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 조각. 우리의 소망

by 개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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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 조각



퇴근하고 카페에서

친구의 수업이 끝나길 기다렸다.

따뜻한 유자차와 에그타르트.

수업이 끝나면 같이 저녁을 먹기로 했다.

읽던 책을 읽다가

다 읽고 새로운 책을 펼치다가

내일 해야 하는 일정을 확인하고

다른 날의 저녁 약속 메뉴를 고민하다가

창밖을 구경했다.

큰 은행나무에서

노란 은행잎이 떨어지고 있었다.

바닥은 이미 노랗게 물들었고

그 사이에서

서로를 찍어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따뜻하고 평온한 풍경이었다.

슬슬 배가 고파왔다.

익숙한 굶주림이다.

나도 아프기 전에는

주중에 퇴근하고 수업을 들었다.

그때는 배가 고파도

참을 수 있었고 다 괜찮았다.

수업이 끝나고

단백질 음료가 아닌

제대로 된 식사를 할 때는 또

얼마나 즐거웠는지.

정신없이 바쁜 틈에도

스트레칭을 하고

수업이 필요 없는 운동을 하지만,

수업이 있을 때만큼

악착같이는 못 한다.

(역시 돈이 제일 무서운 걸지도 모르겠다)

바쁜 대로 밥도 운동도 건너고

겨우 잠만 보충하는 시간은

말랑한 마음을 무너뜨리기 충분하고.

떨어지는 면역력이 가져오는

도미노 속에서,

끝없는 무기력 속에서

다시 기력을 만드는 일이란.

친구도 수업을 등록했다가

못 갔다가 잠시 끊었다가

재등록하고,

그런 와중에 아프기도 바쁘기도

취미 없이 즐거울 때도 있었겠지만

하고 싶은 걸 하지 못해

대체로 힘든 시간을 보냈다.

삶은 규칙이란 게 없다.

없다고 느낀다.

재난 다음에 재앙이

불합리함 다음에 차별이

오지 않으리란 법이 없으니까.

파국의 도미노와 불행의 도돌이표를

끊어내는 방법이란 게 과연 있을까.

내가 알고 있는 건

다음도 정답도 미래도 아닌 것.

무너진 김에 잠깐 쉬거나

마음이 아프면 울거나

어디가 얼마큼 다쳤나 살펴보거나

나를 돌보지 못하겠으면

주변이라도 관찰하거나.

혹은 반대로 상대를 지켜봐 주는 것.

잠시 쉴 수 있게 기다려주기,

실컷 울 수 있게 거리두기,

다친 데 적합한 약을 추천하기,

자신을 놓치고 있다면

잃어버리지 않게 꽉 끌어안아 주기.

세상에 우리 없는 나는 존재하지 않으므로.

나는 오늘도 우리를 생각한다.

가능하면 누구도

다치지 않았으면 하는 소망과 함께.


by 개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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