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로 보내는 편지, 현재에서 미래를 만드는 힘
편지를 자주 쓴다. 남에게 뿐이 아니라 나에게도. 어떤 사람들은 편지를 구닥다리라고 생각하고 어떤 사람들은 오글거린다며 토하는 시늉까지 하는데, 그런 것도 어떻게 보면 편지에 대한 편견이라고 생각한다. 시대를 불문하고 마음에서 마음으로 이어지는 데는 편지만 한 게 없다.
엄밀히 말하면 다르지만, 내게는 발신인과 수신인이 같은 편지함이 있다. 오늘의 내가 미래의 나에게 쓰는, 말 그대로 미래로 보내는 편지를 모아놓은 편지함이다. 보통 1년이나 2년 뒤로 보내지만 멀게는 20년 뒤까지도 보낸다. 벌써 스무 개가 모였고, 여섯 개의 편지가 전달 중이다. 올해 도착 예정 편지는 만 나이 적용에 따라 하나 늘어 두 개로, 각각 8월 27일과 9월 9일에 있다. 편지지에는 당연히 발신 정보를 적지만, 편지 봉투에는 발신 정보를 적을 때도 있고 적지 않을 때도 있어서 열어보기 전까지는 알 수 없고, 그 때문에 편지는 내가 계절을 보내고 기다리는 새로운 방법이 되었다. 다가올 계절을 기대하며 기다린다.
미래로 보내는 편지의 규칙은 셋이다. 하나, 미래의 시간으로만 보낸다. 둘, 도착일은 연도, 월, 일까지 구체적으로 정한다. 셋, 도착일 이전에는 열어보지 않는다. 지금까지 규칙을 잘 지키고 있는데, 사실 딱 한 번 어긴 적이 있다. 처음 썼던 편지의 도착일을 지키지 못했다. 발신인은 초등학생, 수신인은 스무 살이라 하루가 일 년 같았다. 도착일이 너무 멀어서 결국 기다리지 못하고 뜯었는데, 너무 일찍 뜯어서 아쉬웠다. 기다렸다가 열어야 했는데. 그래서 그 이후에 무엇보다 세 번째 규칙을 지키기 위해 노력 중이다. 유혹을 만들지 않기 위해 단단한 밀봉에 제일 힘쓰고 있다.
편지의 시기나 내용에는 아무런 규칙이 없다. 내용도 형식도 자유롭다. 편지를 쓰고 싶을 때, 쓰고 싶은 내용을 적는다. 그래도 언제 주로 적나 생각해 보면, 답답한데 하소연은 무의미할 때나 기운이 나지 않을 때 그리고 기쁠 때 쓰지 않나 싶다. 어떤 고민, 걱정, 시간이 지나도 기억해 줬으면 하는 기쁜 일, 어디에도 보이고 싶지 않은 우울함이나 두려움 등등. 편지에는 다양하게 담기지만, 어려서 쓴 편지는 확실히 유치하기 짝이 없고 사춘기 때 쓴 편지는 당최 무슨 소리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다. 한껏 우울했을 때 쓴 편지는 어둡고 꿈을 이뤘을 때 쓴 편지는 언제 열어도 편지지가 팔랑팔랑 날아다니는 것만 같다. 그런 것들도 다 편지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해서 미래로 보내는 편지는 나에게 보낸다는 점에서 어릴 적 먹던 콜라 맛 젤리 같기도 하고 사전 예약 걸어둔 최신 기기 같기도 하다.
어쩌다 미래로 편지를 계속 보내게 되었나 생각해 보면, 편지라는 매개체 자체가 매력적인 것도 있지만 일기와의 차이점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일기는 쓰는 동시에 종결되지만, 편지는 수신인이 받을 때까지 종결되지 않고 이어진다. 게다가 미래로 보내니 정해놓은 도착 예정일까지 고민이든 위로든 무엇이었든 시간이 지날수록 기억에서 내용은 잊혀도 편지에 고스란히 담겨있는 것 아닌가. 때가 되어 읽힐 때까지.
그런 미래로 보내는 편지가 무효한 경우의 수는 단 두 가지다. 발신인이 잃어버리거나 수신인이 죽거나. 그래서 나는 더욱 미래로 편지를 쓴다. 그때까지 내가 무탈하게 살아남아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세상은 너무 혹독하고 거칠고 현실은 언제나 극악무도하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굳건하게 살아남아 편지를 받아 읽고 새로 또 편지를 보냈으면 해서.
며칠 전에도 편지를 한 장 썼다. 이번에는 1년 뒤의 나에게로, 평소와 달리 오랜만에 자신을 다그치는 내용으로 꽉꽉 눌러쓴 편지였다. 하지만 이런 내용도 언제나처럼 금방 잊힐 것이다. 8월 27일과 9월 9일에 오게 될 편지에는 무슨 내용이 적혀 있을까. 지금으로서는 선풍기 옆에서 미치도록 습한 기온을 견디며 설렘 반 걱정 반으로 기다리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게 없다. 여름은 언제 지나가나 가을은 언제 오나, 하면서. 그리고 또 새로 편지지를 샀다. 새 편지지는 언제의 누구에게 보낼지 아직 정하지 못했다. 다가올 편지도 새롭게 보낼 편지도 무탈하게 도착하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