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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조각
웃음없는 삶은 끔찍하다.
빛을 알고 마주하는 영원한 어둠 같달까.
모르고 살았으면 괜찮았을 텐데
알고 난 뒤라 극대화되는 괴로움 같다.
웃을 일도 웃을 수 있는 상황도 없다면
어떻게 이 기나긴 여정을 버틸까.
웃는다는 건, 웃긴다는 것.
웃겨서 웃을 수 있는 상황은,
그만큼 편한 자리라는 것.
애매하고 멋쩍은, 사회생활을 위한
히읗 받침이 들어간 느낌의
아핳, 오홓 웃는 것 말고
입이 귀에 걸리듯 활짝 웃는 일은 언제나 즐겁다.
무용한 영상들을 멍하니 넘기며 웃는 일도
사실은 즐거운 웃음과는 거리가 멀다.
요즘 예능, 영화도 웃음과는 거리가 멀어서
더 삭막해지고 마는 일상.
정말 웃기고 재밌는 웃음은
누구도 불편함을 느끼지 않을 때 나온다.
비꼬지 않고 비하하지 않고 깎아내리지 않을 때의
있는 그대로의 즐거움.
안전과 생존과 생계에 위협받지 않을 때
비로소 새어 나오는 웃음.
그래서 가장 좋아하는 개그맨이 장도연님이다.
'웃음을 위해 절대 상대방을 깎아내리지 않겠다'는
장도연님의 철학은 삶이 지칠 때도 종종 떠올린다.
그건 개그에 국한되지 않고,
삶 전반에 적용되는 명언이라고 생각해서다.
언제나 좋고 건강한 것보다
나쁘고 해로운 길이 쉽지.
가장 쉬운 건,
잘 되는 것보다 잘 되는 걸 망치는 일이지.
반성하는 일보다
역으로 뒤집어씌워 위협하는 일이고.
왜 점점 웃는 일이 어려워질까.
그런 걸 바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 같은데.
또 내 문제는, 왜 자신이 가장 늦게 알아채는지.
주변에서는 이미 다 알고 있는데, 왜 혼자 모르는지.
뒤늦은 후회와 반성과 노력은 무엇을 위해.
그것은 아마도 맑은 물에
어느샌가 떨어진 먹물 한 방울을 없애기 위해.
돌이킬 수 없는 일을 돌이키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필요할 것이므로.
이유리 작가의 소설집 『웨하스 소년』에서는
단 하루의 기뻤던 순간을
저장해주는 목걸이가 나온다.
주인공은 특별하지 않은 날에
목걸이를 사용한 것을 후회했지만,
막상 하루를 끝내고 목걸이를 재생하면서
두 번 다시 없을 평온한 하루가 남은 것에 감사했다.
그런 목걸이라도 있어야 우리가 웃음을,
삶의 빛을 잃지 않을 수 있을까.
나는 오늘 일이 잘 풀리지 않아 웃을 수 없었고,
해야 할 일들의 시간을 가늠하다 지쳤고,
남은 인생을 어떻게 대비해야 하나 막막했는데,
그 와중에 점심은 맛있어서 좀 웃었다.
뭘 먹을 수 있어서 감사했다.
장마는 계속되고 습한 공기가 숨 막히고
공과금은 계속 오르고 맛있는 건 언제나 비싸며
비 피해나 사건, 사고가 도처에 끊이지 않지만
그래도 돌이켜본 당신의 하루에
웃음 한 가닥이 남아있기를 바란다.
힘이 나지 않아도, 우리 존재 화이팅.
by 개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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