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 조각. 이름이 뭐예요?

by 개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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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 조각



정확한 단어,

명확한 설명,

확실한 답.

그런 게 절실할 때가 있다.

느낌, 생각, 감정이 아닌.


# 그래서 제가 지금 겪는 병의 이름은 뭔가요?

@ 그건 뭐라고 정확하게 말하기 어렵습니다.


@ 검사 결과를 보면, 수치는 다 정상이에요.

# 저는 아직 아픈데요?

@ 수치는 다 정상이에요.

그런데도 계속 아프시다고 하시면,

저희로서도 달리 드릴 수 있는 말이 없어요.

정신과 예약을 잡아드릴까요?


@ 식도염이지만

역류성일 수도 아닐 수도 있어요.

# 그러면 원인은 뭔가요?

@ 원인이야 다양하죠.

스트레스일 수도 있고,

환자는 의식하지 못하는

생활 습관일 수도 있습니다.

타고난 것일 수도 있고요.


검사 결과가 정상이거나

이름을 붙이기에 통과되어야 하는

통증을 비껴갈 때 주로 듣는 말은,

또는 병명은 있으나

원인을 특정지을 수 없어

해결법이랄 게 없을 때 듣는 말은,

‘봄이라서 눈이 오네요’ 같은

이해하기 힘든 상관관계를 지니고 있다.

어쩔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모든 확실을 피해 가는 두루뭉술한 말들.

정확한 병명과 확실한 원인과

명확한 해결법을 아는 게

모두의 바람일지라도.

그래서 한 치 앞을 예상할 수 없는 검사는

진료받기 전부터

사람을 작아지게 만든다.

혹시나, 어쩌면 하는 마음으로

검사 결과와 자료들을 가지고

대학병원을 순회할 때는

검사한 병원에서 해결하면 될 걸

왜 왔냐는 따가운 시선까지 더해

몸과 마음이 산산이 부서지기도 한다.

그건 회를 취향에 따라

초장, 간장, 기름장, 막장에

찍어 먹는 행위가 아니다.

내게 남은 행운과 기회를

모두 모아서라도

괜찮아질 수 있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다.

현대 사회에는 원인일 수 있는 게

지천으로 깔려 있다.

외부적 요인과 유전적 요인에

예외적 상황까지 더하면,

내게 해결법인 일이 다른 이에게는 아닐 수도

내가 느끼는 100의 고통이

다른 이에게는 0의 고통일 수 있다.

그리고 살아있는 건 그 모든 경우를

받아들이고 끌어안아 함께 사는 일.

무수한 질문과 고통이 안으로 쏟아지는 일.

하나둘 늘어나는 규칙이

나를 붙잡아주다 말고 옥죌 때,

감사함을 도저히 붙잡을 수 없어 분노할 때,

그것은, 아마도, 그럼에도

당연한 일일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나만의 이름을 붙여가며.

검사 결과가 정상 수치 안에 있든

밖에 있든 나를 미워하지 않기 위해

할 수 없는 일을 내려놓고

할 수 있는 일을 하려고 노력할 때,

착실히 죽음에 다가가고 있음을 느끼면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는 아닐지라도

오늘도, 잘, 살았습니다.


by 개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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