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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한 단어,
명확한 설명,
확실한 답.
그런 게 절실할 때가 있다.
느낌, 생각, 감정이 아닌.
# 그래서 제가 지금 겪는 병의 이름은 뭔가요?
@ 그건 뭐라고 정확하게 말하기 어렵습니다.
@ 검사 결과를 보면, 수치는 다 정상이에요.
# 저는 아직 아픈데요?
@ 수치는 다 정상이에요.
그런데도 계속 아프시다고 하시면,
저희로서도 달리 드릴 수 있는 말이 없어요.
정신과 예약을 잡아드릴까요?
@ 식도염이지만
역류성일 수도 아닐 수도 있어요.
# 그러면 원인은 뭔가요?
@ 원인이야 다양하죠.
스트레스일 수도 있고,
환자는 의식하지 못하는
생활 습관일 수도 있습니다.
타고난 것일 수도 있고요.
검사 결과가 정상이거나
이름을 붙이기에 통과되어야 하는
통증을 비껴갈 때 주로 듣는 말은,
또는 병명은 있으나
원인을 특정지을 수 없어
해결법이랄 게 없을 때 듣는 말은,
‘봄이라서 눈이 오네요’ 같은
이해하기 힘든 상관관계를 지니고 있다.
어쩔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모든 확실을 피해 가는 두루뭉술한 말들.
정확한 병명과 확실한 원인과
명확한 해결법을 아는 게
모두의 바람일지라도.
그래서 한 치 앞을 예상할 수 없는 검사는
진료받기 전부터
사람을 작아지게 만든다.
혹시나, 어쩌면 하는 마음으로
검사 결과와 자료들을 가지고
대학병원을 순회할 때는
검사한 병원에서 해결하면 될 걸
왜 왔냐는 따가운 시선까지 더해
몸과 마음이 산산이 부서지기도 한다.
그건 회를 취향에 따라
초장, 간장, 기름장, 막장에
찍어 먹는 행위가 아니다.
내게 남은 행운과 기회를
모두 모아서라도
괜찮아질 수 있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다.
현대 사회에는 원인일 수 있는 게
지천으로 깔려 있다.
외부적 요인과 유전적 요인에
예외적 상황까지 더하면,
내게 해결법인 일이 다른 이에게는 아닐 수도
내가 느끼는 100의 고통이
다른 이에게는 0의 고통일 수 있다.
그리고 살아있는 건 그 모든 경우를
받아들이고 끌어안아 함께 사는 일.
무수한 질문과 고통이 안으로 쏟아지는 일.
하나둘 늘어나는 규칙이
나를 붙잡아주다 말고 옥죌 때,
감사함을 도저히 붙잡을 수 없어 분노할 때,
그것은, 아마도, 그럼에도
당연한 일일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나만의 이름을 붙여가며.
검사 결과가 정상 수치 안에 있든
밖에 있든 나를 미워하지 않기 위해
할 수 없는 일을 내려놓고
할 수 있는 일을 하려고 노력할 때,
착실히 죽음에 다가가고 있음을 느끼면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는 아닐지라도
오늘도, 잘, 살았습니다.
by 개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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