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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 조각
어떤 남자가 넘어지지 않겠다고
팔로 나를 밀었다.
나는 옆으로 밀렸고
나를 민 남자는 자리를 지켰다.
운동을 쉬고 있는 현실이
이렇게 나를 타격한다.
그런 충격에 내릴 역을 놓칠 뻔했다.
내려서 걷는 중에는
누가 자꾸 내 신발 뒤축을 밟았다.
곧 도착 예정인 게 반대편 열차여도
여전히 착각하고 뛰는 사람들이 있다.
열심히 손질한 머리는
지하철 에어컨 바람에 도루묵이 돼.
그러면 이런 날의 나는
이리저리 차이는
바람 빠진 풍선과 다를 게 없다.
너무도 느껴지고
눈에 보이고 들리는 것들.
뒷자리 직원은 물을 마실 때마다
“캬-”, “캬-” 하고 정신 사나운 소리를 내고,
냄새가 심한 사람은
물리적 거리를 파괴하며
코를 마비시킨다.
음악도 영화도 드라마도
책도 읽지 않는 사람과는
무슨 얘기를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비가 온대요, 날씨가 덥네요,
주말엔 어디 가시나요,
연차 내고 어디 가시나요.
무해하고 불필요한 이야기로
시간을 채우는 게 어른의 삶일까.
거짓말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
그것은 타인을 쉽게 판단하며
상처 주지 않는 인간이길 바라는
나의 자존을 붙드는 방식.
by 개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