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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복사 Dec 04. 2023

2화. 달콤하고 끈적한 간식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는 것. 그다음으로 읽고 쓰고 걷기를 해야 사람답게 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읽는 것, 쓰는 것, 걷는 것 모두 매일 꾸준하게 하려고 노력하는 이유다. 그중에서도 쓰는 것에 관해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나는 일기쟁이로 커서 지금은 글도 쓰고 시도 쓰게 되었는데, 이는 그의 영향이다. 내 일기장은 회를 거듭하며 나날이 증식 중인데, 정작 그는 글쓰기와는 연관 없는 사람으로 지낸다. 어릴 적, 어디를 가면 풍경을 보며 시를 읊어주시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그런데 왜 그는 글과 관련 없는 사람으로 지내는가 생각해 보면, 추측되는 이유가 하나 있다. 언제인지 정확한 시기도 모르게, 이사를 다니던 중 하필이면 그의 일기장이 분실되었다. 나는 다른 그 어떤 글보다 그의 글을 읽고 싶다. 젊고 건강하던 그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알고 싶다. 요즘같이 스마트한 시대가 아니어서 알 길이 없다. 아니, 세상이 이렇게 좋아질 거였으면 좀 더 일찍 좋아지지. 그랬으면 그가 만들어준 음식이며 같이 지낸 모든 순간, 이제는 이름도 잊어버린 그의 음식들이며, 지금과는 다를 수밖에 없는 그의 웃음 같은 것도 사진으로 영상으로 하여간에 뭐로든 남겼을 텐데. 과거로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다면, 나는 그가 행복했던 시간으로 돌아가 그 웃음을 한 번만 보고 싶다. 잃어버린 물건을 되찾을 기회가 주어진다면, 과거의 모든 시간을 헤매더라도 잃어버린 그의 일기장을 찾고 싶다.


한번은 초콜릿의 계시를 받아서 카카오 가루를 사다가 생초콜릿을 만들어 먹었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최대 수혜자는 바로 그. 그는 직접 만든 생초콜릿에 단단히 현혹되었고, 그러므로 당연히 생초콜릿을 더 만들어 주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나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일기를 며칠 써주면 초콜릿을 만들어주겠다고 제약을 걸었다. 생각보다 그는 흔쾌히 몇 장 써주겠다고 했다. 그렇게까지 해서라도 일기를 읽고 싶냐며. 그의 글을 오랜만에 읽을 생각에 붕 떠 카카오 가루를 구비해두며 하루하루 기다렸다. 그는 약속대로 일기를 써주었고, 그 후로도 좀 더 흥미가 붙어서 몇 개월 더 쓰긴 했지만 1년을 넘기지는 못했다. 나는 그 일기를 가끔은 허락을 받은 뒤 읽고, 가끔은 몰래 훔쳐 읽었다. 물론 훔쳐 읽는 것은 대단히 잘못되었음을 안다. 그래서 나는 바로 다음 날 지은 죄를 고백하며 용서를 받곤 했다. 그렇게 해서라도 그의 글을 읽고 싶었던 내 마음에 대해서는 지금도 명확하게 말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왜 그렇게 읽고 싶었을까. 사실은 여러 가지의 이유가 있지만, 무엇보다 글쓰기의 영향이 어떤지 잘 알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가 나에게 해주었던 것처럼, 이번에는 갱년기의 늪에서 힘들어하는 그에게 하나라도 더 마음의 가지를 넓혀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도. 다른 것보다 그렇게 해서라도 한 번 더 웃기고 싶어 했던 것 같기도 하고. 그때, 초콜릿 하나로 우리는 느닷없이 정말 많이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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