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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복사 Jul 24. 2024

43 조각. 한밤의 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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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조각



잘 붓는 사람은 자주 억울하다.

한 것도 없는데 붓고

한 게 있어도 붓는다.

전날 라면 먹었냐는 말을 들은 아침엔

진지하게 밤에 라면이나 먹을까 싶은

청개구리 같은 마음으로 번지지만,

실천한 적은 없다.

붓는 건 지긋지긋하다.

하루는 밤에 물을 꾹 참았는데도

다음 날 아침, 슈퍼문이 떴다.

순간 거세게 화가 나,

날도 더운데 참지 않으리 다짐했다.

그럴 때의 분노는 자신에 대한 분노라기보다

이런 몸을 탄생시킨

유전자 조합에 대한 분노에 가깝다.

이렇게 마구잡이로 조합된 몸이라니.

대체 장점이 뭐람.

탄식. 그리고 탄식.

그날은 정말 뿌리 깊은 화가 돋아

밤에 물도 아닌 수박을 먹었다.

냉장고에서 냉기를 흡수한 수박은

정말이지 시원하고 달아서 행복했지만,

다음 날 아침엔 더 큰 슈퍼문을 마주해야 했다.

물을 안 마셔도 붓길래 먹으면 안 붓나 싶었더니

그건 또 아닌 모양이다.

어이가 없어 얼굴같이 생긴 달을 보다가

소원을 빌었다.

운동하고 스트레칭하고 물 섭취 조절도 하는데

제발, 그만 좀 부어라!

아무리 밉더라도 얼굴은 보고 살고 싶은 마음.

웃으면 눈이 사라지는 건,

거의 저주에 가깝지 않나.

한편으로는, 아침 얼굴과 저녁 얼굴이 다르니

이보다 더 뛰어난 위장술은 없으려나 싶고.

붓는 이유를 때마다 알 수 없어

무시로 서운해지기만 하는 슬픈 일상.

라면은 맛있지만 좋아하지는 않아,

한밤의 라면은 일 년에 한 번

먹을까 말까 하는 게 진실인데.

야식을 먹더라도 단백질을 먹지, 면은 안 먹는다.

회, 치킨, 돈가스, 고기구이, 탕수육, 반숙란 등등.

적고 보니 다 맛있겠다.

날이 더워 입맛이 없었는데.

사람은 변하지 않는지, 다시 입맛이 돈다.


by 개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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