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가능한 삶, 책 편

세계에서 세계로 이어지는 뿌리

by 개복사

책을 읽는다. 가벼운 관심으로, 재미있어서, 베스트셀러라 해서, 표지가 예뻐서, 추천이 많아서, 선물을 받아서, 좋아하는 작가님의 작품이라서. 책을 고르거나 읽는 이유는 다양하고, 책이 내게 주는 것 또한 그렇다.


처음부터 책을 좋아했던 건 아니다. 한때는 재미없고 지루하던 책에 맛을 들리게 된 계기는 일상에서 뜨는 시간을 활용한 독서였다. 출퇴근길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동안에, 지연되는 약속 시간을 버티기 위해, 죄책감을 덜고자 올라가는 밸런스보드 위에서, 뭉친 근육을 풀기 위해 스트레칭하면서, 병원에서 차례를 기다리면서, 잠들기 전에 등등. 애매한 시간을 버리지 않고 챙겨 조금이라도 꾸준하게 읽었더니 시작한 책을 완독할 수 있었다. 별도의 책 읽는 시간을 두지 않고서도 한 달에 한 권은 읽은 셈이었다. 읽는 속도가 느려서 그렇지 보다 빠른 사람이었으면 더 많은 책을 읽었을 것이다. 책은 단기간에 양질의 정보를 원하는 만큼 쉽게 얻을 수 있는 것 중 제일이고, 그래서 점점 더 매료되었다. 꼭 좋은 책, 잘 쓰인 책이 아니더라도 한 문장에서 한 권에서 파생되는 수많은 정보와 감정과 생각이 나를 살아 숨 쉬게 했다. 반복되는 일상에 갇히지 않도록 보지 못한 새로운 시선을 보여주며 세계를 계속 넓혀줬다. 건강을 생각할 때, 몸이 먼저인지 정신이 먼저인지 아직도 모르겠으나 독서가 정신을 튼튼하게 붙들어준다는 것만큼은 매일 느끼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독서는 정신 건강을 위해 일기와 함께 매일 꾸준하게 하는 것 중 하나로 내 삶의 일부가 되었다. 몇 장이든 몇 줄이든. 하다못해 한 문장이라도 꼭 읽는다.


그럼에도 제목을 ‘독서’가 아닌 ‘책’이라고 적은 이유는, 읽는 행위뿐이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고 구매하고 들여다보고 선물하는 모든 행위에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한때는 책을 구매하는 행위 자체가 좋았다. 책을 구매하기 위해 구경하며 고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그런 책들이 책장에 착착 자리하는 모습도 즐거웠다. 인터넷 서점에서는 책 구매에 따른 굿즈 판매를 시즌마다 새롭게 진행하므로 책에 딸려오는 상품들까지 함께 맛보는 즐거움도 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모든 책이 소장할 가치가 있는 건 아니다. 책장에 꽂혀있던 책 중 한 저자가 성추행범인 게 밝혀졌을 때의 분노를 아직도 기억한다. 그 책을 읽고 되새기던 모든 순간이 순식간에 더럽혀지며, 인생을 이렇게도 쓰게 배워갈 수 있음을 뼈저리게 느꼈다. 이후의 구매는 종이책이든 전자책이든 무엇이든 저자 확인을 시작으로 어디 출판사에서 낸 어떤 책인지 목차도 꼼꼼하게 살핀 뒤에 산다.


책을 선물하는 것은 그런 모든 면에서 삶을 더 풍요롭게 해준다고 생각한다. 물론 선물을 받을 사람이 책을 읽지 않는다면, 후보 목록에서 제일 먼저 탈락할 수도 있으나 대상이 누구든 간에 선물할 수 있는 것도 책이다. 책에는 정말 많은 분류가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요즘은 표지디자인이 예술이다. 예전의 책들도 새로운 표지로 개정해서 나와 멋스러움을 기본으로 가져갈 수 있다. 그 사람이 좋아하는 취향이나 분야에 맞춰 선물할 수도 있지만, 사람이 아닌 상황에 맞춰 선물할 수도 있다. 위로가 되거나 즐거움을 주거나 사고를 넓혀주거나 중요한 정보를 주는 것 모두 소설이든 에세이든 시든 인문학이든 모든 분야에 해당된다고 본다. 그렇게 선물한 책에는 선물하는 마음과 함께 그 시절이 담기고, 펼칠 때마다 그때의 마음과 시절도 차곡차곡 쌓여서 삶을 지탱하는 하나의 든든한 뿌리가 되어준다.


이렇게나 삶을 다채롭게 해주는 게 책인데. 요즘은 책이나 독서가 그렇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나 역시 밖에서 책 읽는다는 말을 쉽게 못한다. 일례로 취미가 여행이라고 하면 누구든 긍정하면서 어디어디 가보았냐며 대화의 주제가 되고 질문이 이어지지만, 취미가 독서라고 하면 그 순간 대화는 끝이 나고 만다. 책도 하나의 분야고 취미인데, 책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정말 가슴이 미어진다. 보다 많은 사람이 책을 사랑하고 즐기기를 바라는 마음이 나날이 커져가는 중이다.


이제는 방에서 벗어나 거실 책장에 분류별로 꽂혀 있는 책은, 나눌 필요 없이 널찍하던 한 칸에서 시작해 어느새 열네 칸으로 늘어 안쪽 공간까지 빼곡하게 차 있다. 그만큼 제법 다양해졌다. 국내소설, 해외소설, 에세이, 시, 심리학, 예술, 글쓰기, 동화, 철학, 사회학, 과학, 인문교양 이렇게 열둘로 나뉜다. 주기적으로 책장을 정리하는데도 빈 공간이 없어 요즘에는 종이책보다 전자책을 많이 이용한다. 아무래도 종이책이 더 맛있지만, 전자책도 적응되고 나면 그만의 장점으로 충분히 매력적이다. 그러므로 어떤 형태로든 가까이 두고 읽는다. 살면서 중요한 건 건강한 마음과 정신이고, 그걸 책이 훌륭히 보조해 주므로.


190222책갈피-2.jpg ⓒ개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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