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를 정리하며 다음으로 나아가는 방법
한 해의 반이 지나갔다. 달이 바뀌었으므로 달력도 한 장 넘겼다. 7월의 사진은 연꽃과 연잎, 그 위에 ‘기울지 않고 평행을 유지하는 일’이라고 적혀 있다. 작년 8월의 핸드폰 일기장에서 가져온 문구다. 일기에는 ‘기울지 않고 평행을 유지하는 일은 참 어렵다. 계속 어딘가로 휩쓸리고 만다.’라고 썼는데, 같은 날 쓴 다른 일기를 보면 힘든 날이었지만 다음해의 비슷한 시기에는 잘 지내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렇게 뽑은 것 같다.
달력을 만들어 사용한 것은, 올해로 네 번째. 기획했던 것은 아니지만, 나만의 연례행사가 되었다. 시작은 요일이었다. 주말을 묶어서 노니 일정 적기 편하게 토요일과 일요일이 붙어 있으면 좋겠는데, 판매되는 달력들은 대부분 일요일로 한 주가 시작된다. 어쩌다 있는 월요일로 시작되는 달력은 디자인이나 실용성에서 떨어졌다. 한국에서 달력 사용하기를 저렇게까지 다 영어여야 하나, 음력은 왜 안 적을까, 동짓날은 음력을 알아야 팥죽을 먹을지 말지 알 수 있는데, 그래도 국경일이 있어야지 않나, 법정기념일도 있었으면 좋겠는데……. 현실과 타협하려고 시도하다가도 일정을 종이 달력에 적어 관리하는 나로서는 원하는 사항의 최소의 최소가 큰 것도 있었다. 올해는 또 어떤 달력으로 버텨야 하나 해마다 한숨만 쉬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판매되는 달력들도 처음부터 있는 게 아니라 만들어진다는 당연한 사실을 깨달았다. 이럴 바에 만들자. 내 모든 바람을 실현시켜 만들자. 그렇게 처음부터 확고했던, 이른바 ‘넘치고 넘치는 달력’이 탄생했다.
‘넘치고 넘치는 달력’은 더 짧게는 ‘투머치(too much) 달력’으로 부른다. 달력판과 사진판 모두 넣고 싶은 것을 몽땅 넣었기 때문이다. 사진판에 비해 달력판은 비교적 단순하게 만들었는데, 생김새를 말하자면 우선 크기는 탁상 달력에 맞게 펼친 손만 하다. 상단에 숫자와 한글로 달을 표기하고 그 옆에는 지난 달과 다음 달을 작게 넣었다. 이번 달과 지난 달 그리고 다음 달까지 한 시야에 들어오는 것도 중요한 부분이었다. 그 밑에 요일 역시 한글로 적었다. 월요일에서 시작해 일요일로 끝나는 한 주는 오랜 바람이어서 볼 때마다 기분이 좋다. 토요일과 일요일은 정형적이나 보기에 제일 나으므로 파란색과 빨간색으로 정했는데, 색상을 맞추기 위해 여러 번 출력한 만큼 아주 마음에 든다. 음력 날짜는 매주 일요일에 넣고 추가로 음력 달의 1일도 표기했다. 그리고 국경일에 법정기념일 나아가 세계기념일까지 다 넣었는데, 주마다 간격을 두었기 때문에 온갖 기념일 사이에서도 일정을 적기 편하다. 달력의 콘셉트에 맞게 해마다 새로 알게 되는 기념일은 메모장에 적어두었다가 추가하기 때문에 ‘투머치 달력’은 진정으로 ‘투머치’한 달력이라고 할 수 있다.
달력의 핵심이라고 볼 수 있는 사진판은 한 해 동안 직접 찍은 사진과 일기에서 뽑은 문구를 넣어서 디자인한다. 달력을 만드는 일이 길게는 한 달까지 걸리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사진은 언제든 핸드폰과 백업해 둔 폴더에서 하나씩 넘겨보며 후보를 넉넉하게 골라두면 되는데, 일기는 정말 만만치 않다. 일기 쓰기가 점점 확장되어서 손으로 써오던 종이 일기장에서 시작해 다이어리에 적은 일기, 냅킨에 적은 일기, 메모지 조각에 적은 일기, SNS의 일기, 핸드폰 일기장까지 말 그대로 ‘모든 일기’를 읽어야 한다. 해마다 문구의 주제를 정하더라도 검색 기능은 핸드폰 일기장에서만 가능하고 종이에 적은 일기에는 무의미해 읽고 또 읽는다. 일기를 하나씩 열어 감정을 돌아보는 일은 상당한 시간과 에너지를 소모하므로 쓸모없어 보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과정들이야말로 지난 나를 있는 그대로 보게 되면서 한 단계 앞으로 나아가는 계기가 된다. 마냥 춥고 어쩐지 끝인 것만 같아 서운하던 겨울을 기다리게 되는 이유도 그래서일 것이다. 이렇게 지난 시간을 돌아보고 추억한 뒤에 다시 현재로 돌아오며 한 해를 매듭짓고 싶어서.
매일 보이는 것 중 하나가 달력이다. 이제는 만들어 쓰는 달력. 달력에 묻은 흔적을 보면서 새롭게 다짐도 하고, 이전에는 찍고도 쓰고도 보지 않았던 일기와 사진을 더 즐겁고 깊이 있게 남기고 있다. 달력을 염두하며 새로운 구도로 사진을 찍고 그러면서 지금 찍은 사진 좋다, 별로다, 이렇게 찍어볼까, 그렇게 다양한 생각을 하게 된다. 일기에서도 전보다 다듬으며 쓰니 더 잘 표출하고 문장도 매끄러워진다. 방금 쓴 일기 그대로 달력에 쓰면 되겠는데?, 그런 생각을 하면서 힘들더라도 즐겁고, 괴로워도 버티게 되고, 기뻐도 기쁨에만 취해있지 않는다. 삶이 확장되는 동시에 단단한 사람이 되는 기분이다.
그런 의미에서 달력은 한번쯤 만들어보기를 권유하고 싶다. 직접 다 만들지 않더라도 스마트한 시대에 맞게 기본 틀이 제공돼 누구든 쉽고 빠르게 제작할 수 있다. 달력판과 사진판 모두 다양한 디자인이 있어 편하게 만들 수 있으니 자신을 위해서나 선물용으로 만들어보는 건 어떨까. 더욱이 달력이란 물건은 선물하면, 매일 혹은 매월 보지 않더라도 한 번씩 보일 때마다 그 달력을 만든 사람을 떠올릴 수밖에 없으니 그런 부분에서도 매력적이지 않나. 그래서 나 또한 올해 두 가지의 달력을 추가로 만들었다. 엄마를 위해 글씨와 더불어 모든 게 잘 보이는 큰 크기의 달력과 선물용에 적합하게 내용을 간소화시키고 크기도 줄인 미니 달력이다. 내년에도 이렇게 세 개의 달력을 만들 예정이다. 내년의 사진판은 어떻게 만들지 아직은 모르겠지만, 나만의 연례행사를 앞으로도 쭉 이어나가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