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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 조각
어딜 가도 붕어빵 냄새가 난다.
군고구마를 위해 들인 에어프라이기도
내 체력이 닿는 한 가동 중이다.
이때 소중해지는 것은
아무래도 지갑 안의 현금 3천원.
길거리 간식은 현금뿐 아니라
계좌이체도 받지만 혹시 모르니까.
어느 춥고 배고픈 겨울 밤에
붕어빵을 만났는데
핸드폰도 스마트 워치도
배터리가 닳아 꺼져 있다면.
붕어빵 굽는 사장님이 아빠라도
외상은 옛말이고 3천원을 받을 테니까.
그래서 겨울이면 꼬박꼬박
현금을 챙겨 지갑에 넣어둔다.
로또도 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외친다.
사장님, 풀빵 9개 주세요.
공갈호떡 2개 주세요.
붕어빵 팥으로만 3마리 주세요.
오늘은 슈크림으로 6마리 주세요.
며칠 전 저녁에는 퇴근 후 집으로 가지 않았다.
줄 서는 붕어빵과 풀빵 맛집을 지나며
동네 서점으로 향했다.
드디어 ‘천권으로 독서포인트’를
다 모았기 때문이었다.
올해 경기도에서 처음 시행한,
최대로 모을 수 있는 3만 원을.
나는 그걸로 시집을 사고 싶었다.
지난달 어느 퇴근길에
느닷없이 마주했다가
엉엉 울고 만 시가 들어있는.
문제는 그 시를 모른다는 거였다.
시인도 제목도 내용도
하다 못해 시의 일부라도.
인스타그램인지 블로그인지
어디선가 보고서 우느라
하트도 링크도 화면 캡쳐도
해두지 않았던 것이다.
나답지 않은 비극이었다.
핸드폰 용량 64GB에서 곧바로
512GB로 넘어와 사진만 330GB인,
기록이 전부라 종종 지치는 내가
그런 시를 흘려보냈다니.
몇 날 며칠을 통탄의 시간을 보내며
겨우 기억해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시인의 이름은 세 글자이다.
-시 제목에 한자 한 글자가 들어간다.(아마도?)
-시 내용이 길다.
-시인의 나이가 많았다.(50대 이상)
-문학과지성사 시인선에 출간된 시집 중에 실려있다고 했다.
-생각나는 단어: 바람
그 이상은 생각나지 않았다.
GPT, Gemini, Perplexity 등등
가능한 모든 AI에게도 정보를 주었지만
끝내 찾지 못했다.
서점에서는 시집과 소설과 에세이를
한 권씩 샀다.
마음 한 켠에 기억나지 않는 시와
그 시에서 빚어진 감정을 놔둔 채.
(짧고 얇은 책이라 가능했다.
그래도 3만 원을 조금 넘겨서
추가 금액은 따로 결제했다.)
조금 축축한 상념에 젖어 있었는데,
서점 사장님이 말을 건네셨다.
“다 여름 책만 고르셨네요.
다음엔 겨울도 봐 봐요.”
그 말이 마치, 기억나지 않는 시만 붙잡느라
다른 것들을 놓치지 말라는 말 같기도 했다.
그럼에도 나는 계속 그 시를 생각했다.
사장님이 알아봐주신 여름향처럼
내가 애타게 찾는 시를 누군가
알려주면 좋겠다고도 생각했다.
언젠가는 시를 다시 읽게 되기를 바라며.
그때에는 처음처럼 울지 않고
다른 감정을 느낄 수 있기를 바라며.
by 개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