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3 조각. 도시, 락

by 개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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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 조각


며칠 전에 팔이 꺾였다.

회사가 너무 추워

두껍게 껴입은 데다

도시락 가방까지 무거웠다.

도시락을 안 싸고

책을 안 읽고

상비약을 안 챙기고

텀블러도 안 사용하고

생리대 파우치도 없다면.

내게는 다 불가피하다.

가벼워지는 것도

무거워지는 것도.

가장 큰 짐은 역시 도시락이다.

어째 다니는 회사마다 도시락파가 있었고,

여전히 나는 그쪽에 속해 있다.

처음엔 채소로 샐러드를 싸서 다녔다.

플라스틱 용기에 채소만 담으면

가방의 무게도 칼로리도 가벼웠다.

하지만 채소만, 그것도 익히지 않은

날것으로만 먹는 건 몸에 좋지 않다.

가공식품-특히 레토르트식품으로

끼니를 때우는 것처럼.

너무도 당연한 사실을 깨달은 뒤에는

밥을 챙겨 다녔다.

적당량의 밥과 반찬.

그러려면 반찬이 필요했고,

재료가 무엇이냐에 따라

가방의 무게와 예산은

하늘과 땅만큼 차이 났다.

신선한 재료는 몸엔 좋으나

통장엔 해롭고, 유통기한도 짧다.

깨끗하고 건강할수록 쉽게 상처 입듯이.

그러므로

일터에서 먹을 도시락을 챙기는 일은,

최선을 바라보며 현실과 타협하는 일.

탄단지를 생각하며

균형 있는 삶으로 이끄는 일.

그리고,

최대치의 품과 노력을 들여도

끈질기게 달라붙는 죄스러운 마음-

이게 정말 최선인지

게으름을 피운 건 아닌지

또 쓸데없는 욕심만 부리는 건 아닌지-을

밀어내는 일이다.

어떤 결말을 마주하더라도

부끄럽지 않도록.

조금 화가 나고 속상할지언정

스스로에게 당당할 수 있도록.


by 개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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