러 가면서 그런 생각을 해본다.
by 개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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