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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복사 Dec 19. 2023

4화. 영업 비밀


카레의 비밀을 아는가. 처음 그 비밀을 접했을 때, 피부를 뛰쳐나갈 듯 뛰던 심장박동을 기억한다. 어릴 적이라 무슨 내용이었는지 모르지만, TV 뉴스에 카레 얘기가 나오고 있었는데, 바로 옆에서 아나운서 목소리를 뚫고 그보다 더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들렸다. 잘됐네. 괜히 레시피를 넘겼나? 이게 무슨 소리람. 잘됐다고요? 뭐를 넘겨요? 나는 되묻지 않을 수가 없었고, 이어서 들은 답은 순전히 나를 놀리기 위한 이야기였으나 그때는 그 엄청난 비밀에 압도되어 진실을 알게 되기 전까지 제법 심각했더란다. 하루는 급식으로 나온 카레를 보고 근질거리는 입을 참을 수가 없어 외쳤다. 이거 우리 엄마가 만든 거다! 당연히 아무도 믿지 않았는데, 모두가 어렸기 때문인지 그 일로 놀림을 당하거나 크게 회자되지 않고 금세 다른 이슈로 넘어간 것이, 지금에서는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친구들이 생각처럼 놀라지도 않고 갸우뚱하며 믿지 않더라는 얘기를 전해 듣던 그는, 친구들보다도 놀라며 한마디 했다. 큰일이네. 이어 덧붙였다. 그건 꼭 비밀이라 말하면 안 된다고 했던 것 같은데, 이러면 다른 비밀은 이제 알려줄 수가 없겠네. 그 말을 듣던 나는 또 얼마나 다급해졌던지. 비밀을 더 말해달라고. 


어디 카레뿐이었을까. 그는 그렇게 나를 놀려먹었다. 이제는 그것이 부모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라는 걸 안다. 다른 이름으로는 사랑일 것이고. 그리고 이젠 내게도 나만의 ‘영업 비밀’이 생겼다. 아, 그거 무료야. 할인 쿠폰! 선물 받았어! 특가래. 얼마 안 해! 물론, 늘 그런 것은 아니다. 진짜일 때도 있다. 그렇지 않을 때, 어쩔 수 없이 아주 허황된 것은 아니면서 때에 따라서는 아주 거짓말인 것도 아닌 식으로 그를 챙기는 것이다. 그건 내가 할 수 있는 사랑의 방식이면서 동시에 수많은 자식의 방식임을, 그도 알고 있다. 사랑은 그런 것이니까. 그가 미처 말하지 못하는 것과 눈독 들이는 것 그리고 그도 몰랐던 것을 면밀히 알아차려 드리는 것. 그리고 이를테면, 이런 것. OTT 정기 결제. 왜 그는 꼭 정기 결제를 해지하면 나타나는가. 어릴 적, 열심히 공부하다가 잠깐, 정말 아주 잠깐 쉴 때 문이 열리며, 또 노는 거야? 하던 때처럼. OTT를 전부 결제할 때는 이용 않길래, 고민 끝에 몇 개를 해지에 정리해 두면 어김없이 다가오는 것이다. 이거 안 돼. 그러면 속으로 생각한다. 응, 당연하지. 그거 안 쓰는 걸로 알고 해지했으니까. 하지만 겉으로는 그렇지 않다. 급하다. 그럴 리가 없는데(모르쇠로 일관하기)? 확인해 볼게요(사이트에 들어가기). 잠시만 기다려줘(비밀번호 헤매며 로그인하기). 최대한 여유 있게 대답하고서는 헐레벌떡 정기 결제를 다시 시작한다. 그러면 그는 내 노력대로 까닭은 모르는 채 환한 미소와 함께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며 나비처럼 팔랑팔랑 사라진다. 지금도 가격이 참 재밌는데, 머지않아 더 오른다고 하니 현대형 거열형이 아닐 수가 없다. 그런 내 마음도 언제나 그에게는 사랑으로 가 닿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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