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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복사 Dec 03. 2023

1화. 조금 곤란한 스마트 시대

그는 스마트폰을 쓰지만 컴퓨터는 어렵다. 인터넷뱅킹은 하지만 인터넷은 어렵다. 카톡은 되지만 이메일은 곤란하다. 비밀번호 앞에서 수없이 무너지는 그에게 나 또한 그렇다고, 수없이 비밀번호를 재설정하는데 막상 재설정하려던 비밀번호가 기존에 사용하던 것이라 새롭게 만들어야 할 때가 많다고 위로한다. 시간 앞에서 자꾸 작아지는 그를 보면서 백 마디의 말보다 옆에서 같이 넘어지는 건 나만의 비법이다. 나도 비밀번호가 생각이 안 나고, 서류를 뭘 제출하라는 건지 봐도 모르겠다고. 그러면 그는 너도 그러냐면서 나이도 젊은 게 왜 못 하냐면서도 활짝 웃는다. 그에게 나는 대화의 상대이기보다 대나무숲 같은 것이어서, 청자에 가까우므로 내가 하는 말은 매번 반대쪽 귀로 스쳐 지나가지만, 그래도 나는 그에게 계속 새로운 것을 알려주고 어려운 것을 쉽게 여기도록 도움을 주고 싶다.


큰 글씨 키보드는 전부터 알고 있었다. 벌써 예전 일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텀블벅 펀딩으로 진행된 제품을 뒤늦게 알게 돼 다음을 기약했었다. 그런데 요즘 들어 그가 컴퓨터를 사용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도저히 안 되겠는 것이다. 바로 큰 글씨 키보드를 검색해 보니, 그때 봤던 제품은 없었지만, 하얀색이면서 기능키가 다른 색으로 강조되고 또한 기능키 발음을 한글로 적은 제품이 있었다. 알아보니 게임 키보드를 만드는 회사에서 나온 제품이었다. 문득, 그곳은 어떻게 큰 글씨 키보드를 만들게 된 건지, 어쩌면 나처럼 세상 키보드들이 너무 젊은 사람을 기준으로 조그만 글씨에 별별 색상과 디자인으로 시끄럽고 정신없게 만든 것에 화가 났던 건 아닐까. 그래서 만들어서 부모님을 드리고 만든 김에 팔고. 하여간에 생각이란 것은 정신없이 퍼져나간다. 아무쪼록 키보드는 무선이라 선에서도 자유롭고 키감도 적당하다. 덕분에 키보드를 바꾼 후, 그는 로그인이 조금은 쉬워졌다. 이전의 키보드는 정말 한 번 눌렀다고 생각해도 연속해 입력돼 숱하게 괴로워했는데, 새로운 키보드는 부드럽게 묵직해서 한 번 누르면 한 번만 입력되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는 바뀐 키보드로 집에서 등본 떼기까지 성공했다. 엄청난 발전이 아닐 수 없다. 곧 다가오는 공동인증서 갱신도 컴퓨터로 성공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것은 스마트폰에서 쉽고 빠르게 가능하기 때문에 도전할 필요가 없기는 하지만. 언제나 생각하지만, 진작에 더 들여다보고 빨리 구매해 드릴 걸 싶다. 엄마가 새 키보드에 잘 적응해서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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