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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 조각. 인간은 뚜벅뚜벅

by 개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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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 조각



양상추가 아사삭 씹히는

아주 맛있는 샌드위치.

창밖으로 보이는 화창한 날씨와

적당한 온도의 밝은 실내.

잔잔하게 틀어져 있는 음악과

불쾌하지 않은 정도의 생활 소음.

좋아하는 유리잔에

얼음이 조금씩 녹아 부딪치는 소리를 들으며,

다음 일정을 생각하고 싶다.

그런 게 간절한 한 주의 시작.

내일을 믿으며 대충 매듭짓는 월요일 저녁.

견딜만한 걱정과 고민 같은 건 없는 현실이

누구에게나 마찬가지라고 해도

‘누구’인지에 따라 격차가 있겠지.

나는 낫고 싶을 뿐인데,

스트레스는 또 다른 스트레스를 낳는다.

뭐든 흘려보내지 못하고

둑을 쌓아 붙잡고 있다.

무의식이 의식을 앞서는 날.

잔뜩 곤두서는 신경에

인간성을 더 잃지 않기 위해

새로 산 이어플러그를 욱여넣는다.

흐려지는 소리 사이로 정신을 붙잡는다.

자꾸 숨 쉬는 걸 잊는 기분이다.

그럴 때면, 쟁반노래방처럼

정수리를 내리치며 지나가는

벌이 그리워진다.

주말에 산에서 들었던 그 소리는

분명 장수말벌이었던 것 같다고,

하지만 아무리 힘들어도

장수말벌은 안 되겠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상반기를 살아냈는데도

해냈다는 기분은커녕

전부를 잃은 기분이 드는 이유는 왜인지.

전의를 상실한 6월의 마지막 날.

동시에 새로운 달과

하반기라는 시발점에서

뻔한 사실을 상기한다.

온갖 싫고 괴로운 순간은 죽지 않는다.

바퀴벌레처럼 계속 새로 생성될 뿐이다.

의지와 무관한 것에 신경쓰지 말아야지.

오늘의 나는

어제까지의 내가 이뤄낸 결말이며,

지켜내고 고치며 마침내 해낸

종착지이자 정거장이다.

그러니 쉬어도 괜찮고

새로운 선택을 해도 괜찮고

지나온 정거장을 살펴봐도 괜찮다.

날개가 없는 인간은 뚜벅뚜벅 걷는 게 맞으니까.

모든 걸음은 다 맞는 길인 거라고.


by 개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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