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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 조각
<1차 시도>
소울메이트와 텔레파시가 통했다.
드문 일이다.
분야는 월요일 저녁 메뉴.
상세 컨셉은
치즈가 종류별로 가득한 피자였다.
그런데 여기서 1차적 문제가 발생한다.
소울메이트와 나는
이미 살이 좀 붙은 상태다.
소울메이트는 야근 이슈로
나는 부상 이슈로 복싱을 포함한
모든 운동을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일순간 묵념 후,
퇴근길 비대면 토론을 시작했다.
피자를 영접해도 되는가.
정말 그래도 되는 것인가.
아니면 먹고 걷는 것으로
합의를 봐야 하는가.
그렇다면, 한 판? 두 판? 브랜드는?
우리는 그 얘기를 삼십 분 넘게 진행했고
합의점을 찾지 못한 채로 시간이 늦어져
고칼로리 탄수화물을 놓치고 말았다.
이날 저녁은 집에서 돼지고기를 구워서
고기구이와 고기 김치볶음밥을 먹었다.
<2차 시도>
한 차례 실패를 겪은 후
우리는 단단해졌다.
피자를 먹기 위해서는,
먹고 (놀고) 소화하고 잠들기 위해서는
정시 퇴근 이른바, 칼퇴근이 필수다.
우리는 오전부터 점심 직후까지
서로의 일정을 체크했다.
이틀 연속 칼퇴근도 드문 일이지만 가능했다.
한 번 실패하니
어찌나 먹고 싶던지.
와중에 마음이 바뀌어
원래 계획의 치즈피자를 철수하고,
이 반나절 사이에 새롭게 알게 된
피자 브랜드의 이벤트에 참여하기로 했다.
퇴근 시간에 맞춰
포장을 해와서 먹는 계획이었다.
우리는 자신 있었고
매장은 휴무일이었다.
이날 저녁은 짜슐랭을 사다가 끓여 먹었다.
<3차 시도>
다음 날에도
피자 생각은 가시질 않았다.
이렇게까지 세상이 피자를 막는데,
꼬딱지만 한 월급을 넣어두라 하는데,
기어이 먹는 게 맞나?-하는 의문은
조용히 사그라들었다.
연속 칼퇴근은 쉽지 않은 일.
고로, 피자는 운명.
전날 실패한 가게가
영문을 알 수 없게 여전히 휴무였으므로,
우리는 다른 브랜드의 이벤트로
다시 방향을 틀었다.
먼저 퇴근한 소울메이트가
전화로 포장 예약을 했고,
우리는 한 치 앞을 모른 채로 웃으며 만났다.
그렇다. 가게에는 우리 피자가 없었다.
직원분이 시간을
한 시간 뒤로 적어 놓았기 때문이다.
우리만큼 싸해진
사장님 얼굴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다시 주문하여 기다리기엔 늦었으므로
우리는 첫날과 같은 단백질 식사로
저녁을 챙겨 먹었다.
<4차 시도>
이쯤 되니 정말로 피자란 무엇인가-하는
깊이 있는 사고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피자가 먹고 싶은 건지,
먹을 수 없어서 먹으려는 건지도
의구심이 들었다.
오로지 피자라는 목적 하나로,
우리는 다시 칼퇴를 시도했다.
피자는 서로 다른 맛의 두 판,
탄산음료는 집 앞 마트에서 구매,
사이드 없이 포장으로 예약하기.
초심으로 돌아가 먹고 싶었던
피자를 선택한 후,
가게가 영업 중인지 확인하던 순간은
연봉 협상의 순간만큼 떨리고 괴로웠다.
그래서 결말은?
4차 시도 끝에 드디어 영접했다.
몇 조각은 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 주인공
고은찬처럼 겹쳐 먹었고,
몇 조각은 아쉬운 마음에
한 조각씩 천천히 먹었다.
솔직히 놀랐다.
열정도 끈기도 다 사라진 줄 알았는데.
그냥 흥미와 관심이 없어서였다.
다 사그라든 줄 알았으나
그저 겨울잠 같은 것이었다니.
일이 피자가 될 순 없겠지만,
피자 같은 것을 끊임없이 모아야겠다.
실패의 순간에도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꼭꼭 씹어 소화할 수 있도록.
by 개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